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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소희가 '한소희'를 바라보다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4.01.27 00:01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 채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소희 / 사진 : 넷플릭스

"중간에 점점 채옥이가 아니라 '이소희'가 들어온 것 같아서 너무 힘들 때도 있었거든요. 그런데도 끝까지 채옥이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 그거 하나."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를 마무리한 지점에서 한소희가 만족감을 느낀 지점을 이야기했다. '경성크리처'는 무려 2년 동안이나 이어진 장기 프로젝트였다. 시즌 1에서 경성 시대를 배경으로 크리처의 탄생을 이야기했고, 현대로 넘어와 이야기가 전개되는 시즌 2까지 확정됐다. 한소희는 시즌 1과 2가 함께 제작되는 장기 프로젝트임을 알고 촬영에 들어갔다. 그리고 약 2년의 세월 동안 채옥으로 남기 위해 '몰입'했다.

채옥은 일제강점기에서 10년 전 사라진 엄마를 찾기 위해 아빠(조한철)와 토두꾼(사라진 사람을 찾아주는 사람)이 된 인물이다. 엄마의 흔적을 찾아 도착한 경성에서 채옥은 전당포를 운영하는 태상(박서준)을 만나게 되고,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탄생한 크리처를 마주하게 된다. 한소희는 "정동윤 감독님께서 제가 해석한 채옥이가 가장 걸맞은 채옥이라는 믿음을 주신 것 같아요. 덕분에 저도 '여기에서 채옥이를 가장 많이 생각한 건 나밖에 없겠지'라는 믿음으로 쭉쭉 촬영한 것 같아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시리즈 '경성크리처'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스태프들을 많이 괴롭혔어요. '컷, 오케이' 소리가 들리면 분장, 의상, 미술, 소품팀 스태프들에게 바로 달려가서 '채옥이 같았어?'라고 물어봤어요. 사람들이 나중에는 노이로제가 걸려서 저를 다 피했어요.(웃음) 그래도 '나 채옥이였어? 한소희였어?'라고 계속 물었어요. 저는 촬영할 때 모니터를 안 하거든요. 예를 들어, 모니터링하면서 제가 머리를 왼손으로 쓸어넘기는게 거슬리면, 왼손에만 신경을 쓰게 돼요. 그리고 어떤 각도가 못생겨 보이면, 저도 모르게 그 각도로 안 보이려고 하게 되고요. 다른 사람이 봐주는 제 모습이 정확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렇게 다른 사람을 만들고 싶어요."

마음에 걸리는 장면은 감독님께 부탁해 다시 촬영했다. 채옥이가 경성에서 사이클을 구입하는 장면은 다시 촬영한 장면이었다. 채옥의 톤보다 밝은 톤으로 연기한 것에 '한소희'의 모습이 담겼다. 한소희는 조심스럽게 감독님께 "저, 걸리는 장면이 하나 있는데요"라고 이야기했다. 감독님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그 장면을 이야기했고, 완성된 장면은 다시 만들어진 장면이다.

사실 한소희와 채옥이 닮은 지점이 있었다. 한소희는 채옥의 말투를 이야기하며 "채옥이가 성질이 좀 급해요"라고 자연스럽게 그의 성격을 언급했다.

"채옥이의 목표는 딱 하나거든요. 엄마. '다 필요 없어, 엄마'라고 하는 인물이 바로 채옥이에요. 대사에도 그런 모습이 많이 담겨요. 채옥이가 '됐소, 내가 하겠소'라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다른 사람도 못 믿는 거예요. 물불 안 가리고 다 뛰어드는 인물이 채옥이죠. 자기 인생까지 포기하면서요. 그게 저와 제일 교집합이던 부분이었어요. 저도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요. (물불은) 가리려고 하는데. (웃음)"

시리즈 '경성크리처'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경성크리처'는 1945년을 배경으로 한다. 일제강점기의 말기였다. 한소희는 첫 시대극을 마주하며 역사적 사실의 기반이 되는 정도만 준비하려 했다.

"채옥의 대사 중에 '만주에서도 똑같은 실험을 하고 있었다'라는 말이 있어요. 채옥이는 이걸 잘 알고 있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가장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캐릭터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청자들의 눈이 되는 캐릭터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 작품 속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어요. 잃어버린 엄마를 찾아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인물이잖아요. 그래서 시대를 공부하기보다는 '채옥'이라는 인물에 더 중심을 두고 임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제목에도 담겨있듯, 시대가 주는 아픔 속에 채옥이 있었다. 그리고 태상(박서준)이 있었고, 나월댁(김해숙), 윤중원(조한철), 권준택(위하준), 갑평아재(박지환) 등이 있었다. 한소희는 '경성 크리처' 속에 담긴 사람들을 봐주기를 바랐다. 그 마음이 그가 작성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담겼다.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 채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소희 / 사진 : 넷플릭스

"경성의 낭만이 아닌, 일제강점기 크리처가 아닌, 인간을 수단화한 실험 속에 태어난 괴물과 맞서는 찬란하고도 어두웠던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 서로가 서로를 사랑으로 품어야만 단단해질 수 있었던 그해 봄,"

