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사진 : 쇼박스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파묘'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영화 '파묘'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배우 최민식은 "술자리에서 장재현 감독이 '우리 땅의 트라우마를 파묘하고 싶다'라고 한 말이 마음에 왔다"라고 작품에 합류한 이유를 전했다. 그리고 그 말은 개봉 4일 만에 229만 9,706명의 관객(25일까지, 영화진흥위원회 기준)에게 닿았다.
'파묘'는 묫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풍수사 상덕(최민식), 장의사 영근(유해진), 무당 화림(김고은)과 봉길(이도현)은 거액의 돈을 받고 장손에게 기이한 일이 벌어지는 부자 박지용(김재철) 집안 묘를 파묘하는 일에 착수한다. 그리고 "악지 중의 악지"인 그곳에서 이들은 기이한 일을 마주하게 된다.
영화 '검은 사제들'로 데뷔한 장재현 감독은 '사바하'에 이어 '파묘'까지 연이어 세 작품을 오컬트 장르로 완성했다. 하지만 '파묘'는 전작과 다른 결의 작품이다. 전작에서 신을 향한 인간의 질문이 있었다면, '파묘'에는 땅을 돌아보게 된다. 장재현 감독은 '파묘'를 완성하기 위해 직접 이장(무덤을 옮겨 씀)에 15차례나 참여했다. 그 과정 속에서 '파묘'는 장재현 감독의 스승 이창동 감독의 말대로 그가 만든 것이 아니라 만난 이야기가 됐다.
영화 '파묘'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오컬트 장르로만 세 번째 작품이다. 하지만 '파묘'는 전작 '검은 사제들', '사바하'와는 분명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저는 영화를 볼 때 감정이 중요한 사람이다. '검은 사제들'은 끝날 때 '인간의 희망적인 이야기, 희생이 결국 모든 걸 이길 수 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바하'는 그냥 슬픈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신은 존재하는데 사람은 왜 죽어 나가는 거냐'라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파묘'는 앞서 말했듯이 티눈을 빼듯 개운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실 '파묘'라는 소재를 생각했을 때, 음흉한 공포영화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려면 주인공이 박지용(김재철)이 되어야 한다. '사바하'를 공포영화로 만들려고 했다면, 금화(이재인)와 가족들을 주인공으로 했어야 했다. 공포영화는 보통 피해자의 서사다. 그런데 '파묘'를 준비할 때, 코로나가 터졌다. 극장이 망할까 봐 매일 마스크를 끼고 극장에 갔다. 그때 유럽 영화를 상영했는데, 관객들이 우울한 표정을 나오더라. 그래서 '화끈하게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주인공이 바뀌었다. '우리 집에 왜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고민과 업은 기존 공포영화에서 많이 쓴 문법이고, 저는 제가 해온 방법을 다시 택한 거다. 전문가가 주인공이다 보니, 공포영화로 접근하지 않았다. 공포를 주기 위한 장면보다, 긴장감을 좋아한다. 그걸 신비롭게 보여주고 싶었다."
