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능 프로그램이 다른 매체를 통해 7년 만에 같은 프로그램으로 돌아온 일이 있었던가. 전 세계를 뒤져봐도 흔치 않을 일을 윤현준 PD가 해냈다. "'크라임씬' 후속 시즌"을 외친 애청자들의 긴 기다림과 한결같은 목소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윤현준 PD는 지난 7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어쩌다가 다시 하게 됐을까?' 생각한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그는 약 10년 전 '크라임씬'에 합류했고, 세 개의 시즌을 세상에 내놨다. 다시는 하지 않을 줄 알았던 프로그램이 7년 만에 그의 품에 안겼다. 공개를 앞두고 설렘과 두려움 중 "두려움이 더 크다"라고 말했지만, 공개된 지금,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크라임씬'을 좋아했던 이들은 향수로 티빙에서 이전 시즌을 정주행하기에 이르렀고, '크라임씬 리턴즈'로 처음 접하는 이들은 궁금증에 이전 시즌을 보고 있다. 범죄 현장에서 한 명의 탐정과 다섯 명의 용의자가 진범을 찾아가는 추리 게임. 돌아온 '크라임씬'에는 어떤 장면이 달라졌을까.
Q. '크라임씬'이 '크라임씬 리턴즈'라는 제목으로 약 7년 만에 돌아왔다. 그 시작이 궁금하다.
"저는 '크라임씬'을 다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없어지기엔 아쉬운 포맷이라는 생각은 했다. 많은 분들이 몇 번씩 돌려보고, 커뮤니티에서 '크라임씬'을 닳고, 닳도록 소개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 약간씩의 제안과 주변 권유가 있었다. ''크라임씬' OTT에 맞는 콘텐츠가 아닌가?'라고 제안이 왔다. 그래서 생각하게 됐다. 이 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있구나, 다시 잘 키워볼까. 하지만, 시즌3 이후 7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지 않았나. 당시 함께한 작가들은 거의 메인급 작가가 되어 다른 일을 하고 있더라. 다행히 당시 '크라임씬'을 함께한 메인 작가와 연락이 되어 합류하게 됐고, 다른 작가들은 다 새로 합류했다. 저랑 메인 작가 외에는 한 분도 예전에 함께했던 분이 없다. '크라임씬'이 힘든 프로젝트로 악명이 높아 사람을 구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런데 흔쾌히 하겠다는 지원이 많았다. 제가 JTBC에 있다가, 제작사를 만들며 함께한 PD가 한 명 있는데 박지예 PD다. 처음에는 '큰일났다' 싶었는데, 모아놓고 보니 다들 '크라임씬'의 광팬들이었다. 너무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분들이 느낀 지점까지 가산이 되며 '크라임씬 리턴즈'가 완성됐다."
Q. '크라임씬'에 열광하는 시청자들은 과거에도 많이 있었다. 무려 7년을 한결같이 외치지 않았나. 그럼에도 '다시 안 하리라'라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나.
"먼저 회사에서 원치 않았다. 반응에 비해 시청률이 1%대로 낮았다. 돈도, PD도, 시간도 많이 드는 프로그램에 투자 대비 성과가 적었다. 처음 할 땐, '획기적이다, 재미있다'라는 반응이었는데 '시즌 3'으로 이어질 때까지 시청률의 반응은 별로 없었다. 제가 시청자 입장으로 봐도, '크라임씬'의 어려운 장면을 본방송만으로 따라가기 어려울 때가 있더라. 그래서 다시 볼 수 있는 OTT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제 다시 보기가 가능한 OTT로 왔으니, 같은 변명은 안 통할 것 같다. OTT도 안 되면 '안 되는 거다'라고 생각할 것 같다."
Q. 다시 돌아오기로 한 후, 기존 시즌과의 '차별점'에 대한 고민이 이어졌을 것 같다.
"'크라임씬 리턴즈'를 시작하면서 많이 이야기했다. 특히 팬 분들은 기존 멤버의 플레이를 다시 보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저나 제작진이나, 창착하는 입장에서 같을 수 없었다. 새로운 지점을 만들어야 했다. 실패해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했다. 티빙과 상의하며 새로운 멤버를 구성했다. 그래서 '크라임씬 리턴즈'에는 게스트가 없다. 새 멤버도 생겼는데, 에피소드 한 편하고 나가는 게스트가 들어오면 적응이 어려울 것 같았다. 이번 시즌은 5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그만큼 분량이 길다. 과거 시즌에는 방송 시간상 생략을 많이 하기도 했는데, 이번에는 더 스토리가 풍성해졌다고 생각한다. 길이의 차이도 있을 거다. 에피소드 5개가 너무 적다고 서운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5개 만드는데도 너무 힘들었다. 공개 후 '이렇게 만들었는데 왜 5개밖에 못 만들었어?'라는 말만은 절대 듣고 싶지 않다. '고생 많이 했겠다, 다음 시즌도 나오면 좋겠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
