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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영화를 위하여"…연상호 감독의 '얼굴' [인터뷰]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5.09.25 11:01

영화 '얼굴'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얼굴'은 제작비 2억이라는 저예산 영화다. 연상호 감독이 2016년 개봉한 영화 '부산행'의 순제작비가 약 86억 원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제작비 2억 규모의 영화가 얼마나 저예산인지가 실감이 난다. 자기 작품에 욕심 없는 감독이 있을까. '얼굴'을 저예산으로 만든 것은 이유가 있었다.

'얼굴'은 시각장애를 가지고 전각 장인으로 칭해지며 '살아있는 기적'이라 불리는 인물 임영규(권해효, 박정민)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영화다. 임영규의 다큐멘터리를 찍던 중, 그의 아내 정영희(서현빈)가 백골 시신으로 발견된다. 이에 임영규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 다큐멘터리 PD(한지현)와 함께 그 정영희의 죽음 이면에 다가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는 지난 2018년 발간된 연상호 감독의 그래픽 노블 '얼굴'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연상호 감독은 그래픽 노블 '얼굴'에 "나에게 선물이 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만화책으로 펼쳐놓게 된 것. 그 선물이 스크린으로 옮겨진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나도 수정되지 않고, 고스란히 옮겨진다. 이를 위해 저예산을 선택했다. 물론, 연상호 감독이기에 가능한 몫도 있었다. 박정민은 '얼굴'이라는 뾰족한 영화를 극장에 걸겠다는 연상호 감독의 생각에 동의하며 노개런티(출연료를 받지 않는 것)로 작품에 임했다. 그렇게 완성된 '뾰족한' 영화는 극장에서 그만의 '얼굴'을 각인 시키고 있다.

영화 '얼굴' 포스터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출연료 없이 합류한 배우 박정민을 비롯해 20명이라는 적은 인원의 스태프, 그리고 감독의 몫까지, 저예산 영화 '얼굴'의 수익 배분에 대해 궁금하다.

"한국 영화 시스템이 좋은 것이 제작사, 투자사 지분이 각각 있다. '얼굴'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저희가 순수 제작비를 투자한 작품이다. 그 지분이 크기에, 배우와 스태프들 중심으로 나누기로 애초에 이야기했다. 얼마의 수익이 나더라도 배분이 같을 거다. 예산이 크지 않다 보니, 마음의 빚이 남았다. 제 마음의 빚을 갚으려면 천만은 가야 한다. (웃음)"

Q. '얼굴'이라는 작품으로 한 도전이 한국 영화계에서 시스템화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얼굴'에는 배우분들도 작품을 좋아해 주시고, 좋은 스태프들도 의미에 공감하며 참여해 주셨지만, 제 인건비는 생각하지 않더라도 약 20억 정도는 있어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15회차 미만으로 촬영한다면, 20억 정도의 제작비 정도는 최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20억 정도의 규모면, 다른 투자사가 필요하다. 제가 말씀드린 시스템은 이런 규모의 영화에도 투자 배급사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얼굴'의 성과가 났으면 좋겠다는 점이었다. 그래야 투자 배급사도 '우리도 이런 거 해보고 싶다'라고 하지 않겠나. 요즘 한국 영화는 다른 식으로 진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투자 배급사도 어느 정도 이에 공감하고 열려있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라는 의식은 모두 공감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델이 정답이 될 수는 없지만, 가능성 정도는 제시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확신이 생긴 것 같다."

