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11.11 10:42
뜨거웠던 태양이 지나가고 시원한 저녁 바람이 옷자락에 스며드는 토요일 저녁 오후. 삼삼오오 사람들이 광진구 능동로 분수광장 앞 작은 무대로 모여든다. 이따금씩 들리는 악기들의 단편적인 선율들이 어린 아이처럼 반짝이는 눈빛의 시민들의 흥미를 끌고 있다. 이윽고 무대에 나선 중년의 신사가 오늘의 아티스트를 소개하면 작은 거리는 이내 열광의 분위기에 빠져든다.
화려한 조명의 공연장 주변에는 플로리스트, 화가, 수공예 예술가 들이 펼쳐놓은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상품들과, 북적이는 젊은 사람들로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서울 문화의 중심으로 거듭난 건국대 앞 예술의 거리 주말 축제의 중심에는 김용기 위니아트 대표가 있다. 김 대표는 이 공연에 드는 비용을 사비로 지원하며, 직접 출연진을 섭외하고 기획한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매주 이 공연에 참석하고 직접 참가자를 소개하고 시민들과 함께 음악을 즐기는 등 거리 공연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한글학회 이사장까지 지낸 원로 국문학자 김승곤 교수의 4남매 중 장남으로, 18년 전 처음 공연 사업을 시작했을 때엔 학자집안에서 문화사업을 한다고 해서 화제의 인물로 주목받기도 하였고, 공연 비즈니스에 대한 개념이 전무한 시기라서 주변의 많은 우려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용기 대표는 이러한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을 18년째 성공적으로 운영해오고 있으며 호원대 호원아트홀, 한국산업기술대 KPU아트센터도 맡고 있다. 서울 중앙고등학교 운영위원장, YMCA 청소년 위원, (사)한국청소년아웃워드바운드 이사장이며,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 주임교수로 활동하는 등 공연을 넘어서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용기 대표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건국대학교 새천년관을 찾았다.
정선혜 : 현재 맡은 일이 많다. 가장 즐겁고 보람 있는 일은?
김용기 위니아트 대표(이하 김용기) : 극장운영자면서 공연 기획자로 일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 같다. 아침 일찍 출근하면 제일 먼저 공연장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 고요하고 텅 빈 공간에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특유의 냄새와 정서가 있다. 혼자 이것저것 살펴보면서 직접 고치기도 하면서 둘러본다. 이렇게 극장과 함께 시작할 수 있는 하루는 나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정선혜 : 많은 공연만큼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다
김용기 : 예전에 '타잔'이라는 어린이 영어 뮤지컬 공연을 겨울방학 한 달 동안 진행 한 적이 있다. 영어 뮤지컬이 생소한 분야였고 특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좀 더 쉬운 말을 쓰고자 했고 자막도 공을 들여서 준비했다. 전 공연이 매진이었는데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을 나오는 아이들이 정말 재미있었다며 신나게 재잘거리고 있었다. 좋은 공연을 만들어냈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아이가 어디 가서 몇 년 영어공부해도 어려워했는데 이 공연이 애한테 공부가 많이 되었다' '이걸 보고나서 영어공부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하는 학부모들의 후기도 많이 있었다. 그런 글들을 보면서 우리의 준비가 헛되지 않았음을 느꼈다.
정선혜 :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김용기 : 공연이 끝나고 나서 공연장을 나가는 관객들의 표정을 보면 공연의 성공 여부를 알 수 있다. 나는 기쁜데 관객들이 기뻐하지 않거나, 나도 안 기쁘고 관객도 기뻐하지 않으면 잘못 된 공연이다.
우리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들은 우리 극장에서 공연된 뮤지컬이나 오페라를 관람 한 관객들이 박수 치며 앵콜을 외치고 커튼콜을 하며 환호 해주는 때다. 그런 공연은 관객들의 표정이 처음 올 때와 돌아갈 때가 정말 다르다. 관객들이 흥겨워하면, 적어도 이곳을 찾은 그 분들에게 일상의 스트레스라도 풀어줬고 즐거움을 줬다는 보람을 느낀다. 아마도 이런 것이 공연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삶의 기쁨일 것이다.
