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가격과 적은 매물…판매량 영향 少
업계 신뢰도 상승과 대기업 진출 판로 만들어
가격 방어, 온라인 사업 확대 등 확장성↑
현대차 양산 인증중고차 센터 상품화 A동에서 판금 도장 작업을 거치고 있는 매입 중고차./임주희 기자
현대자동차가 인증중고차 사업을 론칭한지 100일이 지났다. 현대차가 중고차 업계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이란 예상과 다르게 높은 가격대로 인해 판매량에서 의미 있는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평가다. 다만 중고차 시장에 신뢰도를 높이고 대기업 진출의 판로를 연 것과 향후 사업 확장성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지난해 10월 24일 인증중고차 사업을 본격 개시했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제조사 인증중고차' 사업을 시작한 건 현대차가 최초다. 중고차 판매업이 생계형 적합 업종으로 지정돼 대기업의 시장 진출이 제한됐었으나 2022년 3월, 생계형 적합 업종 분류가 풀리면서 현대차가 중고차 사업에 뛰어들을 수 있었다.
기존 중고차 업계에서는 대기업이 시장에 합류하면 소상공인의 생존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이에 현대차는 기존 업계와 상생하기 위해 5년·10만km 이내 자사 브랜드 중고차만을 매입·판매할 것과, 점유율을 올해 4월까지 전체 시장 판매량의 2.9%, 2025년 4월까지 4.1% 이내로 유지하기로 하는 등 상생 전략을 내세웠다.
1일 오후 2시 현대차 인증중고차 웹사이트에 그랜저 GN7 가솔린 3.5 AWD 모델이 473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현대차 인증중고차 웹사이트 캡처
뚜껑 열어보니…비싼 가격과 적은 매물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에 뛰어들었으나 전체 판매량에는 유의미한 변화를 주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중고차 실거래 대수는 총 19만3550대로 전월 대비 4.8%, 전년 동월 대비 2.6% 늘었다. 신차 할인 프로모션이 느는 연말에는 중고차 가격도 함께 떨어져 구입이 늘어난다.
현대차가 중고차 시장 진입후 시장에 끼친 영향은 아직 크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우선 비싼 가격과 적은 매물이 약점으로 꼽힌다.
현대차의 초기 매물로 나온 중고차는 전시 및 시승·업무용으로 운영되던 차량과 직원들에게 미리 매입한 차량이다. 이후 '내차팔기' 고객들이 늘어나 선순환돼야 하지만 5년·10만km 이내 무사고 차량을 중고차로 내놓을 수 있는 고객은 많지 않다.
현대차는 '내차팔기' 고객을 더 확보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27일부터 올 1월까지 진행하던 최대 4% 보상금 지급 이벤트를 한 달 연장했다.
매입된 중고차는 현대차 272개, 제네시스 287개 항목의 진단·검사를 거쳐 품질 인증을 받고 판매된다. 이 과정에서 품질 개선, 부품 교체 등이 진행돼 시중 중고차보다 판매가가 높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비슷한 연식의 그랜저 GN7 가솔린 3.5 AWD 모델을 현대차 인증중고차 사이트에서는 473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반면, 케이카에서는 4590만원에 구매할 수 있다.
현대차 인증중고차 양산센터 상품화동에서 상품화 전담 인력이 매입한 중고차에 대해 272개 항목의 정밀진단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현대차 제공
대기업의 시장 진출…신뢰도 UP
판매량은 적어도 시장 전반적인 신뢰도 향상에는 영향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제조사가 직접 체계적이고 철저한 인증 시스템을 마련한 만큼 매물에 대한 신뢰도는 높게 형성된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가 주먹구구식으로 이뤄지던 중고차 판매에 대한 객관적인 데이터와 기준을 만들어가고 있다"며 "서비스에 대한 상향 평준화와 중고차의 전반적인 신뢰감 조성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또한 대기업의 중고차 시장 진출 판로를 열기도 했다. KG 모빌리티는 지난해 3월 인증중고차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현대차가 체결한 상생협약을 바탕으로 KG 모빌리티도 합의를 도출해 연내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SK와 롯데도 중고차 시장에 발을 들이고 있다. SK렌터카는 경기도 화성에 '인증중고차 동탄센터'를 오픈했다. 롯데렌탈도 '롯데렌터카 마이카 세이브'를 출시해 중고차 장기렌탈 서비스를 제공한다.
현대차 인증중고차 양산센터 외관./현대차 제공
시작은 중고차…사업 확장 가능성 주목
현대차가 인증중고차 사업을 통한 사업 확장성을 주목하고 있다. 단순히 중고차로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넘어 신차 구입 유도 및 브랜드 이미지 제고, 온라인 사업 확대 등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이 신차를 구매할 때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 중 하나는 '중고차 가격 방어'다. 가격 방어가 잘 되는 차를 사야 향후 차를 높은 가격에 되팔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중고차 가격은 신차 가격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며 브랜드의 이미지와도 직결된다.
현대차가 직접 인증중고차 사업을 전개해 리셀가를 높이는 것은 고객들의 신차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 특히 고급 브랜드인 제네시스의 경우 감가율이 큰 것이 단점으로 꼽혔으나 인증중고차를 통해 가격 하락을 방어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또한 현대차는 인증중고차 사업을 통해 고객의 차량 구매부터 판매에 이르기까지 차량 생애주기 전반에 걸친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 자동차를 만드는 제조사를 넘어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거듭나고자 하는 현대차에게는 고객과 차량의 모든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증중고차 사업은 온라인 사업 확대의 발판이 될 수 있다. 현대차의 인증중고차 판매 및 구매는 전부 모바일 또는 웹 등 온라인에서만 이뤄진다. 온라인은 모든 정보가 동등하고 투명하게 공개되며 이용하기 편리하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인건비, 물류비, 부동산비 등 운영비 절감도 가능하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이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일부 국가에서 온라인 직접 판매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폴스타와 혼다가 100% 온라인 판매를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도 아마존과 협력해 미국에서 온라인을 통해 자동차를 판매한다. 다만 국내에서는 영업사원의 일자리 문제로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로 인해 인증중고차 사업은 온라인 사업의 첫 단추로서 노하우 획득과 다른 서비스와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 - 디지틀조선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