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빌런 한수강 역을 맡은 배우 이준영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손숙 선생님께서 해주신 '힘들지'라는 말에 더 울컥해서 선생님을 그냥 한동안 안고 있었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요. 그리고 구석에 가서 울었어요. 그때 저희 친할머니도 편찮으실 때라 촬영 전부터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격려를 많이 받았어요."
넷플릭스 시리즈 'D.P.' 시즌 1부터 '마스크걸', 그리고 영화 '용감한 시민'에 이르기까지 이준영은 말 그대로 '나빴다'. 나빠도 너무 나빴다. 'D.P.'와 '마스크걸'에서는 여자친구를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25일 개봉한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학교 폭력의 끝을 보여줬다. 친구를 향한 가해부터 새엄마, 선생님, 그리고 김밥을 파시는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대상을 가리지 않는 가해는 보는 내내 마음에 불구덩이를 하나씩 안겨주게 했다. '실제로 나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렇게까지 연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으로 이준영과 만났다.
'용감한 시민'은 과거 복싱선수 출신을 지우고 기간제 교사로 살아가는 '소시민'(신혜선)이 학교에서 절대 권력을 가진 학생 '한수강'(이준영)을 만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한수강 역을 맡은 이준영은 친구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씌우고, 정문에서 김밥을 파시는 할머니(손숙)를 발로 차며 담배를 끼운 김밥을 먹이는 등 극악무도한 역대급 빌런의 모습을 선보인다.
영화 '용감한 시민' 스틸컷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왜?'였다. 지난 2014년 아이돌 그룹 유키스 미니앨범 'MONO SCANDAL'로 데뷔한 그는 아이돌이었던 과거가 싹 지워질 정도로 완벽한 빌런의 면모를 선보였다. 이준영은 "뛰어넘는 게 저의 도전이라고 생각해서요"라고 한수강을 맡은 이유를 전했다. 회사에서 말리지 않았냐고 묻자 "부담이 된 건 사실이에요. 텍스트로만 봐도 너무 기괴하고 이상한 짓을 많이 해서요. 말도 안 되는 인물이지만, 저나 회사 식구들 모두 모험가 기질이라서요. '같이 배 탈래?'라는 느낌으로 탐험에 떠났죠"라고 답했다.
하지만 그런 아들을 보는 어머니의 마음은 달랐다. 이준영은 "어머니랑 영상통화를 짧게 했는데요. 몸살에 걸리셨다고 우시더라고요. 펑펑 우신 건 아니고, 갑자기 울컥 눈물을 보이셔서. '왜 울어, 일인데'라고 이야기는 했지만, 제가 누군가를 때리고, 누군가에게 맞고 할 때마다 (그걸 보시는 어머니도) 몸에 같이 힘이 들어가셔서요. 심지어 '마스크걸'은 못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아버지는 되게 재미있게 보셨다고 하셨어요"라며 복잡한 마음을 웃음으로 대신했다.
영화 '용감한 시민' 스틸컷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이준영은 한수강에게 악해진 이유를 주고 싶지 않았다. 그는 "박진표 감독님과도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관객들이 한수강을 보고 '이 친구가 이래서 나빠질 수밖에 없구나'라는 생각을 1초도 하게 하지 말자고 했어요. 악한 것에는 이유가 없다고요"라고 이야기했다. 김밥 할머니(손숙)의 손자 진형(박정우)를 새로운 학폭 대상자로 삼은 이유도 따로 없었다. 이준영은 "진형이로 대상을 바꾼 건 할머니를 구하려고 한수강을 밀쳤잖아요. 자신에게 물리적인 행위를 가한 적이 없었던 거죠. 그래서 한수강이 '재밌네? 너 당첨' 이러면서 바뀌게 된 거죠. 참 나쁜 놈이긴 하죠"라고 답하면서도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
힘들었다. 한수강이 친구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씌우는 장면을 앞두고, 자신이 직접 써보기도 했다. 혹시나 피해자 연기를 하는 이가 위험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이준영은 "비닐봉지를 직접 써봤는데, 진짜 숨이 안 쉬어지더라고요. 이게 진짜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요즘 학교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더 심하다고 하더라고요. 참 흉흉하고 무서워졌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요"라고 이야기했다.
손숙과 박정우에게 폭력을 사용하는 장면을 앞두고 심적으로 부담이 크기도 했다. 그래서 손숙도 박정우도 오래 안고 있었다. "원래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힘든 일도 혼자 이겨내는 성향의 사람인데, 이 작품은 처음으로 혼자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체력적으로는 괜찮은데, 정신적으로요. 그래서 주변에 같이 있어달라고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죠. 사람들과 같이 있고, 반려견을 계속 끌어안고 있고 그랬어요"라고 말하는 이준영이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빌런 한수강 역을 맡은 배우 이준영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박)정우 형이랑 현장에서 엄청나게 붙어있었어요. 어제 되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거의 한 5분 동안 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박)정우 형이랑 작업하면서 참 많이 배웠어요. 연기를 너무 잘하고요.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배우가 되었습니다."