Q. 최민식 배우에게 한 말처럼 '우리 땅'을 돌아보는 '파묘'라는 소재를 어떻게 떠올리게 됐나.
"'파묘'를 준비하며 이장에 참여하던 어느 날, 아침에 급하게 장의사님에게 전화가 왔다. 급하게 이장하러 가는데 30만원 줄 테니 따라 오라고 하더라. 돈은 괜찮다고, 도와드리겠다고 현장에 갔다. 상주에게 뇌졸중까지 온 상황이었다. 근처 수도 공사를 잘못해서 정말 관에 물이 들어갔더라. 그걸 꺼내서 열고, 장의사님이 토치로 그 자리에서 급하게 화장하셨다. 저는 비를 맞지 않게 하려고, 천막 치는 일 등을 거들었다. 그 과정에서 '과거를 들추어 잘못된 것을 꺼내 없앤다'는 본질적인 정서가 다가왔다. 우리나라의 당을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돌이켜보면, 그 사람은 엄청난 피해자이지 않냐. 그 사람이 가진 상처와 트라우마를 파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마치 제 발바닥에 있는 티눈을 꺼내 레이저로 지지는 그런 화끈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다."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사진 : 쇼박스
Q. '파묘'에는 '1장', '2장' 이런 식으로 소제목이 등장하며 전개된다. 또 그 소제목이 모여 전반부와 후반부의 두 가지 이야기로 전개된다.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시나리오 작업 때는 소제목이 없었다. 그런데 영화를 편집하고 나니, 복선으로 미리 소재를 던져주는 것이 더 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갑자기 도깨비불이 나오는 것보다 그 소재를 미리 소제목으로 던져주고, 쇠말뚝을 소제목으로 던져준 후 상덕(최민식)이 어딘가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전체적인 편집 방향에서 괜찮았다. 하나의 묫자리에서 벌어지는 두 가지 이야기를 담은 것에는 작가적인 욕심도 있었다. 이 이야기 자체의 허리도 끊어놓고 싶었다. 두 이야기를 엮어주는 대사가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가 아닌가. 처음 관이 연막탄이었던 것처럼, 이야기 구조도 똑같이 가고 싶었다. 물론 호불호가 있었다. 하지만 이게 주제와도 잘 어울리고, 한 묫자리 속 관의 구조와도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중간에 허리를 끊어내는 것이 작품에 제일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Q. '파묘'는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 이야기로 나뉠 수 있다. 특히 후반부에는 도깨비불, 험한 것 등의 등장으로 고증에 의해 전개되던 전반부 리얼리티의 온도와 확연히 달라진다. 전작이나 전반부와 달리, 판타지스러운 전개를 후반부에 배치한 이유가 있을까.
"결국 '파묘'는 쇠침을 찾아서 뽑아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다. 하지만, 쇠침의 여부는 아직 가설이고, 논의가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과정을 리얼리티로 그리면, 결말이 지어지지 않은 내용에 대해 이 영화가 마침표를 찍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직접 쇠침을 뽑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피하고자, 판타지적인 요소인 정령을 등장시켰다. 정령화 된 험한 것으로 쇠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우리 내 상처와 두려움을 뽑아내고 없애도록 이야기를 진행했다."
영화 '파묘'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그럼에도 '파묘'에는 계속 뜨거워지는 어떤 '기세'가 있었다. 이를 위해 고민한 지점이 있었을 것 같다.
"보통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 촬영 전 콘티를 그린다. 그 콘티대로 촬영하고, 편집 과정에서 이어 붙이기를 한다. 여태까지 저도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파묘'에서는 기운이 중요했다. 이모개 촬영 감독님과 '그 기운을 담아보자'라고 엄청나게 고민했다. 그 끝에 콘티대로가 아닌, 투박하더라도 여러 컷을 이어 붙여 에너지를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런 류의 작품으로 '황해'와 '아수라'가 유명하다. 그렇게 하니 현장에서 짐작이 가지 않아 죽겠더라. 조금 이어 붙이는 것도 머리가 깨지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그날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더라. 어떤 날은 이상하고, 어떤 날은 좋다. 그래서 오래 걸리고 힘들었다. 다시는 안 하려고 한다."
Q. '파묘'를 본 관객 중 "한일전은 이겨야 제맛"이라는 평도 있었다. '파묘' 속 등장인물인 김상덕, 고영근, 이화림, 윤봉길은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지 않나. 그리고 후반부에 언급되는 풍수사 기순애도 혹시 '키츠네'를 염두에 둔 이름인가.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웃음) 네 맞습니다. 옛 고서에 보면 '키츠네(여우의 일본어)' 발음이 잘 안되어서 기순애라고 불렀다고 하더라. 일본 보다는 '우리 땅'에 포커스를 두었다. 우리 땅이 가진 무의식적인 정서 속 공포와 트라우마를 구세대와 신세대가 힘을 합쳐서 개운하게 뽑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물론 한 분 모셔 오긴 했다. 험한 것의 존재를 괴기하게 보여주기보다, 표피에 은유적인 상징을 담으려 했다."
