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 위기에 '반도체' 불황…'자동차·조선·방산' 호황
경제협력 확대와 투자 유치 성과 이룬 '부산엑스포 유치전'
한화 품에 안긴 대우조선…내년으로 넘어간 아시아나 인수
2023년 재계는 어려운 한 해를 보냈다. 글로벌 경제 위기가 지속되며 수출 효자 노릇을 하던 반도체는 유례없는 적자를 기록했으며,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 속에 K-기업의 등이 터지는 형국이었다. 다만 힘든 시기 속에서도 자동차, 조선, 방산산업이 비상했으며, 비록 실패로 끝났으나 글로벌 네트워크를 단단히 한 총수들의 부산 엑스포 유치전도 빛났다.
28일 디지틀조선TV는 재계 10대 주요 이슈를 정리하며 올해 재계가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본다.
삼성전자 서초사옥(왼쪽), 현대차·기아 본사./뉴스1
①상장사 영업익 1·2위…질주한 車 업계
2009년 이후 14년 동안 국내 상장사 영업이익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던 삼성전자를 밀어내고 올해 현대자동차·기아가 1·2위를 나란히 차지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Fn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의 올해 연간 예상 영업이익은 15조4840억원이다. 기아는 12조1289억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기아의 역대급 실적에는 고부가가치 차종 중심의 판매 믹스 개선과 전동화 전환에 발 빠르게 대응해 경쟁력 있는 신차를 선보인 것이 주효했다. 현대차의 올해 3분기 SUV 판매 비중은 54.7%이며, 기아는 같은 기간 68.7%로 역대 최고치를 달성했다. 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 등 친환경차의 성장세도 돋보인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는 해외 시장에서 지속 호평을 받으며 꾸준한 판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전 세계적인 하이브리드차 수요에 발맞춰 주력 모델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추가해 선보이며 시장 니즈에 적극 대응했다.
②적자만 20조원…역대급 반도체 불황
글로벌 경기 침체에 가장 타격을 받은 산업 중 하나는 반도체다.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역대급 불황에 삼성전자의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과 SK하이닉스의 올해 1~3분기 누적 적자 규모는 20조원을 넘어섰다.
재고 과잉 여파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자 반도체 업체들은 차례로 감산에 나섰다. 다만 공급 조절 효과가 본격 작용하고, HBM 등 고성능 메모리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며 차츰 적자 규모가 줄어들어 내년 상반기에는 실적 반등을 이뤄낼 것으로 전망된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국제박람회기구(BIE) 제173차 총회'에 참석해 대화를 나누고 있다./뉴스1
③총수들의 민간외교 빛났다…부산엑스포 유치 활동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위해 국내 주요 기업 총수들은 지난 수개월간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총력전을 펼쳤다. 지난해 6월 출범한 민간유치위원회가 이동한 거리는 총 1989만1579km로 지구 495바퀴에 달한다. 특히 삼성·SK·현대차·LG·롯데는 전체 교섭 활동의 89.6%를 차지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올해 들어 거의 매달 해외 출장을 떠났으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민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세계 곳곳에서 지지 호소와 경제협력 확대를 논의했다. 비록 유치는 실패로 끝났지만 민간 외교관을 자처한 총수들은 탄탄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다졌으며, 경제협력 확대, 투자 유치 등의 성과를 거뒀다는 평가다.
④전경련, 한경협으로 새 출발…4대 그룹 합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1968년부터 55년간 유지해온 명칭을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로 변경했다. 한경협은 1961년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등 기업인 13명이 단체를 설립할 당시 이름으로,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취지가 담겼다.
수장으로는 류진 풍산그룹 회장이 선임됐다. 그는 취임사를 통해 "글로벌 무대 퍼스트 무버의 길을 개척해 나가는 데 한경협이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과 한경연 간 통합합의문'도 채택돼 기존 한경연 회원사로 남아있던 4대 그룹(삼성·SK·현대차·LG)도 한경협에 합류하게 됐다. 삼성증권은 4대 그룹 계열사 중 유일하게 한경협에 합류하지 않기로 했다.
HD현대중공업의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 조감도(왼쪽),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레드백./각사 제공
⑤슈퍼사이클 돌입한 K-조선
조선업계가 10년가량 지속된 불황을 지나고 수주 호황기를 맞이했다. 조선 3사가 쌓아놓은 일감만 3년 치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 9월 연간 수주 목표를 조기 달성했다.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 선박 발주가 증가하며 시장을 일찍이 선점하고 기술경쟁력으로도 앞서있는 K-조선이 활기를 띠었다는 분석이다.
