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미리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한 사람의 가을에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은 만수(이병헌)이었고, 미리는 그의 아내다. 손예진은 미리 역을 맡아서 극에 '어쩔수가 없는' 이유를 불어넣었다. '어쩔수가없다'는 갑작스럽게 회사에서 해고 통보를 받은 만수가 재취업이 생각처럼 되지 않고, 위기에 몰리자, 극단적으로 자신만의 전쟁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어린 아들을 데리고 만수와 재혼한 미리는 위태로운 한 발을 내디디면서도 뭔가 춤을 추고 있는 듯 유려하다. 동시에 강한 캐릭터들 사이에서 "우리 집은 지금 위기야"라며 만수가 다시 취업하기 전까지 잡지도, 넷플릭스도 끊어야 한다고 말하는 현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한편으로 미리는 만수의 동력 모든 것이었다. 만수가 지키고 싶은 집의 주인은 미리였다. 아버지가 사셨던 집을 만수가 되찾았고, 그의 손을 거쳤지만, 집의 중심에는 너무나 굳건하게 미리가 자리했다. 그렇기에 저 끝까지 당겨진 고무줄은 다시 제자리인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미리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Q.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본 소감이 궁금하다.
"영화 서사와 이야기가 너무 강렬하더라. 박찬욱 감독님께서 너무 잘 만들어주셨고, 감독님의 스타일이 담겼다. 원래 미리의 서사가 별로 없었다. 만수라는 캐릭터가 너무 매력 있었다. 1부터 10까지 레이어가 다양했다. 그리고 그 표현의 폭도 컸다.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이런 캐릭터가 여자라면, 너무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저를 위해 감독님께서 분량도 늘려주시고, 많이 써주셨다. '이걸 해도 될까?'라고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찬욱 감독님과 하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미리의 분량을 떠나서 영화가 너무 좋고, 잘 나와서 너무 감사하다."
Q. 그럼에도 미리는 강하게 집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뿌듯해하며) 제가 만든 거다. (웃음) 미리는 만수(이병헌)을 거의 집에서 만난다. 극적인 감정을 표현하거나, 미리의 마음에 카메라가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그랬을 때, 배우로서 느끼는 부담감이 있었다. '어떻게 해야 미리라는 캐릭터를 더 풍성하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손짓, 발짓하며 연기를 하는 편이 아닌데, 몸도 흔들어보고, 머리도 흔들어보고, 그런 식으로 다르게 연기에 접근했던 것 같다. 다른 캐릭터에 비해 잔잔한 캐릭터인데, 만수의 동기가 될 수 있는 인물이다. 만수가 그렇게 일을 저지른 이유인 집에, 그 안에 미리가 존재한다. 깊이 들어갈수록 어려웠다. 임팩트가 세고 강렬한 캐릭터는 표현할 수 있는데, 미리는 절제된 현실을 보여주려다 보니, 그 수위가 어려웠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어려운 수위를 어떻게 맞춰갔나. 미리에 대한 고민의 답을 어떻게 찾았는지 궁금하다.
"배우는 작품과 감독님의 의도에 따라서 색이 입혀지지 않나. 어떻게 연기를 해도 의도에 따라 색이 입혀진다. 감독님은 미리가 현실적으로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저는 미리가 표현도 많고, 말투도 더 통통 튀는 캐릭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상이 묻어나는 연기를 바라셨더라. 그러면서도 동시에 '고추잠자리'가 나오는 장면도 담긴 영화에서 미리만 동떨어져 보이면 안 되지 않나. 제가 계산해서 조율할 수는 없었다. 감독님께서 대사의 높낮이에 대한 디테일한 디렉팅을 주셨다. 아내가 남편에게 '다 당신 때문이야'라고 말하는 것같이 공감을 줄 수 있는 지점을 놓지 말고, 가져가려 했다."
Q. 미리는 아이가 있는 싱글맘이었고, 만수와 재혼했고, 직업은 치위생사였다. 미리에 대한 전사에 대해 고민하셨는지 궁금하다.
"미리가 싱글맘었던 과거로 캐릭터의 레이어가 쌓인다. 상상할 수 있는 몫이 있지 않나. 미리와 만수의 과거에서 싱글맘에게 청혼한 남자의 우직함도 이야기하면서. 미리가 부잣집 딸이라는 전사도 있었다. 그런데 감독님께 '이해가 안 된다, 부잣집 딸이면 엄마와 아빠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지 않냐'고 했다. 저뿐만 아니라, 그런 의견이 있었나 보다. 그래서 미리의 부모님이 부자가 아닌 설정으로 바뀌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스틸컷 / 사진 : CJ ENM
