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속 덕희 역을 맡은 배우 추자현 /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드라마 '가족입니다', 시리즈 '수리남' 등을 보았을 때,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이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추자현'이라는 배우와 만나, 그의 단단함에 기대어있었다. 실제로 만난 추자현에게도 그 단단함이 느껴졌다. 그가 어둡고 세게 느꼈던 자신의 "살아온 경험치"가 이제는 그를 숨 쉬게 했고, 여유롭게 했고, 말랑말랑하게 했다.
추자현은 약 7년 만에 스크린 복귀를 앞두고, 약 10년 만에 인터뷰에 응했다. 그동안 작품에 임했지만, 인터뷰로 자신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하지만 "궁금한 걸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그리고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는 추자현이 멜로라는 장르에 갈증을 느끼고 있을 때 도착한 소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추자현은 극 중 교통사고로 선택적 기억 상실을 앓게 된 '덕희 '역을 맡았다. 덕희는 남편 '준석'(이무생)의 보호 아래 천천히 기억을 찾아가는 인물이다. 하지만, 남편의 알 수 없는 행적들이 발견되며 덕희는 어느새 그를 추적해 가기 시작한다.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스틸 / 사진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Q. 7년 만에 스크린 복귀작으로, '당신이 잠든 사이'를 선택하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멜로를 하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20대에는 '멜로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 나이 때 멜로 장르를 많이 하는데, 전 오히려 장르도 캐릭터도 센 작품에 임했던 것 같아요. 특이하다면 특이할 수 있지만, 임팩트 있고 개성 있는 연기를 할 때 재미있었나 봐요. 그러다가 30대 때 중국에서 활동하며, 그곳에서 멜로라는 장르를 경험하게 되면서 이 장르가 단순히 '매력 발산'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어렵고도 매력 있는 연기더라고요. 중국에서 멜로를 연기하며, 언젠가는 한국어로 이 장르를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했어요. 작품이 주어지만,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에 시나리오가 왔고, 너무 감사하게 참여하게 됐죠. 저는 일단 하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열심히 하거든요. 잘한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는데, 열심히 한다고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이 작품도 제 최대치로 노력을 기울인 것 같아요."
Q. 덕희는 부분적으로 기억을 잃었기도 하고, 수면 위의 모습보다 수면 아래의 모습이 많은 인물이었다. 어떻게 다가갔나.
"저도 덕희 나이 때 결혼했고, 자식이 있고, 다가가기보다는 제가 해봤던 삶의 경험과 비슷한 지점이 있어서 연기에 장점이 될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더 힘들더라고요. 보통 전문직을 표현할 때, 배우들이 현장 체험도 가고, 공부도 하며 노력을 기울여 표현 하잖아요. 그런데 덕희와 저의 삶의 교집합을 찾아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계산을 하지 말고, 날 것으로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과감한 도전이었죠. 감독님께서 잘 잡아주시고, (이)무생 배우라는 좋은 배우와 합을 맞춘 덕분에 보완이 된 것 같아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스틸 / 사진 : 트윈플러스파트너스(주)
Q. 덕희는 계속 머금고 있다가 폭발하는 지점이 있다. 특히 시어머니(손숙)와 통화하는 장면은 정말 퓨즈가 툭 끊긴 것처럼 인상깊었다. 달라지는 목소리 톤과 어투까지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에 임했나.
"제가 한 웹 예능에서 '살아온 경험치가 세서 연기 톤을 보면 20대의 풋풋함이 없었다'라고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요. 저도 만만치 않은 어린 시절과 힘든 20대를 경험하다 보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정신이 끊겨버리는 그 느낌을 알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감정을 관객에게 제 눈빛, 표정, 발성과 제스쳐로 전달해야 하잖아요. 그 장면을 촬영하기 전에, 미리 리허설을 하지 않고, 동선만 맞췄어요. 계산할 수 있는 연기가 아니었어요. 순간 몰입감으로 해서, 촬영이 끝난 후에 기억이 잘 안 났어요. 제가 30대 시절 거의 전부를 중국에서 활동했잖아요. 그때는 더빙으로 육성이 나가지 못하다 보니, 제 표정과 눈빛에 많이 집중했어요. 그러다 보니 40대 때 한국으로 돌아와 연기할 땐 다시 톤 잡기가 어렵더라고요. 중국에서 활동하다 오니, 제 목소리를 들은 지 오래된 거예요. 연기로 복귀했을 때 그 톤을 잡기 위해 노력했고, 이번 영화에서도 톤이 밋밋하거나 떠 보이지 않도록 신경을 많이 쓰며 연기했던 것 같아요."
Q. 한국에 돌아와서 작품으로 복귀한 것은 지난 2019년 방송된 JTBC 드라마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당시에는 더 '톤'에 대한 고민이 컸을 것 같다.