Q. 하나의 에피소드가 2화에 걸쳐 공개된다. 그만큼 한 에피소드에 제작비와 시간도 많이 들었을 것 같다.
"제작진도 강박이 있었다. '달라야 한다, 더 좋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쉽지 않았다. 하나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도 1~2달이 걸렸다. 작년 2월부터 기획, 구성, 캐스팅 회의를 하며 시작했다. 공개 시점이 2월이니, 만 1년 정도 걸렸다. 제작비 문제도 컸다. 과거 '크라임씬'을 포기한 이유이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는 지원을 충분히 받았다. 저도 깜짝 놀랐다. 마지막으로 JTBC에서 했던 시즌에 비해 회당으로 따지면 4~5배 받은 것 같다. 물론 7년 전보다 물가 및 외부 리소스 사용 단가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예상한 건 2배 정도였다. 단순 비교는 어렵겠지만, 욕심을 내서 스케일을 키운 회차도 있다. 공간 수나 소품 등의 사용이 지난 시즌보다 2~3배 늘어났다. 그래서 제작비가 많이 들었다. 촬영 시간도 길어졌다. 아침 11시 정도에 촬영을 시작해서 자정까지 촬영이 이어지기도 한다. 인터뷰도 해야 하고, 특히, 멤버들이 '끝내셔야 해요'라고 이야기해도 안 끝낸다." (웃음)
Q. '크라임씬 리턴즈'에는 기존 멤버 중 장진 감독, 방송인 박지윤, 장동민이 합류했다. 이렇게 세 명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너무 어려운 문제였다. 세 분을 새 멤버로 한다고 할 때부터 이견이 많았다. 기존 멤버 중 누구를 고를 수가 없었다. '크라임씬'하면 딱 떠오르는 인물에 박지윤이 있었다. 정리도, 추리도, 연기도 다 된다. 탐정하면 아나운서 출신 답게 정리도 잘하고, 그러면서 연기도 잘한다. 장진 감독도 마찮가지다. '크라임씬'에서 장진 감독의 추리를 빼면 얼마나 서운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 자리를 두고 이진호, 장동민, 하니 등 모두 아까웠다. 물론 말씀드려도 그 분들 스케줄 때문에 성사가 안될 수도 있었겠지만.(웃음) 새 멤버가 셋인데, 그들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굴까를 고민했다. 그것도 다 잘해주셨을 것 같지만, (장)동민이가 더 잘 해내지 않을까 싶었다. 제 판단이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앞으로 시즌이 계속된다면, 기존 멤버들 모두 언제든 같이 '크라임씬'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금 생각한 것이지만, 언젠가 '크라임씬 어벤져스'를 할 수도 있지 않겠나. 그런 기회가 오면 좋겠다."
Q. '크라임씬 리턴즈' 새 멤버에는 샤이니 멤버 키, 배우 주현영, 아이브 멤버 안유진이 합류했다. 왜 그 셋이어야 했나.
"저는 과거 하니가 '크라임씬'에 출연했을 때 너무 좋았다. 여자 아이돌인데 아무것도 가리는 것 없이 캐릭터 몰입을 너무 잘 해줬다. 그래서 연기 베이스가 아닌 사람을 유심히 봤다. '지구 오락실'을 보면서 안유진이 눈에 띄었다. 그런데 안유진이 좀 바쁜 친구가 아니지 않나. 스케줄을 맞추는 것도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같이 하고 싶었다. 첫 미팅부터 잘할 줄 알았다. 일단 똘똘하다. 그리고 굉장히 집요한 구석이 있다. 한번 물면 놓치지 않고 엄청 열심히 단서를 찾는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내가 틀리지 않았다 싶었다. 주현영은 '크라임씬'을 한다면 누구나 생각할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연기를 정말 능청스럽게 잘하지 않나. 그런데, 처음에 '크라임씬'을 제안할 때, 자신이 무언가를 캐내는 것을 안 좋아한다고 하더라. 추리를 못 한다기보다 무언가를 집요하게 캐내는 성격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캐릭터 플레이 뿐만 아니라, 추리도 훌륭했다. 특히, 이 친구는 범인 하면 너무 잘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5개의 에피소드 안에서 범인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다. 범인을 누가 두 번 할 수도 있지 않나. 키는 작가들 추천이 많았다. 요즘 '놀라운 토요일'을 보면, 만능 캐릭터로 활약하지 않나. 추리도 엄청나게 잘하고, 이 친구가 연기도 했다더라. 또 '크라임씬'에서 중간 고리 역할을 엄청나게 잘 해준다. 새 멤버의 맏오빠 같은 느낌이 있다. 그래서 너무 만족하고 있다."
