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틀조선TV 유튜브 바로가기

[광화문 酒歌] 북태평양의 대구와 대서양의 와인이 만나면

등록 2025.02.14 14:33

[에버포티의 광화문酒歌]

대구의 맛을 알게된 건 10년 쯤 전 일입니다. 제휴사와의 점심 일정이었는데 세종문화회관 근처의 유명한 대구탕집이 약속 장소였습니다. 난생 처음 받아든 스텐레스 대접 안에는 고추가루가 풀어진 국물에 들어 있는 크게 썬 무 한 토막, 대구 한 토막이 들어 있었는데 밋밋하고 재미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한 술 뜬 순간 뱃 속이 데워지고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푹 익혀진 무와 담백하고 푸짐한 대구살 덩어리, 시원한 국물에 숟가락으로 퍼먹다 결국 대접을 들고 마셔버렸습니다.

그 이후로 대구탕이 참 맛있다는 건 알았지만 먹을 기회는 흔치 않았습니다. 집에서 한 마리 사다가 끓이기에는 대구 자체가 사이즈도 크고 고가의 생선이기도 하고 또 지인이나 친구들과의 식사 약속에서 '대구탕이나 한 그릇 먹을까?'라고 언급되기 어려운 메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와중에 부산에서 올라온 생대구를 먹을 기회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2029년에 개항할 부산의 신공항으로 유명하지만 예로부터 '가덕도'하면 대구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리고 제 어머니의 고향이라 늘 들으면 반가운 마음이 드는 곳이었지요.

회귀어종인 대구가 북태평양을 헤엄치다 11월 말부터 2월까지 산란을 위해 가덕수도를 따라 진해, 거제, 가덕도 앞바다에 모여드는데 산란 전 가장 맛이 좋은 상태라 조선시대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라가고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에서도 그 맛을 탐 내  눈독 들이고 수탈해갔다고 합니다.

2012년부터 매년 치어 방류 사업을 하고 있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한 수온 상승으로 어획량이 매년 감소하고 있어 어족 자원 보호 차원에서 1월 중순부터 금어기에 들어가는데 금어기 하루 전날인 1월 14일 부산 지인께서 직접 시장에서 활대구를 구해 손질, 냉동하셨다가 1월 말  '제철 대구' 모임이 성사되었습니다. 

이 중 한 마리가 맛있는 스테이크와 탕이 되어 주었습니다./필자

살이 많은 부위는 소금 후추 간을 하고 버터에 굽고 뼈가 많은 부위는 무와 미나리, 파, 마늘만 넣고 뽀얗게 탕을 끓였습니다. 버터에 구운 두툼하고 담백한 대구살 한 입에 와인 한잔, 그리고 비린 맛 없는 탕으로 속을 씻어주었습니다.  부산경남에서는 대구탕에 식초를 조금 넣고 먹는다고 하셔서 따라해봤는데 신 맛이 남지않고 더 깔끔하고 시원한 맛이 되더군요.

이 날 어울리는 와인으로 고른 건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포르투갈의 '비뉴 베르데' 한 병과 프랑스 보르도 페삭레오냥 지역의 화이트와인입니다. 두 지역 모두 대서양에 인접해있어 대구를 즐겨먹는 곳이기도 하고 특히 포르투갈에서 '대구'는 국민생선이기에 잘 어울릴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거친 대서양을 항해했던 역사를 가진 포르투갈에서는 대구를 소금에 절여 장기간 저장, 보관했다가 염기를 빼고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데 '바깔라우'라고 불리는 이 요리는 조리법이 천 가지에 이른다고 합니다.

포르투갈  '비뉴 베르데'는 원래 부담없는 가격이기도 하고 극과 극 체험 차원에서 마트에서 구입한 1만원 대의 '플루마' 21빈과 이보다 7배 가까운 가격에 몇 년 전 구입해서 보관 중이었던 '샤또 라뚜르 마르띠악 블랑' 16빈  와인을 가져갔습니다. 

