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안은진 인터뷰 / 사진: UAA 제공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드라마 '연인'을 마친 안은진을 만났다. 안은진은 '연인'에서 곱게 자란 양가댁 애기씨에서 병자호란을 겪고 한 사내를 진심으로 사랑하며 강인한 여인으로 성장하는 '유길채'를 맡았다.
'연인'의 인기를 실감하는지 묻자 안은진은 "계속 촬영을 바쁘게 하느라 실감을 못했는데, 종방연 때 사인을 하고 이럴 때마다 어머님들이 그렇게 좋아하신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조금 실감을 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드라마 '연인'은 시청률은 물론이고, 화제성까지 모두 잡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러한 반응을 예상했는지 묻자 "감독님과 작가님, 남궁민이라는 조합으로 당연히 인기가 없을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안은진은 "다만 길채가 이렇게까지 사랑을 받을지는 몰랐다. 매일 할당량을 해내는 것만 생각했었다. 선배님의 멜로 파트너이자, 작가님이 집필하신 커다란 역사 속에서 변화하는 인물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생각에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초반에는 감독님께, 중반부터는 선배님께 의지하고 작가님께도 연락을 드리며 작품을 만들어갔던 것 같다. 힘들었던 마음이 '이렇게 도움을 통해 다 해소될 수 있구나'라는 큰 공부가 됐던, 많이 배운 한 해인 것 같다"라고 전했다.
초반에는 안은진의 캐스팅을 두고 '미스 캐스팅'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은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유길채를 완성시켜가며 시청자를 설득시켰다. 안은진은 "사실 초반에 길채가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이기적으로 보일 만큼,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고 그런 캐릭터를 예쁘게 봐주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것에 대해서도 선배님과 이야기를 했는데, 선배님이 3, 4회가 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때부터 길채 캐릭터가 응원을 받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속상했지만, 나중에 바로 괜찮아졌죠"라고 돌아봤다.
이어 "초반에 어렵기도 했지만, 이렇게 변화무쌍한 10여 년의 세월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시작부터 정의롭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할 수도 있는 인물이다. 그런 사람으로 시작돼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좋았다"라고 전했다.
실제로 '연인'은 길채가 성장해가는 과정을 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안은진은 "초반의 길채 모습을 잡는 것이 어려웠다"라며 "길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한 만큼, 흐름상 초반의 길채 모습을 어떻게 구축이 되는지가 중요했다. 저도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는 잘 스며들지 못했던 것 같다. 좀 더 착하게 그려져야 하는 것 아닌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님과 감독님께서 그런 기질을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다고 하셨다. 대본대로 앙큼하고 새초롬하게 이런 주문을 많이 해주셔서 초반의 길채를 표현하는 것이 저 개인적으로는 어려웠던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처럼 앙큼했던 애기씨는 이장현을 만나고, 또 병자호란을 겪으며 점점 강인한 여인으로 변해간다. 안은진은 "대본을 보면서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통에 아기를 받고 하는 것은 이 사람이 가진 기질 덕분이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손에 물 한 번 묻혀본 적이 없는 사람이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끌고 가려는 그 상황이 대본을 보면서도 인상 깊고 재미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초반에는 재미있던 마음이었다면, 나중에는 이렇게 한 여인의 인생이 기구할 수가 있나 싶었다. 장현과의 로맨스를 빼놓고 봐도 그렇다"라고 돌아봤다.
실제로 기구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당시 역사가 그러했다. 청나라의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여성들을 '환향녀'로 불렀다. 안은진은 이러한 장면을 담은 것들에 대해 "작가님의 신랄한 비판이었던 것 같다. 당시에 돌아온 여성들이 이혼을 많이 당했다고 들었다. 저도 대본을 보며 역사 공부를 한 느낌인데, 포로들의 삶이 중점이 되다 보니까 그러한 서사가 되게 상세하게 적혀있고, 드라마에서도 길게 팔로우를 해준다. 작가님께서 파트2에서는 포로들과 장현의 삶, 그리고 그 안의 사람이었던 길채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포로들이 속환된 이후 삶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걸 찍는 저희뿐 아니라 시청자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 작품이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고된 상황 속에서도 유길채는 당당한 여성상을 보여준다. 그 시대에 가능한 인물이었을까 묻자 안은진은 "저도 하면서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지 생각을 했다. 현대로 바꿔 생각해도 정말 능동적인 사람이다. 속환되고 나서 계속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말이 들리는데, 그게 일상이었을 텐데 거기에 맞서 싸우는 모습들은 진짜 길채니까 할 수 있던 행동인 것 같았다. 당시 촬영할 때는 '그래, 이게 왜?'라는 마음으로 자연스럽게 움츠러들 필요 없다는 마음으로 연기를 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얼마나 힘든 일이었나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길채가 더 대단하고 멋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유길채는 그렇게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주며 계속해서 살아가게 된다. 안은진은 "우리 살아서 좋았다거나, 내가 너를 지켜줄게 하는 등의 대사에 힘이 컸던 것 같다"라며 "어떻게 보면 그런 부분들이 허를 찔렀다는 생각도 드는 것이 역사가 이랬다고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닌, 다른 선택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며 비꼬는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들었다. 작가님의 의도를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런 숨은 부분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라고 전했다.
