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대리가 사장 보다 더 받는다…롯데 직무급제 청년에게 희망을

김종훈 기자 ㅣ fun@chosun.com
등록 2025.04.25 11:57

/김종훈 디지틀조선TV 보도국장

롯데그룹이 대기업 최초로 연공서열이 아닌 직무 가치, 전문성에 따라 임금을 다르게 책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롯데지주는 4월 22일 “혁신적 성과 창출 및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직무 기반 HR’ 인사제도를 순차적으로 도입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비상 경영’을 선포한 이후 롯데그룹의 변화는 살아남기 위한 절박함으로 느껴진다.

미국의 보호무역 주의에 기반한 고율의 관세 장벽 등 우리나라가 직면한 대내외적 환경은 첩첩산중이다.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의 입장에선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 길이 막히면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 일자리를 줄이거나 일시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특단의 조치 이외에는 별다른 대책을 마련하기 쉽지 않다. 일자리를 줄였다가 다시 운 좋게 물량이 늘어나면 한 명이 두 세명 몫의 일을 해서 감당해야하는 리스크도 존재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주 52시간제 도입 등 급변한 환경 속에서 열심히 일해봐야 같은 월급 주는데 뭐하러 나만 열심히 해라고 하는 개량식 사고가 널리 퍼져 있다. 워라벨을 중시하는 문화도 확산되다 보니, 기업내에서도 최 전선에서 일하거나 일상적인 업무의 틀을 벗어나 일이 많아지는 부서를 기피하는 현상이 팽배하다. 필자가 그룹의 홍보실을 만나다 보면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유를 뜯어보면 나라도 그러겠단 공감이 절로 든다. 일반부서의 경우 부서 회식 이외엔 대면 접촉을 활발히 하는 경우가 영업부서 외엔 드물다. 그런데 홍보팀은 몇 백개 매체의 기자들과 휴일 제외하고 근무일수를 따지면 거의 매일 미팅을해도 200여개 매체를 관리하기 벅차다. 게다가 저녁자리를 가서 늦게까지 업무를 지속한다고 해서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에 리스크라도 생겨서 방어 할때면 충분히 소통하고 소명할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라도 밤낮이 없어야 되지만 잘해봐야 야근만 하게되고, 결과가 좋아도 할일을 했다고 못하게되면 욕만 먹는다. 물론 저녁 자리를 갖게되면 회사에 보고해서 시간외 수당을 지급하는 경우도 있긴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개량화가 힘들어 저녁 10시까지만 한정한다던지 정확히 반영되지 못하다 보니 일이 많은 부서로 낙인 찍힌다.

그래서 기업들은 지원자를 찾지 못해 외부 영입 및 기자 출신을 뽑는다던지 대안을 마련하곤 한다. 실제로 기업들이 일을 하다보면 특정부서의 인원 결원으로 1명이 2명 몫의 일을 하지만 급여는 한명분만 받는다. 그나마 공로를 인정해줘도 인센티브 찔끔 주는 경우가 다반사다. 이런일이 반복되다 보면 결국 스스로 일을 대충하거나 제대로 된 2명 몫의 일을 하지 않게된다. 경영자 입장에선 잘굴러 가니 당연하게 치부하지만 이해당사자는 상실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런 상실감을 없애기 위해선 2~3명분의 일을 하는데 성과가 기존 인원이 있을 때와 같거나 더 좋은 성과를 수치로 개량할 수있는 경우 당연히 그들 몫의 급여를 책정해 지급해야한다. 이게 직무급제의 본질인 것이다. 당연히 다같이 똑같은 일을 하는 생산직 같은 경우는 롯데도 제외했다.

기자들만해도 마냥 기업이 제공하는 보도자료를 스스로 쿼터를 정해서 하루 몇 개 썼으니 이정도면 월급만큼 했어하고 따로 주문하지 않으면 눈치보며 저울질 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단독기사를 발굴하고 가독성이 높은 기획기사를 써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경우, 차별화 되야하지만 보상이 따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급여를 같이 받다보니 어차피 회사에서 해고도 못하는데 열심히 할 필요가 있어라는 방어적 생각으로 시간만 때우다 6시 되면 칼퇴근 하려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열심히 한 사람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상이 절실하다. 저녁에 취재원들을 활발하게 만나서 좋은 정보를 얻고 좋은 성과를 발휘하는 경우 아낌없는 보상이 따라야 회사도 발전하고 좋은 본보기도 되는 것이다. 누구든 저녁일까지 소화해내야 하는 부서원 입장에선 내 저녁 시간 빼았기고, 내 간만 상한다는 자조썩인 넋두리와 알아서 적당히 해야지 하는 방어의식이 생긴다.

