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자스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마나 /필자
한 해 한 해 나이 들면서 맛을 찾게 되는 음식이 있습니다. 시커멓고 물컹해서 젓가락이 안 가던 가지무침을 이제는 직접 만들어 먹고 텁텁해서 거들떠도 안 보던 단감을 즐겨 먹게 됩니다.
또래들끼리 이런 얘기를 하면 '나이드니 입맛도 늙는다'며 자조섞인 푸념을 하지만 좋게 생각하면 다양한 맛에 포용력도 생기고 즐길 수 있는 제철 음식이 늘어난 것이니 삶의 기쁨이 더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막회나 세꼬시도 그렇습니다. 입에 걸리는 잔가시가 불편해서 잘 먹지 않았는데 해초와 함께 초장을 곁들여 쌈을 싸먹으니 씹을수록 고소함이 느껴져 즐겨먹는 음식이 되었습니다.
포항 죽도시장에서 매일 자연산 어종을 공수해온다는 막회집 모임이 정해졌을 때 어떤 와인을 가져갈지 고심했습니다. 막회는 생선 살점 본연의 맛 보다 초장과 어우러지는 맛으로 먹기에 일반적으로 회와 어울리는 오크가 강하지 않은 샤르도네나 소비뇽블랑 같은 화이트와인과 매칭하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섬세한 와인들이 과연 초장을 이길 수 있을지가 걱정되었거든요.
먼저 막회와 와인을 페어링해본 분들의 사례를 찾아보니 향이 풍부한 리슬링이나 게뷔르츠트라미너와 매칭을 하시더군요. 마침 제게는 이탈리아 최북단의 와인 산지 알토아디제의 리슬링, 게뷔르츠트라미너, 샤르도네, 소비뇽블랑까지 블렌딩한 와인이 한 병 있었습니다.
바로 알토아디제의 유명 생산자 '프란자스'가 아내의 애칭을 따서 만든 블렌딩 화이트 와인 '마나' 입니다. 같은 생산자의 게뷔르츠트라미너 100% 와인도 있었지만 리슬링과 샤르도네, 소비뇽블랑까지 블렌딩되었으니 '절대 실패가 없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매일 바뀌는 자연산 어종 3가지로 나오는 막회 /필자
알토아디제 지역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국경과 접한 알프스 산악 지역으로 세계 1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오스트리아의 영토였기에 독일어를 사용하는 인구 비중이 높아 이탈리아의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문화적 특색을 지니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서는 BC400년 와인 양조의 흔적이 발견될 정도로 3000년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탈리아 와인 재배 면적의 1%에 불과하지만 샤르도네, 소비뇽블랑 같은 국제 품종부터 라그레인, 스키아바 같은 지역 토착품종까지 20여 가지 다양한 품종으로 고품질의 프리미엄급 와인을 생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맛있는 화이트와인이 많아 제가 더 좋아하는 생산지입니다.
알토아디제에서는 산악 지형의 특성 상 축구장 크기의 포도밭을 소유한 소규모 생산자가 많아 주로 생산자들이 힘을 모아 협동조합 형태로 와인이 생산되지만 프란자스는 1880년에 설립되어 대를 이어오고 있는 가족 경영 와이너리입니다.
찾아보니 마나 2019년 빈티지를 생산한 프란자스 7세는 몇 년 전 타계해 현재 두 딸이 8대 째 운영 중이고 마나 외에도 피노그리지오, 게뷔르츠트라미너 단일 품종 화이트와인과 피노네로, 메를로, 라그레인 같은 레드와인도 생산하고 있습니다.
한 잔 따라보니 '옐로와인' 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노란 빛이 강해 마셔보지 않아도 풍미가 상당함을 짐작할 수 있었고 알콜도수가 13도로 높은 편이라 와인잔 벽을 타고 흘러 내리는 모양에서 유질감이 느껴졌습니다.
프란자스 마나 외에 식전주와 함께한 부르고뉴 크레망 /필자
개인적으로 서늘한 기후에서 재배된 산도가 아주 높은 화이트와인을 좋아하는데 마나는 기대한만큼 산도가 높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아로마틱 품종인 게뷔르츠트라미너의 영향으로 초반의 달큰한 향이 제 취향은 아니었지만 마실수록 블렌딩된 품종들의 특징들을 보여주며 재미를 주는 와인이었습니다.
흰 꽃 향과 함께 잘 익은 복숭아, 망고 같은 핵과류 풍미가 돋보였고 리슬링의 특징인 페트롤과 백후추향, 토양에서 오는 짭짤한 미네랄리티가 복합미를 주어 밸런스가 잘 잡혀있었습니다. 막회의 초장이 다소 부족한 와인의 산도를 메워주고 잔당감과 스파이시함이 초장의 매콤함과 잘 어우러지는 맛이었습니다.
그러고보니 바다에 인접하지 않은 알토아디제에서는 이 와인을 치즈나 감자,고기 요리와 주로 즐길텐데요. 알토아디제 지역 사람들은 작은 바닷물고기를 뼈 째 썰어 초장과 함께 쌈 싸먹는 우리의 조합을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막회의 매력은 사계절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니 올해 알토아디제 화이트 와인과 함께 즐겨보셔도 좋겠습니다.
참고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화이트 와인으로는 협동조합 생산자인 '칸티나 테를란'이 있습니다. 샤르도네, 피노비앙코 모두 부담없는 가격에 기분좋게 드실 수 있는 데일리 와인으로 추천합니다.
[와인리스트]
1. Franz Haas MANNA 2019 / 비비노 평점 4.2 / 국내 수입사 휴에프와인 / 판매가 4만원 대
에버포티
☞ 필자 : 에버포티
22년 차 IT 업계 직장인. 주력 25년 차, 와인력 10년 차의 한 때는 주당. 40대 중반인 지금은 70대 초반까지 건강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한 음주를 하기 위해 양은 줄이고 질은 높이는 주생활을 추구하는 중이며 이탈리아의 모든 와인과 이외 힘주지 않은 모든 화이트와인을 사랑합니다. 물론 샴페인은 힘줬어도 사랑합니다. 요즘엔 전통주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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