내 위에 또 다른 세계가 있다
정선혜 : 언제부터 공연 사업에 관심을 가졌나
김용기 : 사회생활을 은행원으로 시작했다. 당시 은행의 고객사은행사라는 것이 비누, 치약, 칫솔, 수건 등을 주는 게 전부였다. 그 때 내가 새로운 제안을 했다. '고객에 대한 사은품도 변화가 필요하다','문화를 선물하자'는 취지로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를 부르고 최고의 성악가도 동원하는 공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4개월이나 걸려서 겨우 결재를 받았다. 당시 방송국 콘서트홀에서 진행했는데 대성공이었다. 은행장님이 나에게 "4000만원 들여서 400억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냈다"고 칭찬했다. 3대 공중파 방송 9시 뉴스에 이 행사가 보도되었고 대부분의 언론에서 참신한 기획으로 언급됐기 때문이었다. 문화선물이라는 기획으로 '문화 예술의 은행'이라는 이미지를 한 번에 갖게 된 계기가 되었다. 그 때 그 성과로 인해 젊은 나이에 비서실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그런 일들을 기획할 수 있었다. 인생의 새로운 기회를 보고 준비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당시만 해도 이런 음악회를 하려면 어려움이 무척 많았다. 공연장 관리도 체계적이지 않았고, 고압적으로 공연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많아서 대관도 무척 애를 먹었다. 공연을 준비하기에 제약사항이 너무 많았고 공연 당일 리허설도 제대로 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그 당시 공연을 기획하면서, 많은 문화 예술 종사자들이 제대로 된 공연장이 없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된 것이다. 그래서 '제대로 된 공연장을 한 번 만들어 보겠다'고 다짐했다. '이 분들이 좀 더 마음 편하게 기획하고 공연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은행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큰 행사들을 기획하면서 공연장에 대해 파고들었다. 8년을 그렇게 준비했다.
정선혜 : 의지가 결국 실천으로 이어졌다
김용기 : 개인적으로 운이 좋았던 것은 은행장님을 모시면서 만난 분들이 우리나라 정치 경제 문화계의 거물들이 많았다. 그런 분들과 함께 공연을 이야기 하고 문화를 기획하는 경험들이 큰 밑거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젊은 시절에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잘 나가고 1인자 인 줄 알았지만 사회에서 성공하신 분들을 하나 둘 만나면서 비로소 내 위에는, 그 훨씬 위에는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좋은 부모와 아내와 함께하는 여유로운 생활이 전부가 아니구나! 나는 지금 우물 안 개구리고 수박 겉핥기를 하고 있구나! 세상에는 더 큰 꿈을 꾸고 더 큰 세상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구나! 정말 큰 깨달음이었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그것은 꼭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 인생을 걸 수 있는 정말 큰 꿈이었다.
그렇게 새로운 희망을 품고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긴 것이 30대 중후반의 나이였던 1997년이었다. 은행을 그만두고 모교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오픈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벌써 18년이 지났다.
정선혜 : 성공적인 공연장 운영의 노하우는?
김용기 : 우리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문화예술가의 입장에서 공연장 운영을 기획하고 실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많은 공연장들이 갑으로 행세한다.
생각해보자. 공연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잘 하고 그들이 성공해야 공연장도 성공할 수 있다. 공연장 입장에서 그들은 소중한 고객이다. 관객만 고객이 아니다. 굳이 갑을을 따지자면 문화예술 공연가들이야 말로 갑이며 공연을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온, 진짜 박수 받을 사람들이다. 나는 처음 오픈하면서부터 우리 직원들에게 그 점을 강조했다. 그 분들에게 정말 잘 해드리고, 먼저 인사하고, 불편한 점 없는지 다시 한 번 살피라고 했다. 다들 사람이 하는 일이라서 그런지 기획자들 사이에서 금방 소문이 났다. 새천년관 갔더니 너무 잘해준다는 거다. 처음 오픈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신규 공연 문의로 전화가 폭주상태였다. 업무가 끝난 후에 직원들이 말하더라. "사장님. 아직도 전화벨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아요!"
사람이 하는 비즈니스는 입소문의 힘이 가장 무섭다. 인기 얻고 성공하는 것은 금방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금방이고 치명적이다.
정선혜 :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바가 따로 있나?
김용기 : 평소 화를 내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직원들에게 정말 엄하게 지시하는 것이 있다. 특히 처음 입사할 때 네 가지 원칙에 대해 다짐을 받는데 이 원칙에 어긋나면 바로 해고다. 첫째, 전화를 친절하게 받아라. 둘째, 고객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까 생각해라. 먼저 제안해라. 셋째, 고객을 만나면 인사 잘 해라.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라. 넷째, 돈을 절대 받지 말아라. 돈 받으면 끝이다.
한번은 이 중에서 네 번째 원칙을 어기고 돈 받은 직원들이 있었다. 원칙대로 해고 했다. 그랬더니 우리 공연장은 친절하고 또 투명한 운영으로 정평이 났고 또 인기 있는 공연장이 되었다.
사람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뀔 수 있다
정선혜 : 은행 최초로 공연 사은행사를 기획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음악에 관심을 가졌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김용기 :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우연한 계기였다. 장남으로 자라면서 어렸을 때부터 학생회장도 했고 곧잘 공부도 했었다. 또 아버지께서 저명한 학자시니 여느 부모님처럼 당연히 공부로 성공하길 바라셨을 것이다.
중앙고등학교 신입생 환영 음악회에서 음대를 지망하는 선배들로 구성된 남성 4중창 아카펠라팀이 노래를 하는데, 뭐라고 할까, 온몸에 전기가 빠바박!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후 '나 저거해야 돼' 라는 생각만 계속 머리에서 맴돌았다. 그 후 고등학교 3년 동안 공부 대신 노래만 했다. 나의 관심은 온통 음악에 빠져 있었지만 인생은 그렇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 부모님은 학창시절 동안 자유를 주었지만 막상 입시를 준비할 때는 단호하게 음대진학을 반대하셨다. 결국 어렵게 입시 준비를 해서 건국대 법대로 진학하게 됐다.