한편 K-조선 내부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도 관전 포인트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울산급 호위함 배치3 5·6번함, 3600톤급 잠수함 장보고Ⅲ 배치2 3번함, 카타르 프로젝트 등에서 격돌했다. 양사는 캐나다 수주전에서도 입장 차이를 보였다. HD현대중공업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코리아 '원팀'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한화오션은 풍부한 수주 경험으로 단독 입찰을 따내겠다는 입장이다.
⑥글로벌 무대 정조준 K-방산
국방부에 따르면 올해 우리 기업의 방위산업 수출액은 130억달러(약 16조9000억원)를 웃돌 전망이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세계 '톱 10 방산 수출국' 진입도 유력하다. 수출 대상국은 지난해 4개국에서 올해 총 12개국으로 3배 늘었다. 수출 무기체계도 6개에서 12개로 다변화했다. 특히 지난해 폴란드 수출액 비중이 전체의 72%를 차지했으나, 올해는 32%로 줄어들었다.
특히 정부의 지원도 주효했다. 정부는 '세계 4대 방산수출국'을 목표로 전 세계 주요 방산 전시회를 찾아다니며 K-방산을 알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방문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방산 기업이 동행하며 세일즈에 나서기도 했다. 정부는 내년에도 중동과의 협력을 지속 추진하고 폴란드와 캐나다 등 방산수출 지원에 만전을 다하겠다는 방침이다.
⑦미-중 힘겨루기에 눈치 보는 한국
미국 IRA 발효, 대중 반도체 제재 등 미-중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중국 역시 희토류·요소수·흑연을 무기화하며 맞대응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요구되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완성차, 배터리 업체들의 리스크가 확산됐다.
이에 완성차·배터리 업계는 북미에 합작공장을 건설하는 등 현지 생산 확대와 부품 현지화를 통해 대응하고 있다. 이차전지소재 업계는 아르헨티나·캐나다·호주 등 원료 공급망 다변화를 추진 중이다. 정부 역시 반도체 희귀가스, 흑연, 요소 등을 185개 공급망 안정품목으로 선정하고,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한화로고로 새 옷을 입은 한화오션 거제 사업장 전경./한화오션 제공
⑧대어 인수전…한화·하림 성공, 대한항공 연기
올해 인수합병(M&A) 시장의 대어로는 대우조선해양과 HMM이 꼽혔다. 대우조선해양은 한화그룹이 최종 인수하며 한화오션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한화그룹 편입 후 첫 분기 흑자 전환에 성공하며 성공적인 출범을 알렸다. HMM 경영권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는 동원그룹을 제치고 하림이 선정됐다. 내년 상반기 본계약 마무리 시 하림의 재계 순위는 27위에서 13위로 상승할 전망이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합병은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아시아나항공 화물사업부 매각을 요구하며 기업결합 심사를 중단했다. 이에 아시아나항공 이사회는 화물사업부 매각을 결정했으며 EU 집행위원회는 내년 2월 14일까지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겠다고 공지했다. 현재 양사는 EU·미국·일본의 심사만을 남겨두고 있다.
⑨尹 노란봉투법 거부권에 숨돌린 재계
일명 '노란봉투법'이라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 개정안이 최종 부결됐다. 노란봉투법은 하도급 노동자에 대한 원청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고, 불법파업노동자들에 대한 사측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제한하는 법이다. 재계에서는 기업 경영활동 위축과 과도한 파업권 보장 등에 우려를 표했다.
지난달 9일 야당의 주도로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재계의 긴장감은 높아졌으나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며 다시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다. 이후 이달 8일 재표결 진행 결과 찬성 기준을 넘지 못해 최종 부결됐다.
정기선 HD현대 부회장(왼쪽), 구동휘 LS MnM COO./각사 제공
⑩세대교체·미래준비 키워드…연말 인사
LG그룹을 시작으로 주요 기업의 연말 인사가 마무리됐다. 올해 연말 인사의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미래 준비다. 삼성전자는 기존 한종희 부회장·경계현 사장 투톱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미래사업기획단' 신설로 미래 준비를 강화했다. SK그룹은 부회장 4인이 일선 후퇴하며 세대교체가 단행됐다. LG그룹 역시 70년대생 신규 임원을 중용하며 세대교체와 미래 준비로 구광모 체제를 강화했다.
한편 80년대생 오너일가 경영인도 전면 배치됐다. 정기선 HD현대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고, 구동휘 LS일렉트릭 부사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LS MnM의 COO로 선임돼 소재 사업 추진과 기업공개(IPO)를 맡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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