영화 '얼굴'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그래픽 노블 '얼굴'에는 "만화라는 가장 자유로운 형태로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작가의 말이 담겨있다. 그런 작품을 영화화하기로 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일종의 나만 만족하는 이야기로 작품을 내놓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에는 이런 것도 있는데'라는 느낌으로 (그래픽 노블 '얼굴'을) 작업했다. 그런 작품을 저예산 영화로 구상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두 가지였다. '재미있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다. 저희 큰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이다. 그런데 유튜브를 많이 본다. 같이 보면 재미있다. 애들이 왜 그 포맷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 어린이 드라마와 비교할 때, 유튜브 콘텐츠는 더 예산이 적다. 그런데 그런 건 딸에게 하나도 안 중요한 것 같더라. 거기에서 첫 번째 위기감을 느꼈다. '영화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웰메이드형으로 만들어야 한다?'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계기는 아내와 '그것이 알고싶다'를 보면서였다. 너무 재미있는 편이었다. 심지어 '얼굴'과 어떤 면에서 내용도 비슷했다. 약 1시간 정도 되는 콘텐츠를 충분히 몰입해서 봤다. 예산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다. 너무 재연 드라마처럼 나오면 창피당할까 봐 두려웠다. 그런데 그 자체가 제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한 번 창피당할 것을 각오하고 해보자고 한 것이 '얼굴'이었다."

영화 '얼굴'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얼굴'을 완성하며, 스스로 생각한 제작비 줄이는 방안이 있을까.

"제일 큰 건 회차 같다. 영화 제작비는 회차와 직결된다. 보통 영화가 50~80회차 사이다. '얼굴'의 회차는 13회차, 정확히는 12.5회차 정도다. 아시아 영화의 전설이 된 구로사와 기요시 등의 작품을 살펴보면, 사실 회차가 길지 않다. 그래도 무언가 깊이 남는다. 용기를 얻어 시작했다. 올해 나온 작품 중 윤가은 감독님의 '세계의 주인'도 너무 좋고, 재미있게 봤다. 그분도 압축적인 예산으로 작품을 완성하셨다. 그런 작품이 배급되는 방식에 투자 배급사가 가능성을 보고, 이런 작품도 관객에게 잘 전달하겠다는 의지 같은 걸 가졌으면 좋겠다."

Q. 그래픽 노블에서 스크린으로 이야기가 옮겨지며, 조금씩 달라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임영규(권해효)의 손 흉터가 나오는데, 그 손의 흉터를 묻는 말에 '기술 연마하다 생긴 거다'라고 답한다. 그 답도 틀린 건 아니다. 성공 이면의 흉터를 남긴 사건이지 않나. 그래픽 노블에서는 마지막 엄마의 사진을 얻는 과정이 사진관에서였다. 그런데 백주상(임성재)이라는 인물이 가진 아이러니함과 연결되는 지점이라, 지금 영화 속 장면이 완성됐다. 가장 큰 변화는 박정민이 1인 2역을 제안하면서였다. 원작에서 아들 임동환은 '엄마를 닮았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는 아빠를 닮은 걸로 수정됐다. 작품이 가진 시니컬한 면이 그렇게 하는 게 맞을 거로 생각했다. 그리고 원작에서는 아들 임동환이 가진 전사가 나오며 어떤 수치심을 가진 인물로 그려졌는데, 영화 속 임동환은 거의 관객과 비슷한 관점으로 설정한 것 같다. 관객과 비슷한 출발점에서 더 가닿는 바가 클 거로 생각했다."

영화 '얼굴' 스틸컷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얼굴'은 정영희의 앞모습을 향해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마지막에 등장하는 '얼굴'에 대해 고민이 컸을 것 같다.

"마지막 얼굴은 만화책(그래픽 노블)을 냈을 때도 많은 분에게 '이 얼굴은 어떤 '얼굴'이냐?'라고 질문받은 지점이다. 그게 재미있다. 이미 얼굴을 보지 않았나. 그런데 어떤 얼굴이냐고 물어보는 건, 그 얼굴을 규정짓고 싶은 마음일 거로 생각한다. 영화 '얼굴'은 무언가를 규정짓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스크린에 등장한 '얼굴'이 영화와 현실로 이어지는 다리가 되길 바랐다. 누군가의 배후가 아닌, 진짜 실제 있던 사람의 얼굴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도 규정짓지 않은 얼굴을 보여줘야 하는데, 일단 그 장면을 하려면 CG(컴퓨터 그래픽) 팀에게 요청해야 한다. 처음으로 규정지은 게 그 요청이었다. '누구의 얼굴도 아니면서, 어딘가 존재할 것 같은 얼굴'을 이야기했다. CG 팀에서 그 당시 살았던 여성의 평균 얼굴에서 여러 가지로 변형하고 덧붙이며 후보 사진들을 주었다. 제가 마치 정영희의 얼굴을 유일하게 본 목격자인 것처럼, 많은 이미지를 늘어놓고 얼굴을 정했다."