"'아름다운 세상'에서 그 톤을 잡아가기 시작했어요. 저희가 10회를 촬영할 때 '아름다운 세상' 첫 방송이 시작했어요. 그런데 첫 방송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나는 '도'라고 생각하고 잡은 톤이 '미, 파' 정도의 음으로 떠 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톤을 잡는 것에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일단 작품에 임하면 열심히 하기때문에, 다시 돌아가도 더 잘할 수 있겠다고 자신할 작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딱 한 작품이 '아름다운 세상'이에요. 그때부터 제가 톤을 잡아간 것 같아요. 그 이후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그린마더스 클럽', '작은 아씨들', '수리남' 등의 작품에서는 그 톤을 잡고 해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속 덕희 역을 맡은 배우 추자현 /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Q. 사실 '가족입니다' 속 은주나, '그린마더스클럽' 춘희, 특별출연이었지만 '작은 아씨들'과 '수리남' 속 인물도 '배우 추자현'이라는 단단함에 기대어 있었다. 그 단단함은 어디에서 온 걸까.
"추자현이라는 이름도, 제가 걸어온 길도, 개인적인 삶의 자취도 평범하지는 않잖아요. (웃음) 저는 많은 경험을 해본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아무것도 모르는 채 홀로 한국 연예계에 들어와서, 열심히 하지 않으면 후회할까 봐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그것이 이 업계에서 제가 살아남게 해준 제 성향 같기도 하고요. 또 중국에서 활동하며 버텨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저를 단단해지게 해준 게 아닐가 싶어요. 40대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온 저는 노련미와 말랑말랑함이 더해져 뻔뻔함도 생긴 것 같고요. 그런 게 툭툭 나오는 것 같아요. 제가 한 캐릭터들이 극에 긴장감을 주는 역할들이 많았는데요. 그런 캐릭터일수록 대사에 힘을 주면, 오히려 무게감이 떨어지더라고요. 또 제 눈도 큰 편이고 눈매가 강렬하기도 해서요. 그 눈빛 때문에 저를 선택해 주시는 분도, 과하다 하시는 분도 계셨는데요. 40대가 되니 그 눈빛에도 힘이 적절하게 빠지더라고요. 그래서 연기하는 재미가 더해진 것 같아요. 사실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도 그렇잖아요. 20대에는 힘 조절을 못해 열정으로 견디는 시간이 있고, 30대에는 뭔가를 알 것 같아서 느끼게 되는 권태기가 있고요. 그 시기를 지나 40대에는 힘 조절을 하게 되며 다시 열정이 생긴 느낌이에요."
Q. 단단한 추자현을 말랑말랑하게 해준 것은 결혼하고 엄마가 되면서 일까.
"저는 아직도 출장에 가거나 집을 떠나있는 시간이 생기면, 아이보다 남편이 더 보고 싶어요. 사랑이라는 것을 믿게 된 것도 (우)효광 씨를 만나면서부터였고요. 어릴 때에도 연애는 했죠. 그때 연애는 설렘 정도에 의미를 두었다면, (우)효광 씨를 만나며 '이게 사랑이구나'라는 것을, 사랑의 힘을 배웠죠.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제가 어두운 사람이었는데 굉장히 많이 밝아졌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굉장히 부드러워지고 말랑해진 느낌이 들어요. 어떤 분께서 '언제 가장 남편에게 감동받냐'라고 물어봐 주셨는데, 저는 죄송하지만 매 순간이라고 말씀드렸어요."
영화 '당신이 잠든 사이' 속 덕희 역을 맡은 배우 추자현 / 사진 : BH엔터테인먼트
Q. 열정이 더해진 40대의 추자현이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나 캐릭터가 있을지 궁금하다.
"해보고 싶은 건 있어요. 저는 신인 때도 이런 질문 받으면 말씀을 못 드렸어요. 배우는 선택을 받는 직업이니, 저를 선택해 주시면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고 그랬죠. 그런데 이제는 말씀드리려고요. (웃음) 저는 남자배우들 못지 않은 흡입력 있는 '누아르 장르'의 '빌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보통 누아르는 남자 배우들의 장르로 생각되는데, 여자 배우라서 보여줄 수 있는 더 큰 두려움이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나이가 어릴 때는 절대 나올 수 없을 것 같아요. 제가 40대 후반, 50대쯤 근접할 수 없는 그런, 선과 악으로 맞서는 빌런 연기를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그의 이름이 된 드라마 '카이스트' 속 추자현은 커트 머리의 독특한 아이였다. 소녀보다는 '아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대학생이었다. 그런 추자현이 다양한 삶의 시간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한 웹 예능에서 그는 "살아온 경험치가 세서 제 연기 톤을 보면 20대의 풋풋함이 없었다. 배역에 비해 나는 너무 어둡고 셌다. 그때는 몰랐는데 30대에 중국에서 활동하며 알았다. 내 나이대로 못 산 거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그도 알고 모두가 안다. 그 시간은 추자현의 가장 큰 무기다. 그렇기에 더욱 기대감이 더해진다. 앞으로 무궁무진한 스펙트럼을 보여줄 추자현의 모습이 말이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 - 디지틀조선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