영화 '파묘' 스틸컷 / 사진 : 쇼박스
Q. 상덕(최민식)이 묘에 백원짜리 동전을 던지는데, 거기에는 다 알고 있듯 이순신의 이미지가 있어서 '명량'의 최민식과 이어지기도 한다. 이를 염두에 둔 걸까.
"저는 '명량'이 그렇게 최민식 선배를 대변하는 이미지인지 몰랐다. 시사회 때 '명량'이 언급되는 걸 보고, 새삼 알게 됐다. 그때야 100원자리 동전의 이미지가 보이더라. 땅에 동전을 던지는 것은 실제 풍수사가 하는 행동이다. 관을 꺼내고 이장할 때, 그 땅의 값어치로 땅 신에게 돈을 준다. 보통 10원을 준다. 그런데 10원짜리는 흙과 색이 비슷해서 100원을 선택했다. 연출팀 중 한 사람이 '이거 너무 이순신 아니냐'라고 이야기해 주긴 했었다. 그때는 크게 생각이 없었는데, 얻어걸린 것 같다. (웃음)"
Q. 대살굿에 대한 설명에 '타살굿의 형태와 비슷하지만, 영화를 위해 창작한 단어'라고 적혀있었다. 그렇다면 굿의 형태에도 창작이 가미된 부분이 있나.
"대살굿이 원래 존재는 한다. 죽을 운명의 누군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보는 게 '대살굿'이다. 저승사자가 왔을 때 사람 대신, 돼지, 소, 닭 등 제물을 죽이는 거다. 영화적으로 창작된 것은 화림(김고은)의 말처럼 '이장할 때 하는 건 처음'이라는 지점이다. '파묘'에는 세 번의 굿이 등장한다. 처음 대살굿은 일꾼을 보호해 주는 역할이다. 그러려면 자기가 먼저 신을 받아야 한다. 신을 받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칼로 몸을 그어보고, 불에 손을 넣어 타는지 확인하며 자신이 괜찮은지를 확인한다. 그다음 굿이 혼을 부르는 구슬픈 굿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무당 셋과 봉길이가 나오는 '도깨비 놀이'이다. 숨은 귀신을 살짝 깨워서 정보를 취한다. 옛날 만화 '배추도사 무도사'(원제는 '옛날 옛적에')에 보면 나온다."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사진 : 쇼박스
Q. 이제는 관객들 사이에서 '장재현이 장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컬트 장르로 세 편째 이어왔는데, 그 이름에 기대하는 몫도 커진 것 같다.
"저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검은 사제들'이나 '사바하'도 공포 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묘'에서도 그랬다. 하지만 서비스하려고 노력하긴 했다.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만난 외국 기자분께서 감사하게도 제 영화를 다 보셨더라. 그리고 '나는 당신이 호러 영화 감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오리엔탈 그로테스크 신비주의를 좋아하는 것 같다'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속에 스스로도 정리하지 못한 제가 담겨있었다. 저는 그로테스크하고 신비로운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제 스스로의 아이덴티티를 찾게 됐다. 저는 생각보다 밝은 사람이다. 기본적으로 말도 많다. 그래서 항상 어두운 세계관에 좀 날라리 같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걸 좋아한다. 제가 스무 살이 넘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게, 사랑, 의리, 정 등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종교적인 영역인 것 같다. 사회에서는 그런 것들보다 '쓸모와 무쓸모'를 이야기하더라.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사라지는 것 같다. 그것에 대한 반발심도 든다. 저는 신이 교회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도 저를 위해 새벽기도에 가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한다."
Q. '파묘'로 인해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질 것 같다. 구상 중인 이야기가 있나.
"있긴 한데, 어두울 것 같다. 그로테스크는 인생의 모티브인 것 같다. 하지만 '파묘', 이 친구와 헤어져야 다른 여자랑 사귀겠죠. 디졸브는 비겁하다. (웃음)"
영화 '파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 / 사진 :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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