Q. 웹 예능에서 '박정민 최고의 연기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스스로 그렇게 느낀 장면이 있을까.

"일단 박정민이 과거의 임영규와 현재 임동환의 대비를 잘해준 것 같다. 현대의 임동환은 엄청 현대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과거의 임영규는 조금 시대극 같은 연기를 보여준다. 그 시대의 다름에서 오는 풍미를 묘하게 잡아서 연기를 해줬다고 생각한다. 저는 임동환 연기가 좋았다. 사실 임동환은 '리스너'이지 않나. 연기가 리액션 뿐이라 힘들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버지와 대화 나눌 때, 대사 한마디 없이 듣기만 하는데, 그 표정이 지점마다 다르다. 감정의 증폭도 매우 정확하게 다가왔다."

영화 '얼굴'을 연출한 연상호 감독 / 사진 : 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Q. 한국 영화 위기라는 말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영화 '얼굴'을 완성한 이후, 다르게 꿈꾸게 된 지점이 있을까.

"독립영화 작업을 하는 감독님과도 회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런데 독립영화는 참여하는 방식이 다르다. 작품과 상황에 따라 길게 회차를 찍기도 한다. 그런데 '얼굴'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은 상업 영화를 하던 사람들이다. 무작정 오라고 할 수가 없다. 독립영화와 '얼굴'은 비슷한 회차로 찍은 것 같다. 그렇다고, '군체' 같은 영화를 13회차에 찍는 건 불가능하다. 영화 산업의 추세를 정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중이 원하는 것에서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저는 좀 더 팬덤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뾰족한 영화가 추세가 될 거로 생각한다. 한국 영화가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무언가로 발전해 왔다면,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영화가 팬덤화되려면 위험성이 커진다는 측면도 있다. 영화를 기획하거나 최종적으로 내는 단계에서 투자 배급사는 '호불호'를 줄이는 쪽으로 의견을 제시한다. 호불호가 영화의 마이너스라고 생각한다. 그게 좀 재미가 없더라. 영화는 모난 구석이 있어야 뭔가 던지는 게 있는데, 이것저것 깎다 보면, 결국 모두 비슷해지는 것 같다. 그런 관점이 바뀔 때가 된 것도 아닌가 싶다."

Q. 도전을 이어가며 동시에 다작을 하고 있다. 그것이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소설 작업이나, 만화 작업 등 다양한 포맷으로 이야기를 펼쳐놓고 있다. 그 원동력이 궁금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창작하는 게 중요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것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려는 마음으로 책을 쓰거나, 다른 걸 해보려고 시도해 보는 것 같다. 아마도, '얼굴' 이후 나오는 작품이 '가스인간'이라는 작품이다. 제가 시나리오와 프로듀서를 했고, 일본 넷플릭스와 협업한 작품이다. 일본 배우가 연기하고, 배경도 일본이다. 그 대본을 쓰는 것도 큰 도전이다. 살아보지도 않은 나라의 무언가를 쓴다는 것이 큰 두려움이기도 하다. 그런데 겁내는 것보다 해보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임한 것 같다. 공개되면 어떤 반응을 얻을까 궁금하다.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만, 일본에서는 한국인이 쓴 일본 배경 시리즈를 어떻게 볼지 궁금하다."

'궁금하다'라는 말은 연상호 감독의 중심에 깃든 한마디 같다. 오롯이 내 자본으로 내 이야기를 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이 '궁금했고', 뾰족한 영화가 극장에 걸려있는 모습이 '궁금했다.' 영화 '부산행'으로 글로벌 스타 감독이 되었지만, 한 번도 거기에 매몰된 적이 없다. 그는 멈춘 적 없이, 계속 걷고 뛰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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