이는 한소희가 '경성 크리처'가 공개된 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의 전문이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와 '경성크리처' 속 등장인물들의 사진을 공개했다. 해당 글에 일본 네티즌들은 불편한 속내를 내비쳤다. 그리고 일부 일본 네티즌들은 역사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런 댓글 중 하나에 한소희는 "슬프지만 사실인걸. 그래도 용기 내주어 고마워"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렇게 기사가 많이 나고 화제가 될 줄 전혀 생각 못 했어요. 악플이 많이 달렸다고 하는데, 제가 일본어를 잘 몰라서 정말 몰랐어요. 제가 댓글을 단 건, 제가 이해할 수 있게 한국어로 용기 내 마음 써준 팬분께 답변한 것뿐이에요. 다이렉트 메시지로도 많이 와요. '이 의견이 일본인 전체의 의견이 아니다, 인신공격 미안하다'라고요. 되게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 채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소희 / 사진 : 넷플릭스

한소희는 현대 시점에서 이어진 '경성 크리처' 시즌2 촬영까지 마쳤다. 약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장기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바에 대해 한소희는 "일단 참으면 된다. 참으면 시간은 가더라"라고 털털하게 답변을 시작했다.

"시즌 1 찍으면서 언제 끝나나 했는데, 눈 뜨니까 마지막 촬영을 하고 있고, 눈 뜨니까 시즌 2 찍고 있고, 또 어쩌다보니 마지막 촬영을 하고 있더라고요. 끝나을 때도 '거짓말이지?'하고 안 믿었어요. 염색하지 말고 기다리자고요.(웃음) 저에게 많은 성장이었어요. 현장에서 저를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웠고, 또 작품이 끝나고 나서 저를 컨트롤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아직 시즌 2 공개 전이잖아요. 아직 저는 끝난 느낌이 안 들어요."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 채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소희 / 사진 : 넷플릭스

촬영 중에는 인물에 집중하는 과정일 테지만, 작품이 끝난 후 컨트롤 하는 방법에 대해 궁금증이 더해졌다. 30대의 출발선에서 한소희는 여러 생각을 이어가고 있다.

"일이 바쁘면, 월화수목금토 일하고 일요일 하루 쉬어요. 그럴 때는 그냥 잠만 자고, 쉬면 되는데요. 갑자기 일이 없고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쉬게 되면, 혼자 뭘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게 애매해요. 또 그다음에는 바로 일이 있으니, 여행 가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에요. 어느새 취미 생활을 잃어버린 거예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내지?'라는 게 하나의 숙제로 다가오니 힘들더라고요."

"20대 때는 건강을 좀 해치면서 해도 '할 수 있다'라는 착각이 있었어요. 되게 중요한 건데, 살을 뺄 때도 그냥 굶어서 뺐어요. 연기할 때도 그냥 나를 구석으로 몰아붙여 나를 울려가며 연기했어요. 그래도 회복이 금방금방 됐거든요. 그런데 불과 1, 2년 정도 차이인데 30대에는 제가 저를 회복시키지 않으면 안 되더라고요. 잠을 자지 않으면,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연기를 할 수 없어요. 제가 항상 팬들에게 내뱉는 말이 있는데 '밥 잘 챙겨 먹어'라고 하거든요. 20대 때는 그냥 내뱉는 말이었거든요. 30대가 되니 '정작 너는 안 먹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먹으라고 해?'라는 죄책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좋은 연기를 보여주려면, 그 상황에 집중하고 기술적인 지점도 연구해야겠지만, 육신이 건강해야 해요. 그걸 뼈저리게 느꼈어요."

시리즈 '경성크리처'에서 채옥 역을 맡아 열연한 배우 한소희 / 사진 : 넷플릭스

한소희는 드라마 '부부의 세계' 등의 작품으로 대중에게 깊이 각인된 뒤, 넷플릭스 시리즈 '마이 네임' 등의 작품으로 일약 스타덤에 섰다. 배우가 된 건, 우연이었지만 그 연은 깊은 뿌리를 내렸다. 한소희는 아직도 이소희(본명)가 되어 '한소희'를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보곤 한다.

"저를 상품으로 놓고 봐요. 한소희라는 사람을 한 발 떨어져서요. 저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럼에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객관화시켜서 (저를) 탐구하고 연구해요. '왜'라는 질문을 되게 많이 해요. '왜 팬들이 나를 좋아할까', '왜 사람들이 이런 걸 좋아할까', '왜 이 작품에서 연기를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을까', '왜 이 연기가 어색해 보였을까' 등 수많은 질문을 던져요. 그런 과정에서 결론지은 바가 있다면, 솔직한 제 모습을 좋아해 주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한소희는 채옥이처럼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다. 피어싱하고 싶으면, 일단 한다. 그런 한소희가 사랑하게 된 것이 '연기'다.

"저는 그냥 저대로 살고 싶어요. 법안에서. (웃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그냥 저답게요. 어차피 인생은 한 번이잖아요. 눈치는 조금 보더라도(웃음)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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