"이번 작품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원래의 저는 누구를 많이 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촬영하고 '오케이'를 받은 후에도 너무 미안한 거예요. 세팅하는 시간이 실제로는 길지 않은데, 너무 길게 느껴지고.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미안해, 죄송합니다' 뿐이고요. 한수강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장면은 여러 번 찍지 않도록, 오래 가지 않으려고 양해를 구하고 최대한 한 번에 빡 집중해서 하자고 생각했어요. 오히려 손숙 선생님과 (박)정우 형이 '괜찮다'고 계속 위로해 주신 것 같아요."
영화 '용감한 시민' 스틸컷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아이디어를 더한 지점도 있었다. 흥미로운 지점마다 내두르는 혀는 한수강을 더욱 악랄하게 보이게 했다. 악을 즐기는 그의 면모가 도드라졌기 때문. 그 혀 놀림은 이준영의 아이디어였다.
"감독님이 숙제를 내주셨어요. '최대한 악마처럼 보이려면 어떻게 할래?'라고요. 그래서 '습관을 만들어봐도 되겠습니까?'라고 말씀드리고 열심히 고민했어요. 성경에 등장하는 사탄이나 악한 인물들은 뱀으로 묘사되잖아요. 한수강이라는 인물이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을 '놀이'라고 생각해서 이를 접목하면 어떨까 의견을 드렸어요. 다행히 감독님께서 좋아해 주셨어요. 그런데 언제 쓰일지 모르니까, 감독님께서 디렉션을 주셨어요. '지금, 혀!'라고 말씀하시면, 그 연기를 했어요. 언제 쓰일지 몰라서 혀 관리를 열심히 했습니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빌런 한수강 역을 맡은 배우 이준영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그렇다고 'D.P.'나 '마스크걸' 속 악역 연기가 도움이 된 건 아니었다. 이준영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한 작품을 마친 것 같아요"라고 '용감한 시민' 작업을 마무리한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도 "'D.P.' 때 액션을 해봤으니, 몸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부담감이 좀 덜어졌다는 정도였던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이준영에게 배우로서 터닝포인트가 된 작품도 'D.P.' 였다. 그는 "배우로서 갖고 있던 생각과 관념 등을 깨부숴 준 작품"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제가 작품에서 욕을 처음 해봤어요. 'D.P.'에서 담배도 피워요. 작품에서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다 신기했어요. 한준희 감독님께서도 엄청나게 믿어주셨어요. '준영이 형, 하고 싶은 거 다 해요'라고 하시면서 가이드를 잡아주셨거든요. 그러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같이 연기한 구교환, 정해인 배우가 엄청 자유로워 보였어요. 그때부터 연기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빌런 한수강 역을 맡은 배우 이준영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빌런으로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지만, 사실 넷플릭스 시리즈 '모럴 센스'나 MBC 드라마 '일당백집사'에서는 강아지 같은 귀여운 면모로 사랑을 받았다. 이준영은 "그 작품 속에서는 유죄 인간, '용감한 시민'에서는 진짜 유죄"라고 웃으며 이야기한다.
"제가 낯을 진짜 많이 가려요. 사실 말수도 많은 편이 아니에요. 그래서 무표정할 때 '눈을 왜 그렇게 뜨냐?'라는 말을 듣거든요. 그런데 그게 기분이 좋아요. 어제 '모럴 센스'를 연출한 박현진 감독님도 뵈었는데요. '우리 골든레트리버가 어디로 없어진 거지?'라고 하셨어요. 재미있게 보셨다면서요. 그 말씀이 너무 감사한 것 같아요."
"연기하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제가 다른 인격으로 살아보는 거니까요. 물론 너무 힘들어서 울기도 하고, 아프기도 하고, 화도 나고, 행복하기도 하고. 이런 다양한 감정을 표현하기에 제 사회적 경험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도 있어요. 그러면서도 제가 잘 표현해낼 때 오는 짜릿함도 있고요. 그래서 더 연구하고, 공부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여전히 연기는 제게 너무 재미있는 분야입니다."
영화 '용감한 시민'에서 빌런 한수강 역을 맡은 배우 이준영 / 사진 : 마인드 마크 제공
현장에서 이준영은 "잘 숨어있는 배우"라고 자신을 표현했다. 밖에 나오지 않고, 차에 숨어있다는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조명팀, 촬영팀 등 스태프들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편이다. 이준영은 "배우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만, 스태프들과의 만남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준영을 향한 스태프들의 극찬이 이어지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길게 산 건 아니지만, 제 인생에도 굴곡이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때 항상 느꼈던 지점이 '스태프에게 잘해야겠다'라는 생각이었어요. 예를 들어, 제가 연기를 엄청나게 잘 했어요. 그런데 조명이 없고, 카메라가 없고, 끊어줄 사람이 없으면, 그건 그냥 제 혼잣말에 지나지 않잖아요. 같은 작품을 만드는 한배에 탄 선원들이니까 같이 즐기는 거죠. 저는 그걸 좋아해요. 실제로도 촬영팀, 조명팀 형들이랑 만나서 한잔하기도 하고요. (웃음)"
아이돌로 연예계에 발을 디뎠다. 현재도 그의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보면, 춤추는 영상들이 쉽게 눈에 띈다. "춤추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유일한 행복"이라고 말하는 이준영은 가수로서의 꿈도 함께 꾸고 있다.
"나중에 '스텝업(STEP UP)' 같은 댄스 영화가 한국에서도 제작된다면, 쓰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온몸이 부서지도록 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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