Q. 아들이 경찰서에 가게 되었을 때, 친구 아빠에게 도움을 청하며 미리가 보여주는 행동도 충격적이었다.
"미리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라고 묻는다면, 그 친구 아빠를 파악했기 때문이다. 침대에서 미리를 쳐다볼 때의 그 시선이 있지 않았나. 그 순간 미리가 헤쳐 나갈 수 있는 선택을 한 거다. 아들과 딸을 위한 선택이라면, 미리는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자식 허물을 감싸기 위해 엄마는 이보다 더한 일도 할 수 있겠다, 미리라면 충분히 하겠다'라고 생각했다. 만수가 자신의 상황을 풀어내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합리적이지 않았다.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그런 일을 했다. 그런 면에서 공감의 정도가 달라진 것 같다."
Q. 이병헌과 첫 호흡이다. 특히 미리와 만수가 부부 싸움을 하는 장면은 '고추잠자리' 장면만큼이나 강렬하다. 심지어 싸우다가 "너도 잘 생겼어"라고 하는 지점에서,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 말이 실감 났다.
"두 사람은 진지하다. '입냄새 맡게 해줄게'라고 할 정도로 이보다 유치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런 지점에서 공감해 주시는 것 같다. 각자 어른인 것처럼 성숙한 척하지만, 사실 남녀가 싸울 때, 세상에서 제일 유치해지지 않나. 부부도 어른이 아닌 순간도 많고, 집요하게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의심하기도 하고, 아이들보다 더 유치해지는 것 같은 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장면에서 미리의 대사가 많았다. 여기에 박찬욱 감독님께서 디렉팅까지 많으시면 어찌할지 걱정하며 현장에 갔다. 대사도 많은데, 디렉팅까지 많으면 정신적 혼란이 온다. 기억에 남는 디렉팅은 만수가 하는 행동을 보고 미리가 속옷을 던져주고는 '야 너 술마셨냐?'하며 '안돼'하고 머리를 흔들지 않나. 원래 그런 동작을 하지 않았는데, 감독님께서 '머리를 흔들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그 말씀이 도움이 된 것 같다. '너도 잘 생겼어'라고 하는 것이 미리의 대사 중 가장 웃겼던 것 같다. 원래 코미디가 젤 어렵지 않나. 우리 영화는 대놓고 코미디가 아니라 블랙 코미디 같은 요소가 많아서 호흡이 제일 중요했다. 그게 사실 부담이었다. 그 장면도 여러 번 촬영했던 것 같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에서 미리 역을 맡은 배우 손예진 / 사진 : 엠에스팀엔터테인먼트
Q. 개인적으로 '어쩔수가없다'를 희극으로 봤나, 비극으로 봤나.
"마지막 장면에 담긴 부부의 모습이 슬펐다. 사실 지금의 영화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마지막 미리의 한 마디가 있다. 지금은 만수의 출근을 보며 미리가 '첫 출근 축하해'하고 가는 모습을 보지 않나. 편집된 장면에는 그다음에 미리가 뒤돌아서서 아이들에게 '방금 떠난 저 남자, 니 친아빠 아니야'라고 하는 대사가 있었다. 그걸 보면 명확하게 부정적인데, 지금은 '과연 행복할까?'라는 질문으로 끝난다. 감독님께서 미리가 그 대사를 하면 너무 혼동이 올 것 같아서 영화에 담지 않으셨다고 했다. 저는 그 가족이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 믿고 싶다. 만수가 시조(차승원)에게 '우리 딸은 말을 못 해요.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누가 한 말을 반복하는 것뿐이고'라고 딸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나. 그건 사실 미리가 한 이야기다. '우리가 무리하더라도, 이 아이만큼은 독립적인 아이로 키워야 한다'라고 만수에게 세뇌했을 거로 생각한다. 미리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Q. '어쩔수가없다'는 "와라, 가을아"하고 어찌 보면 인생의 '가을'이라는 계절을 맞은 이들의 잔혹동화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 손예진은 어떤 계절을 지나고 있을까.
"저는 지금 일과 육아가 병행되고 있다. 여름내 아이를 덥게 하지 않기 위해 에어컨을 조절했다. 너무 더울 때는 놀이터에 나가지 못했는데, 가을이 되었으니 '놀이터에 많이 가자'라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아이가 생기고, 실제 계절의 변화를 더 느끼는 것 같다. 여름이 됐을 때 여름 냄새가 나고, 가을이 되면, 햇볕이 쨍쨍해도 '곧 겨울이 오겠구나'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제가 연기 인생에서,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또 다른 봄을 맞은 게 아닌가 생각한다. 변화의 시기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 작품을 활발하게 할 시기가 되니 '더 열심히 달려야지'라는 생각도 들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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