최근에 4.5일제 등 정치권을 중심으로 근로 시간 단축이 논의되는 것도 일하는 시간에 집중하는 것, 그리고 성과를 발휘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그냥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시간만 단축하게되면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커 보인다.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근로시간제가 엄연히 존재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편안해지는 선택을 누구나 하고 싶지만, 이 같은 결정은 다른 경쟁국가들이 똑같은 상황일 때나 가능하다. 이미 반도체 등 위기를 겪고 있는 산업분야에선 연구직만이라도 노동시간의 유연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절규에 가까워 보인다. 1등의 자리도 내어준 마당에 잘못된 제도를 고수한다는 것은 2등, 3등의 자리도 지키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은 사무직, 생산직 가리지 않고 획일적 제도로 단도리 하려는 탁상 논의를 하다 보니 국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일례로 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게임 프로그래머, 작곡가, AI연구자, 바이오산업 연구원들은 남들이 일하지 않는 밤늦게 좋은 악상이나 시나리오,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많다고 전해 듣는다. 그런데 갑자기 악상이 떠오를 때 컴퓨터 전원이 강제로 꺼져버리거나 시간이 지났으니 중단하면 좋은 노래나 영화가 나올까? 판단은 독자에게 맞기겠다. 시간의 연속성이 필요한 직무 분야가 많이 존재한다. 심지어 선거에 한창인 대선 주자들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일하세요라고하면 반발이 거셀 것이다. 대선 주자들도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경청하고 정책에 반영했을 때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성공적인 직무급제 운용을 위해선 정확한 직무 분석·임금 정보 조사·데이터 개량화 등 정보의 투명성을 높여야 하며, 노사정 주체들도 생산직 등 제외 분야를 설정하고 합의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되야 한다.

기업이 힘들어지면 결국 내 생계도 위협을 받는다는 공감대를 가져야만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간다. 서로 하기 싫은 기피 부서에 일을하게되면 상응하는 대가를 받는 직무급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난 남 보다 더 일을 많이하고 싶어, 많이 가져가면 되기 때문에라는 인식도 커질 것이다. 확실한 보상이 제도화 되면 기피부서가 오히려 선호 부서로 바뀔 수도 있다. 게다가 현재 구조로 불가능한 대리가 사장보다 급여를 더 가져가는 경우도 생길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된다. 미국의 경우 실제 왕왕 이런 사례가 소개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회사를 떠나야만 가능한 구조다.

물론 과거에도 오너가 주축이 된 한국문화에서 창업주들이 밤 낮 없이 일을 시키고 믿고 따라준 직원을 위해 큰 보상을 내린 사례도 많다. 다만 모든 사람에게 개량된 것이 아닌 눈에 띈 한두명에게 과실이 돌아가는 결말이 더 많았다는 점에서 효과적이진 않았다.

물론 직무급제에 반론을 제기하는 경우는 어떻게 사무직을 개량화 하냐고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다면 평가하고 부서별 손익을 계산하는 등의 시스템을 대안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소 정적으로 보이는 인사부서 마저도 좋은인재를 영입해 그 인재가 성과를 발휘하면 가산점을 발굴자에게 주게되면 충분히 성과를 반영할 수 있다. 구매부서도 마찮가지다. 당연히 똑같은 값에 구매하던 것을 다른 루트를 개척해 동일한 품질을 싸게 구매하면 성과를 반영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차등이 없을 경우 회사는 손해가도 내가 득이되는 그릇된 선택의 기로에 서게되는 경우를 보게된다.

주요 기업 관계자를 만나면 고민의 목소리를 많이 듣는다. 우리회사에 지원한 신입사원들 사이에서 구전되는 소리가 일하기 편해서, 선배들이 구축해 놓은 선점효과로 열심히 하지않아도 워라벨이 좋아서 어차피 순위권에 드는 기업이라 나하나쯤 열심히 안해도 회사 잘굴러가니까 시간 때우다가 가면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을때 기업의 경쟁력은 저하되고, 결국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최소한 몇 %만이라도 열심히 한 사람이 확실한 보상을 가져 갈 수 있는 구조로 체질을 변화 시켰을때 기업의 본질적 경졍력도 갖춰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하나 쯤이야 하는 마음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 보단 충분한 구성원들간의 논의를 거쳐서 10명분 하는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가져가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기업의 경쟁력도 지속가능 경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될 것이다. 지금은 회사의 상벌조차 전체화해서 성과좋은 부서 전체가 나눠먹고, 내지는 돌아가면서 순번제로 상을 받고 하는 구조 때문에 열심히 한 사람들이 이럴바엔 나도 대충해야되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품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롯데의 이유있는 변화는 오히려 롯데 구성원들에게도 장기적으론 득이 될 것이라 사려된다. 과거 시스템을 고수하다가 회사 전체를 통매각하고 '정리해고' 하는 경우 오히려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다른 대기업들도 열심히 일한 사람들이 대접 받는 문화를 조성해서 경쟁력 확보와 영업이익 극대화라는 좋은 결말을 이끌어 내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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