삼성전자 모델이 'Unbox & Discover 2025' 행사에서 2025년 AI TV 신제품을 소개하고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는 2006년부터 글로벌 TV 시장 1위에 올라 지난해까지 19년 연속 왕좌를 지켰습니다. 올해 판매량 집계가 끝나지 않았지만 20년 연속 타이틀을 가져갈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대단한 성과입니다. 관계자 분들 모두 박수 받아 마땅합니다.
필자가 처음 구입한 TV는 삼성전자 제품입니다. HD중계가 본격적으로 전파를 탄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보려고 샀습니다. 공교롭게도 삼성전자 TV가 글로벌 1에 오른 첫 해네요. 이후에 거실에 두려고, 방에서 게임하려고 몇 차례 더 삼성 TV를 구입했습니다. 손가락으로 꼽아 보니 모두 8대네요.
이 중에서 AS를 받지 않고 잘 쓰다 처분한 TV는 2대입니다. 5대는 AS 엔지니어의 손을 거쳤습니다. 구입 후 1주일 여 만에 뒷 패널을 열고 개복 수술을 받은 친구부터 액정패널교체, 수리 불가 판정을 받은 친구들까지 사연도 다양합니다. 전액부터 감가상각환불까지 제 통장에 돈을 입금시켜 주고 떠난 TV도 4대나 되네요. 2023년 5월에 영입해 현역으로 뛰고 있는 친구는 가끔씩 정신줄을 놓고 있어 힘 내라 응원 중입니다.
야구에 빗대면 필자의 삼성전자 TV 불량 타율은 8타수 5안타(AS 받은 TV), 4홈런(환불 받은 TV)입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삼성전자 TV 고장 확률을 계산해 보니 62.5%가 되네요.
대량 생산 제품에 불량품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장에서 출고된지 면 년 되지 않은 제품이 부품이 없어 수리를 못하고 감가상각환불 대상이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필자가 환불받은 제품 가운데 부품이 없어 못 고친다며 폐기장으로 간 TV만 2대입니다. 또 다른 1대는 초기 불량, 나머지 1대는 반복된 고장으로 환불처리 됐습니다. 모두 5년을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제조사의 TV 수리부품 보유 연한은 9년입니다. 그러나 강제가 아닌 권고 사항이죠. 기업 입장에서는 예비부품을 갖고 있는 것보다 구매가의 일부를 환불해 주는 게 이득일지 모릅니다. 소비자가 새로운 제품을 구입하게 되면 신규 매출도 기대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핵심 경영 아젠다로 삼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에 보면 어떨까요. 주요 TV 제조사들의 환경 성적표 데이터에 따르면 65인치 TV 한대를 만드는데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발생량은 500~800kg CO2e 수준입니다. 이는 중형차(가솔린)로 서울-부산(약 400km)을 5~8회 왕복할 때 나오는 배출량과 비슷합니다. 폐기하는 과정에서도 이산화탄소는 추가로 발생하겠죠.
삼성전자는 몇 년전부터 TV에 재활용 플라스틱 부품과 친환경 포장재를 사용하고, 배터리 교체가 필요없는 솔라셀 리모콘을 제공한다고 자랑합니다. 환경 친화적 제품을 만든다면서요. 그러나 수리 할 수 있는 TV를 폐기장으로 보내는 경영 전략이 ESG 경영에 부합하는지는 의문입니다.
필자가 뽑기운이 지독히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오는 글을 보면 꼭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패널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면서 강제 커브드가 된 TV, 패널 이상으로 화려한 색상의 모던 아트를 표현하는 삼성 TV 등을 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휘는 TV는 얇게만 만들려다 보니 기구 설계가 잘못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패널과 기판 등의 이상은 품질관리(QC)가 제대로 안됐을 수 있죠. 설계·생산 과정을 더 꼼꼼히 들여다 봤다면 사회적 비용과 자원 낭비를 더 줄일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취재하다 삼성전자 TV 사업 당당하는 VD사업부의 고위 관계자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삼성 TV QC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하자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을 지었습니다. 애써 불편한 상황을 외면한다기 보다는 '처음 듣는 얘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품과 소비자 조사 결과가 윗선까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거나 왜곡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현재 삼성전자 TV 사업은 강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가성비 물량 공세를 하는 중국이 턱밑까지 따라왔습니다. 내년이면 출하량은 선두 자리를 내줄 수도 있습니다.
최근 글로벌 시장은 TV를 팔아 많은 이익을 내기 힘든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제 삼성전자는 소비자들이 삼성 TV를 살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을 줘야 합니다. TV는 패스트 패션이 아닙니다. 2~3년 쓰고 바꿔야 하면 삼성 TV를 사기위해 지갑을 열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 - 디지틀조선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