Q. 새로운 탐정 보조로 고스트 나인 멤버 이진우가 합류했다. 탐정 보조는 꽃미남 스타로 유명세를 얻곤 했는데, 이진우를 발탁한 이유가 있을까.
"제가 '피크타임'이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아이돌과 함께했었다. 그리고 함께한 PD 중 '피크타임'을 함께한 PD도 있었다. 그 PD가 '탐정 보조에 '피크타임' 출연자 중 한 사람을 하면 안 되냐?'라고 조심스레 제안했다. '너무 좋다, 그런데 내가 아이돌 지식이 해박하지 않으니, 너희들이 뽑아라'라고 답했다. 열심히 인터뷰하며 고민한 결과 이진우가 선발됐다. 사실 탐정 보조는 굉장히 작은 역이고, 현장에서 기다림의 시간도 굉장히 길다. 하지만 열심히 해줘서 너무 고맙다. 회식도 같이했다."
Q. 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데도 1~2달이 걸린다고 하셨다. '크라임씬'은 멤버들이 단서를 찾아내며 범인을 추리하지 않나. 그 과정에서 단서를 못 찾는 경우도 발생할 텐데, 현장에서 제작진이 멤버들에게 팁을 주기도 하나.
"'크라임씬'에 처음 들어선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지 않나. 그래서 '서랍이나 이런 곳 열어보며 찾아가세요'라고 설명해 주기는 한다. 그런데 '어디를 보세요'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렇게 하면 멤버들의 마음가짐 자체도 달라질 거다. 심어놓은 단서에 비해 멤버들이 너무 '덜 찾았다' 싶으면 차라리 시간을 조금 더 주는 방법을 택한다. 그 정도 융통성은 발휘한다. 모든 단서가 있어야 스토리가 이어지는 건 아니다. 1, 2차 현장 검증에서 '어떻게 이런 것까지 찾아냈지?'라고 감탄할 정도로 멤버들이 찾아내는 경우가 많다. 또 앞서 말씀드렸듯이, 녹화 시간이 그만큼 길다. (장)동민이가 농담으로 '출연료를 20억씩 주니까 이런다'라고 했는데, 그건 진짜 농담이다. 단서를 다 찾지 않아도, 주어진 것으로 추리는 가능하다. 물론 영상까지 공들여 찍어놓은 단서를 발견하지 못하면 '방송에 못 내보내네' 생각하며 마음이 아프다. 단서를 두고 제작진이 시뮬레이션하긴 한다. 그런데 잘 안 맞는다. 결정적인 걸 초반에 발견하면, 쉽게 풀어갈 거라고 생각하는데 오산이다. 사람인지라 뒤에 나오는 게 결정적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Q. 박강남 등 '크라임씬' 팬들이 최애(최고 애정하는) 에피소드가 있지 않나. PD님의 최애 에피소드도 있나.
"박강남을 예로 들어서 말씀이지만, 저도 그 에피소드를 좋아한다. 산장 에피소드도 좋아하고. 하지만 최애는 없다. 사실 박강남 에피소드는 촬영 현장에서 '망했다'라고 생각한 회차였다. 너무 빨리 끝났다. 장진 감독이 신들렸고, 박지윤은 당황했다. 아직도 트라우마라고 하더라. 제작진도 '뭐지' 싶었다. 다행히 편집하면서 '이 정도면 방송할 수 있겠다' 생각했지, 대박이 날 줄 몰랐다. 정말 모른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만들 뿐이고, 대박은 시청자들이 결정해 주신다. '크라임씬 리턴즈'의 5개 에피소드가 과거 에피소드를 뛰어 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회차마다의 다름이 있고, 풀림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시즌은 이번 시즌 나름대로 '다르고 재미있는데? 이래서 5개밖에 못 만들었구나'라고 말씀해 주시면 좋겠다."
Q. '크라임씬'을 비롯해 '싱어게인', '슈가맨', '효리네 민박' 등 PD님의 손에서 탄생한 예능 프로그램들이 대중의 큰 사랑을 받아왔다.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 가장 고민하는 지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비슷한 부류의 프로그램을 계속 못 하는 성향이다. '내가 이런 류를 잘하니까 이걸 계속해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 '이번엔 다른 걸 해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음악, 추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 것 같다. 같은 프로그램을 해도 '이번 시즌은 달라야 하지 않아?'라고 차별점을 고민한다. '크라임씬 리턴즈'에도 그런 면이 반영되어 있다. 그 고민의 지점이 좋은 방향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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