정선혜 : 음악전공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김용기 : 아마 많은 부모님들은 비슷한 결정을 내리셨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 예술가의 길은 너무도 힘들다. 우리 땐 더했다. 열정만으로 어려운 것이 있다. 그런 열정이 개인의 인생에 꿈과 희망이 되면 좋을텐데 참 안타깝다. 비록 전공은 못했지만 그런 분들이 좀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도록 관객과 만나게 해주는 일이라는 점에서 보람 있고 행복하다.
정선혜 : 공연사업 예술의 시각과 사업적 측면의 충돌은 없나
김용기 : 공연 사업은 쉽지 않다. 롱런하는 회사들이 없다는 것이 그 증거다. 문화사업 하는 회사들은 90프로 이상이 3년 안에 문을 닫는다. 우리는 18년이 넘는 시간 동안 수많은 일을 겪어 왔다. 공연자와 함께 성장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지금의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고 있다.
정선혜 : 광진구의 거리 공연행사로 2014년에 '광진구 시민대상'도 수상했다.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김용기 : 지금 문화 거리라고 하면 어디를 꼽겠나? 연대는 이미 빠졌고 홍대도 클럽 문화가 들어오면서 공연하는 사람들이 점점 외곽으로 빠지고 있다. 광진구는 내게 고향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 만큼은 바꾸고 싶었다. 여기에 문화를 담고 예술을 꽃피우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구청과 추진한 것이 '광진구 문화벨트'다. 4년 전 부터 먹자골목 맞은 편 능동 분수광장에서 제 사비를 들여서 '광진 아트 브릿지' 공연을 기획하게 됐다.
5월부터 11월초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에 여기 오시면 다양한 인디밴드, 예술가들의 공연을 볼 수 있다. 청소년들의 탈선공간으로 전락했던 곳에는 '청춘뜨락'이라는 문화공연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미술가, 공예가 들이 참가하는 문화 장터도 유치했다. 이렇게 문화벨트가 만들어졌고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말엔 꼭 참석한다. 시민과 함께 축제를 즐긴다.
내 신념 중 하나가 '공연을 보러 오는 사람들은 악한 마음을 가지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 부모 손잡고 음악회 다닌 아이들은 커서 절대 나쁜 사람 될 수 없다.'이다. 내 주변의 친구들이 그랬고, 공연장을 찾아오는 많은 관객 가족들이 그랬다. 우리 아이들이 공연장에 많이 가야 한다. 공연을 관람하는 가족들을 보라. 단순히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 가족에게는 행복이 넘친다.
정선혜 : 앞으로의 계획이나 포부가 있다면?
김용기 : 30대 중반 은행에서 깨달았던 더 큰 꿈을 꾸는 사람들의 세상! 바로 그 큰 세상을 위해 지금도 준비하고 있다. 중년을 지나다 보니 동료를 위해서 또 우리 후배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국민 모두가 문화를 더 잘 즐길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무조건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의 정신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한다. 선진국이 되려면 산업도 산업이지만 문화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문화가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어야 한다. 농촌에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도 공연을 볼 수 있는 그런 나라가 되면 우리나라는 정말 행복한 나라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선진국과 달리 우리는 아직 문화가 생활의 일부라고 할 수 없다. 저가로 접근할 기회가 많아져야 한다. 문예기금 등 공연자나 관객들 모두에게 두루두루 혜택을 줄 수 있도록 정부가 더 많은 관심을 보여줘야 한다.
앞으로 20년 이상은 계속 이런 일을 할 것이다. 지자체들의 관리부실로 잠자고 있는 전국의 문화공간들을 하나하나 열어나갈 것이다. 열고 또 열면 점점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볼 수 있고 점점 더 많은 실력 있는 공연자들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공연 시장이 커지면 외국에서 활동하는 연주자들이 우리나라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이 나오고 문학이 꽃 피면 도시가 아름다워진다. 여기 광진구에서 시작했지만 앞으로는 우리나라 전국으로 그 꽃을 펼치고 싶다.
이야기를 마치며
장시간의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두 아이의 엄마로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공연을 보러 다닌 아이들은 나쁘게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면 정말 그렇다. 음악을 통해, 또 그 연주자와의 만남을 통해 감수성이 발달하고 또 가족 간의 바람직한 소통 채널이 만들어진 다는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문화와 예술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
청년기에 우연히 접한 4중창단의 목소리가 김용기 대표의 인생의 목표에 대한 울림을 주었듯, 김 대표가 공연을 통해 만들어 내는 울림이야 말로 많은 사람들의 인생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20여년을 우리나라 공연 문화의 기틀을 다진 김용기 대표님의 노력이 광진구를 넘어 우리나라 문화소외계층의 인생에 즐거움과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출처 및 기사 링크 / 리더피아 : www.leader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