다만 유길채도 잠시 희망의 불꽃이 꺼지는 시간이 있다. 안은진은 "파트 1을 촬영할 때도 전쟁이 터졌지만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나아갔고, 나중에 한양에 돌아온 뒤에도 대장간을 맡아 열심히 살았다. 파트 2가 되어 끌려갔을 때도 어떻게든 살려고 생각한다. 아무리 괴롭힘을 당해도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던 중 남편인 원무가 돌아갔다는 말에 희망을 잃게 된다. 그러다 장현을 다시 만났을 때 이미 자포자기한 상태였기 때문에 내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사람은 날 위해 뭐든 할 것이라는 것을 아니까, 장현이 길채를 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며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안은진은 이때를 길채의 2막이 시작되는 시기였던 것 같다며 "그때부터 다시 길채가 길채처럼 살기 시작하는 것 같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결국 길채는 '연인'이 있었기에, 이장현이 있었기에 다시 살아갈 희망을 얻게 된 것이다. 남궁민과 연기 호흡은 어땠는지 묻자 안은진은 "'연인'이라는 로맨스 이전에 후배로서 이러한 어려운 작품에서 선배님처럼 존재만으로 의지가 되는 분을 만나서 행복했다. 정말 많이 여쭤보고 의지했고, 선배님이 제안을 해주시는 말들이 거의 정답이었다. 정말 남궁장현이다. 길채는 성장해가며 변화하는데 장현은 한결같은 인물이다. 남궁민 선배님이 늘 똑같이 단단하게 있어주신 것이 많은 의지가 됐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멜로 상대로서도 정말 스윗하고 다정하게 챙겨주신다. 촬영 때마다 어떤 불편한 점이 없는지 늘 물어봐 주시고, 또 촬영에 들어가면 정말 눈빛을 갈아끼운 듯이 누구보다 예쁜 아이로 바라봐 주신다. 진짜 길쪽이 같은 시절부터 그렇게 해주신다. 내가 어떤 모습을 해도 선배님께서 예쁘게 봐주시니까 시청자들도 그렇게 바라봐 주실 수 있었던 것 같다. 정말 눈빛이 다했다고 생각한다. 제가 멜로 연기를 편안하고 충분히 사랑을 담아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셔서 참 감사했고, 저는 어땠을까 죄송한 마음이기도 하다. 남궁장현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상황이 정말 다 이해가 된다"라고 답했다.
어떤 상황이든 따뜻하게 바라봐 주는 시선, 이장현의 그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대목은 바로 자신의 상처를 고백하는 길채를 향해 "안아줘야지, 괴로웠을 테니"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안은진 역시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로 꼽으며 "길채를 연기하는 저도 큰 위로가 됐다. 사실 나한테 큰 상처가 된 일이라 조심스럽게 어떡하지 이런 마음이었는데, 그렇게 다 괜찮다고 얘기해 주며 다 받아준다. 대본을 처음 받았을 때부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연습을 하고 무뎌질 뻔도 했는데, 그 부분은 저한테 눈물 버튼이다. 그 신을 찍을 때 정말 모두에게 소중하다 보니 선배님도 소중하고, 저도 많이 준비해서 갔는데 촬영 때 선배님이 차분히 찍자는 말을 해주셨다. 덤덤하게 꾹꾹 눌러진 장현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런 장면이 아니었나 싶다"라고 말했다.
'연인'은 마지막까지도 위기를 겪는 장현과 길채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1회 강렬한 오프닝을 장식했던 장면이 마지막 회에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장현은 바닷가에서 홀로 수십의 사내들과 대적했고, 이장현의 뒤로 수많은 화살이 쏟아지며 그의 죽음을 암시했다. 하지만 이장현은 죽지 않았다. 다만 기억을 잃은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유길채가 했던 말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유길채가 살고 싶다던 대로 능군리 근처 마을에 작은 초가집을 짓고 홀로 살아가고 있었다. 먼 길을 돌아 두 사람은 다시 만났다.
안은진은 "기억을 잃는 엔딩은 사실 그 정도로 맨날 다치면 기억을 언제 잃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전에도 영영 기억을 잃을지 모른다는 복선들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저는 엔딩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1화의 그 신을 다시 쓴다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죽었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오랫동안 길채의 말만 기억하며 기다리고, 살아간 사람이었다. 장현이 길채를 까먹고도 기다리는 그 엔딩이 수미상관적으로도 좋았다"라고 답했다.
극 말미 이장현은 "서방님, 길채가 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건네진 은가락지를 보며 극적으로 기억을 되찾게 된다. 안은진은 "촬영을 할 때도 꽉 닫힌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어 후련하게 보내줄 수 있었다"라며 "그 뒤로도 수완이 좋은 둘인 만큼, 정말 잘 살아갈 것 같다. 행복하게 보내줄 수 있는 엔딩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만족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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