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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酒歌] 섬에서 마시는 섬의 와인

등록 2025.03.21 15:07 / 수정 2025.03.21 16:32

활광어회와 샤르데나 베르멘티노 와인 /필자

제주에 작은 세컨 하우스를 갖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올레길을 걸으며 보이는 빈 땅들을 관심있게 둘러보기도 하고 그 지역에서 살아보는 상상을 하는 것 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돈이 없기도 하지만 집을 마련하고 관리한다는 것이 보통 일이 아니기도 하고 실제로 1년 중 얼마나 와서 머물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르게 되면 '결국 꿈은 현실이 될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더군요.

그런데 꿈은 종종 내 스스로 이룰 수 없어도 다른 사람을 통해 이뤄지기도 합니다. 제주에 세컨하우스를 갖고 있는 친한 언니에게 열흘 정도 집을 빌려 머물고 있습니다.

떠날 때 다음 손님이 편안히 머물 수 있도록 침구 세탁과 청소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규칙이 있지만 이 공간이 잘 지켜졌으면, 그리고 또 이용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구석구석 돌보게 됩니다.

이번에 제주로 올 때 옷가지보다 캐리어에 실어온 와인 2병 때문에 짐이 무거웠습니다. 제주도에서도 와인을 판매하는 곳이 많지만 왠지 제주에서 구할 수 있는 와인을 마시기보다는 갖고 있는 와인 가운데 '제주에서 마시고 싶은 와인'을 꼭 가져가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두 병은 이탈리아 사르데냐의 화이트와인 1병과 시칠리아의 레드와인 1병입니다. 

와인을 맛있게 마시려고 급하게 만든 파스타 /필자

사르데냐는 이탈리아의 서쪽에 위치한 인구 160만 명의 섬으로 지중해에서 2번 째로 크고 제주도의 10배가 넘는 면적의 섬입니다.

이탈리아 사람들 뿐 아니라 유럽 사람들이 가보고 싶어하는 꿈의 휴양지이기도 하고 100세 이상의 노인이 많은 장수 지역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리고 세계의 엽기적인 음식 베스트에 꼽히는 일명 구더기 치즈, '카수 마르주 (Casu Marzu)가 사르데냐의 특산 음식이기도 합니다.

와인을 잘 몰라도 '사시까이아'라는 와인 이름은 들어본 분들이 많을텐데요. 이 '사시까이아'를 양조한 와인메이커가 사르데냐의 지역 와이너리와 합작해서 만든 와인입니다.

이 와인을 구입할 때는 사시까이아와의 인연은 몰랐고 사르데냐라는 지역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 그리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역에서 주로 재배되는 '베르멘티노' 와인을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구입했습니다.

이 와인은 베르멘티노 100%는 아니고 샤르도네 20%를 블렌딩했지만 베르멘티노의 매력을 잘 만날 수 있었습니다. 베르멘티노는 레몬을 한입 깨물어 먹는 듯한 강렬한 산도가 매력적이면서도 흰 꽃 향과 쌉쌀한 미네랄 특징이 좋은 밸런스를 주는 와인으로 과일 중 '자몽'을 좋아하신다면 이 와인이 아주 입에 맞으실 겁니다.

해산물과도 잘 어울릴 거라 활광어회와 마셔봤는데 광어의 찰기만 느껴지고 맛이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담백한 생선보다는 어느 정도 기름기가 있는 생선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와인을 더 맛있게 마시고 싶은 마음에 급히 올리브유를 듬뿍 넣고 마늘을 볶다가 가장 고소한 부위인 지느러미살을 넣고 파스타를 만들어 먹었더니 잘 어울렸습니다. 회라면 방어회나 연어회도 잘 어울릴 것 같고 담백한 흰살 생선이라면 올리브유를 뿌려 카르파쵸로 만들거나 버터로 굽거나 볶은 해산물과 함께 마셔도 참 좋겠습니다. 

치아우리아와 옛날식 사라다 햄버거 /필자

레드 와인 1병은 제주도와 좀 더 많이 닮은 이탈리아 남부의 '시칠리아' 와인으로 가져왔습니다. 시칠리아도 역시 제주도의 14배가 가까운 큰 섬으로 규모로는 비교가 안되지만 '화산섬'이라는 공통점이 있거든요.

시칠리아 섬 동쪽에 '에트나' 화산은 현재도 자주 분출하고 있는 활화산입니다. 제주도가 화산재 토양이라 각종 채소와 과일이 맛있게 재배되는 것처럼 시칠리아에서도 에트나 화산의 축복으로 좋은 포도가 재배되고 맛있는 와인이 만들어집니다. 시칠리아에도 맛있는 화이트와인이 많지만 이번에 가져온 와인은 오래된 시칠리아 토착 품종 네렐로 마스칼레제 100%로 만든 와인입니다.

'에트나 로쏘 (ETNA ROSSO)'라고 씌여 있는데 에트나 화산의 영향을 받은 에트나 DOC에서 만든 레드와인이라는 의미입니다. 병에 '에트나 로쏘' '에트나 비앙코'라고 띄여 있다면 그냥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구입해서 드셔보시는 것도 좋습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에트나 산 북쪽 해발 700~800m에 위치한 오래된 포도나무에서 수확한 고대 품종으로 양조한 와인으로 와인의 빛깔은 가볍지 않고 오래 숙성된 와인처럼 느껴졌지만 붉은 꽃보다는 가벼운 꽃 향과 딸기, 체리 풍미가 좋은 피노누아를 마시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탄닌이 강하지 않아서 꼭 요리나 안주가 없어도 마시기 좋아서 첫 날은 근처 노포 제과점에서 구입한 옛날식 사라다 햄버거와 함께 한잔 했지만 하루에 한 잔씩 저녁을 마무리하는 와인으로 마시고 있습니다. 데일리와인으로 피노누아 한잔을 즐기는 분이시라면 이 와인도 한번 경험해보시길 추천해봅니다. 


[와인리스트]
1. 아그리콜라 푸니카, 사마스 2019  / 비비노 평점 4.8 / 국내 수입사 에노테카코리아 / 판매가 4만원 대
2. 피에트로 카치오르냐 CIAURIA 2019 / 비비노 평점 4.0  / 국내 수입사 와인나라 / 판매가 4만원 대 

에버포티




☞ 필자 : 에버포티


22년 차 IT 업계 직장인. 주력 25년 차, 와인력 10년 차의 한 때는 주당.  40대 중반인 지금은 70대 초반까지 건강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한 음주를 하기 위해 양은 줄이고 질은 높이는 주생활을 추구하는 중이며 이탈리아의 모든 와인과 이외 힘주지 않은 모든 화이트와인을 사랑합니다. 물론 샴페인은 힘줬어도 사랑합니다. 요즘엔 전통주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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