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인사이트] '마라라고 합의' 무용론(無用論)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5.05.09 19:15 / 수정 2025.05.12 09:37

지난 4월28일 취임 100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 계정에 미시간주에서 열린 취임 기념 유세 사진을 게재했다(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SNS 공식 계정)

현재 미국의 국가 부채는 36조달러로 2025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에 달한다. 전망은 더욱 암울하다. 의회예산국(CBO)은 2029년도 이 비율이 1946년의 최고치 106%를 초과할 것이며, 2035년도에는 120%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올해 연간 이자는 작년 대비 8% 증가한 9520억달러가 예상된다. 2023년과 2024년 2년에 걸쳐 각각 20%대로 늘어난 후 증가폭은 계속 커지고 있다. 2025년도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는 1조9000억달러로 GDP의 6.2%에 달하고 내년도에는 그 비율이 7.3%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재무장관 베센트는 최근 자국의 부채 상황에 대해 이례적으로 "정부 예산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으며, 부채 한도를 버틸 수 있는 여력이 곧 고갈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대만 매체 동삼신문(東森新聞)은 지난 7일 미국의 부채 위기에 대해 보도하며 아시아 국가들이 미국의 과도한 재정적자로 탓에 일본이 겪은 '잃어버린 30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미국 정부가 최근 5개월 동안 지급한 이자만 약 5000억 달러(72조 원)에 달한다"며 "높은 이자율이 미국 경제를 부채의 소용돌이 속에 빠트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경제계 전반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 아시아 통화가 일제히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부채 위기 해결책으로 각국에 달러 약세를 요구하는 '마라라고 합의'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라라고 합의'는 1985년 ‘플라자 합의’에 빗대어 만든 말로 트럼프 대통령의 플로리다 자택인 마라라고 리조트에서 이름을 따왔다. 트럼프 정부의 경제·무역 정책 구상을 의미하며 미국 달러가치를 약세로 유도하고,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고관세를 부과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1985년 무역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통해 일본을 포함한 주요국에 달러화 절하를 요구했다. 그 결과 일본에선 부동산 버블이 일어났고 소방수를 자처한 일본은행의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버블은 꺼졌지만 대신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뼈아픈 경기 침체가 시작됐다. 

동삼신문은 "미국이 '플라자 합의' 때와 마찬가지로 '마라라고 합의'를 통해 각국에 달러 약세를 촉구할 경우 주요 타깃은 중국이 될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러나 중국은 과거 일본과 상황이 다르고 국제 환경도 많이 변했기 때문에 1985년 당시 일본을 때린 것처럼 중국을 흔드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국 달러는 연초 이후 8% 하락하는 등 최근 약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미국 이외 주요국 통화는 강해지고 있다. 특히 대만 달러의 경우 5월초 연휴 동안 미국 달러 대비 10%나 올랐다. 지난 5일 대만 달러화 거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원달러도 1400원을 하회했다. 달러 가치가 하락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 의견이 분분하지만 '관세 전쟁'이 트리거가 됐다는 점엔 이견이 없다.

해외 투자자들이 미국 자산을 매각하고 매입은 줄일 것이라는 우려가 유럽·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도 확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전세계가 달러 이외의 새로운 안전자산을 찾아 나섰고 그 결과 약달러 기조가 생긴 것이다. 트럼프는 각국 정상들을 자신의 별장에 부르기도 전에 '마라라고 합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지만 그닥 기쁘진 않을 것이다. 달러 약세의 원인이 미국 정책에 대한 불신과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약달러와 함께 달러 위상 유지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난제가 그의 앞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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