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킹콩by스타쉽 제공
"정말 신기한 게, 정수민 욕은 하는데 송하윤 욕은 안 하시더라.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이렇게 사랑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고 '(수민이가) 사랑받을 수 있게 내가 잘 품어야겠다. 열심히 수민이로 잘 살아야야겠다'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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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하윤이 아닌 정수민은 상상할 수 없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에서 역대급 악녀로 인생 캐릭터를 경신한 송하윤. 그가 연기한 정수민은 학창 시절부터 절친 '강지원'(박민영)을 가스라이팅한 것뿐 아니라 친구의 남자를 빼앗고, 절친을 죽음까지 몰고가는 빌런이다. 현실에서는 마주치고 싶지도 않은 악역을 만들어낸 송하윤과 작품 종영 당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스타쉽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만났다.
이날 송하윤은 정수민의 표독스러움을 지우고 선한 모습으로 취재진을 맞았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운 무드를 풍기는 송하윤과 '내남결' 속 정수민이 잠시 겹쳐져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렇게 선한 얼굴로 그런 악역을 소화했다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송하윤이 연기한 '정수민'을 본 시청자 대부분이 같은 생각이었을 터다. 그의 대표작 '쌈, 마이웨이' 속 '백설희'를 기억하는 이라면, 송하윤의 악역 변신에 놀랄 수밖에 없다.
사진: tvN 제공
이런 마음은 송하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맡은 악역을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설득하고 채찍질했다. '정수민'으로 사는 1년여 동안은 사람 송하윤을 세상에서 지웠다.
"제가 저를 지독하게 괴롭혔던 것 같다. 정수민으로 살기 위해서 제가 저를 끊임없이 설득해야 했다. 초반에는 제가 수민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민이가 가진 악의 마음을 읽는 것조차 제가 품어야 하는 게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1년 동안은 지인들에게 설명을 드리고 인간관계를 다 차단했다. 악역이 처음이라서 방법을 모르니까 일단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했다. 송하윤에게는 잔인하지만, 송하윤의 불행을 끌어다 정수민으로 썼다. 덕분에 명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사진: tvN 제공
정수민은 악한 감정을 발산하는 인물이다. 송하윤은 수민이를 떠나보내게 된 지금까지도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정수민을 연기하면서 점점 자신을 잃어가는 기분마저 들었다고 했다. 그 위험한 줄다리기 속에서, 송하윤은 자신을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했다.
"아직도 수민이에 대한 마음이 복잡하다. 촬영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갑자기 '나는 누군가. 내가 뭐 하고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정수민으로서의 삶은 하루가 꽉 채워져 있는데 송하윤의 삶은 없으니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가장 무서웠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저 '내가 수민이에게서 빠져나와있구나' 싶은 생각에 대본을 외우고 읽었다."
"수민이를 연기하면서 정신과와 프로파일러 상담도 받았다. 이건 제가 악역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받았던 건 아니다. 1부를 찍을 때 너무 감정적으로 몰입하니까 온몸이 다 떨리고 몸살이 났다. 수민이의 감정이 받아들여지니까 '이렇게 하면 절대 못 살 것 같다. 송하윤이 버티지 못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었다. 수민이는 제 이성을 붙잡고 기술적으로 연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 아이의 심리는 어떻게 생겨나는 건지 공부하는 시간을 위해 상담을 받았다. 덕분에 제정신은 안전할 수 있었다.(웃음)"
사진: 킹콩by스타쉽 제공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송하윤은 정수민으로 얻은 게 더 많다고 말했다. '내남결'을 만날 때쯤 느꼈던 연기에 대한 권태감도, 주춤했던 도전의식도 수민이 덕에 회복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제 연기에 대한 권태가 있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제 얼굴에 대한 권태도 있었고, 연기자 생활이 같은 패턴으로 진행되다 보니까 권태로움을 느꼈다. 그러다 '내남결' 대본을 읽었는데 수민이의 주위에 아무도 없더라. '나쁜 애라는 걸 알지만, 그럼 얘는 누가 지켜주지?'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럼 정수민은 송하윤이 지켜주고 품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민이로 살아보니까 제 마음과 시야가 굉장히 넓어졌다. 수민이 덕에 배운 게 많다. 물질적인 것보다도 제 연기의 폭, 용기의 폭이 넓어졌다. 성격도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예전에는 나를 드러내지 않고, 도전하지 않는 성격이었는데 수민이를 통해 '후회해도 도전하는 게 좋은 것 같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진: 킹콩by스타쉽 제공
송하윤이 정수민이 되기 위해 거친 1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묵직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제3자가 봐도 너무 가혹한 수단이었다. 다시 악역을 맡게 된다면 다른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송하윤은 같은 과정을 거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한 번 해봤으니 이제는 더 건강한 방식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점점 송하윤을 되찾아가고 있는 중이라는 그는 "아직은 후유증이 진행 중이다. 작년 한 해는 눈물 자체를 흘리지 않고 살았다. 수민이로 살면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외롭다'라는 감정을 입 밖으로 내버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서 버티면서 촬영했다"라며 "이건 배우의 몫이라는 생각이다. 제가 감당해야 했고, 그 힘듦과 스트레스조차도 다 수민이 거라고 생각하면서 지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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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영 인터뷰는 '정수민'으로서의 모든 공식 일정을 마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수민이에게 전하고 싶은 마지막 말을 묻자 송하윤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는 "제가 오롯이 해봤으니까. 수민이에게 그동안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라며 "누군가 저에게 '서른여덟 살에 뭐 했어?'라고 물으면 저는 '정수민으로 살았어'라고 할 것 같다. 저는 정수민을 품었던 송하윤의 모습이 기대된다. 다음에는 나에게서 어떤 감정이 나오게 될까 궁금하다. 그래서 다음 작품이 너무 기다려진다"라고 답했다. 고된 시간을 흡수한 배우 송하윤의 다음 챕터는 어떨지, 더 깊어진 연기력과 캐릭터 소화력을 보여줄 그의 차기작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