'플루마'와 '샤또 라뚜르 마르띠악 블랑/필자

비뉴 베르데는 '그린와인'이라는 뜻으로 포르투갈 최북단 지역의 와인 생산지역 이름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익지 않은 어린 포도를 수확해서 3~6개월 숙성 후 병입해서 바로 마시는 와인입니다. '플루마'는 깃털이라는 뜻으로 라벨에도 가벼운 깃털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의 '보르도'하면 메를로와 카베르네소비뇽 블렌딩의 레드 와인이 유명한 지역이지만 '보르도 블랑'이라고 불리는 세미용와 소비뇽블랑 브렌딩의 화이트와인도 유명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소비뇽블랑' 포도가 유래한 곳이 바로 프랑스 보르도 지역입니다. 그래서 뉴질랜드 소비뇽블랑을 좋아하신다면 다음으로는 2-3만원 대의 보르도 화이트와인을 시작으로 취향의 폭을 점차 넓혀가시는 것도 좋습니다.

이 날 포르투갈 와인과 프랑스 와인의 대결에서 승자는 '포르투갈 와인'이었습니다. '샤또 라뚜르 마르띠악 블랑'의 경우 다른 빈티지 와인으로 참 맛있게 마셨던 기억이 있어서 기대하고 구입한 것이었는데 향과 맛이 모두 밋밋해서 아쉬웠습니다.

와인의 맛과 향이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와인의 탓일 수도 있지만 동일한 빈티지의 와인을 다른 사람이 맛있게 잘 마셨던 기록이 있다면 내가 와인을 보관한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거나 잘못된 온도로 다루었거나 시간을 두고 기다려주지 않았거나 마신 사람의 그 날 컨디션이나 분위기가 맞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날 저는 이 와인을 너무 차갑게 짧은 시간 내에 마셨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이 와인은 안 마셔!'가 아니라 '보관 중인 다른 바틀은 2시간 정도 미리 오픈해두고 좀 더 높은 온도에서 찬찬히 시간을 두고 마셔야겠구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비슷한 온도에서 바로 따서 마신 '플루마'는 모두 한입 마시자마자 이구동성 '맛있다!'를 외쳤습니다. '아베소' '아린토' '로우레이' '트라자두라'라는 생소한 포르투갈 토착품종의 블렌딩 와인이지만 흰 꽃의 향과 백도복숭아, 레몬, 감귤의 산미와 함께 살짝 기포감도 느껴져서 바로 기분을 UP시켜주어 겨울 해산물과도 좋았지만 봄, 여름 피크닉 와인으로도 훌륭할 것 같습니다. 

버터에 구운 대구스테이크/필자

와인의 세계는 이래서 즐겁습니다. 고가의 와인이라고 늘 만족을 주는 것도 아니고 1만원 짜리 와인이 기대하지 않은 기쁨을 주는 순간이 있거든요. 찾아보니 비비노 평점도 3.9로 1만원에 이 정도 퀄리티라면 정말 훌륭합니다. 마트에서 만나게 되신다면 저렴한 가격을 의심하지 마시고 꼭 한번 맛보셔도 좋겠습니다.

생대구로 바로 탕을 끓이면 살이 더 녹듯이 부드럽다고 합니다. 냉동하지 않은 생대구탕을 먹어볼 수 있도록 내년 1월에는 금어기를 체크하고 만사 열일 제쳐보겠습니다.


[와인리스트] 

1.  PLUMA 2021 / 비비노 평점 3.9 / 국내 수입사 롯데칠성음료 / 판매가 1만원 대
2.  Chateau Latour Martillac Blanc 2016 / 비비노 평점 3.9  / 국내 수입사 레뱅   / 판매가 7만원 대 

에버포티



☞ 필자 : 에버포티

22년 차 IT 업계 직장인. 주력 25년 차, 와인력 10년 차의 한 때는 주당.  40대 중반인 지금은 70대 초반까지 건강을 잃지 않고 지속가능한 음주를 하기 위해 양은 줄이고 질은 높이는 주생활을 추구하는 중이며 이탈리아의 모든 와인과 이외 힘주지 않은 모든 화이트와인을 사랑합니다. 물론 샴페인은 힘줬어도 사랑합니다. 요즘엔 전통주도 참 사랑스럽습니다




최신기사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

          산업 최신 뉴스 더보기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