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거미집'에서 유림 역을 맡은 배우 정수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럴 수도 있지,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멘탈 관리를 잘 하는 것 같아요. 뭔가가 안 됐어도, 모든 게 어떻게 잘 돼요. 안 되면, 다음에 잘하면 되는 거죠.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옷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어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배우 정수정이 말했다. 힘든 감정을 마주했을 때 그의 모습도 다르지 않다고. 어린 나이부터 활동하며 힘들고 지친 때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거미집'의 공개를 앞두고 그가 출연한 '문명 특급'에서는 "시키면 열심히"하는 면모와 능력을 여덕 최강자의 이유로 꼽았지만, 그 이상의 면모를 인터뷰하며 느꼈다.
영화 '거미집' 스틸컷 / 사진 : 바른손이앤에이
정수정은 영화 '거미집'에서 신인 여배우 '한유림' 역을 맡았다. '거미집'은 70년대 영화판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김 감독(송강호)은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탄생할 거라는 생각에 다 찍어놓은 영화 촬영을 재기하고, 그 속에 제작자, 스태프, 배우 등이 엮이며 상황이 아수라장이 된다. 정수정은 데뷔와 동시에 주목을 받고 드라마와 영화 촬영을 병행하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하는 신인 여배우를 보여준다.
"일단 상황이 똑같았어요. 제가 드라마 촬영을 병행하며 '거미집'을 찍었거든요. (웃음) 그 부분이 싱크로율이 맞으니, '거미집' 현장에 가면 '얘는 유림이다'라고 되어있었어요. 유림이처럼 감독님, 선배님께 짜증 내고 화 내며 막 나갈 수 는 없죠. 극에 있는 지점을 배제하고 볼 때, 약간의 투덜거림은 저의 뉘앙스에 맞게 잘 담긴 것 같아요. 유림이는 아이 같기도 하고, 철도 아직 다 들지 않은 배우잖아요. 그러면서도 자신의 것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은 비슷한 것 같아요. 저 또한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싶고, 잘 해내고 싶고, 연기에 욕심을 가지고 책임감 있게 해내고 싶거든요."
영화 '거미집'에서 유림 역을 맡은 배우 정수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수정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게다가 1994년생인 그에게 1970년대 한국 영화가 더욱 낯설게 다가온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미집'에서 소화해 내야 한다는 생각에 먼저 레퍼런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당시의 인터뷰, 클립, 한국 영화, 말투, 그리고 외국의 1970년대 작품까지 살펴봤다. 말투나 과장된 액션을 몸에 붙이려고 노력했다.
"혼자 본 것보다 현장에서 선배님과 함께 해보며 더 감이 잡혔던 것 같아요. '(임)수정 언니는 이렇게 하네, (오)정세 오빠는 이렇게 하네' 눈으로 직접 보면서요. 그리고 차에서 계속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어요. 덕분에 1, 2회차 때는 조금 어색했는데, 그다음부터는 유림이의 옷을 입으면 자연스럽게 그 톤이 되더라고요."
영화 '거미집' 스틸컷 / 사진 : 바른손이앤에이
내성적인 성향이 있어서, 현장에서 먼저 다가가기보다 눈치를 보는 편인데 '거미집'에서는 먼저 발을 내디뎠다. 김지운 감독은 함께 작업한 정수정에 대해 "유머 센스가 타고났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정수정은 선배 배우 박정수가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서 다가가기도 했다. '거미집' 속 상황도 유쾌했고, 현장 역시 즐거웠다.
"너무 화목했어요. 김지운 감독님과 (송)강호 선배님은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함께하셨잖아요. (임)수정 언니도 그렇고요. 스태프, 연출부 등도 김지운 감독님과 오랜 시간 합을 맞춘 분들이셔서 정말 착착 진행됐어요. 덕분에 처음 뵙는 (오)정세 오빠와도 잘 어우러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보통 캐릭터 이름으로 불러주셨는데, 가끔 실제 이름으로 불러주시거든요. 저랑 (임)수정 언니랑 이름이 같아서 저희를 동시에 부를 땐 '투수정'이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셨어요."
영화 '거미집' 스틸컷 / 사진 : 바른손이앤에이
유쾌하고 즐거웠던 현장이지만, 사실 '거미집'에는 격한 장면도 많았다. 그중 하나는 미도(전여빈)에게 뺨을 맞는 유림의 모습이었다. 리얼했지만, 실제로 맞지는 않았다.
"고개를 잘 돌렸어요. (웃음) 타이밍이 너무 완벽했어요. 영화를 보시고 '너 뺨맞는데 너무 마음이 아팠어'라고 지인 중에 한 분이 말씀 주셔서 '나 안 맞았어'라고 대답하니 놀라시더라고요. 너무 다행이죠. (전)여빈 언니랑 촬영할 때, 머리카락 잡아당기고 했는데,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빠져있고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좌충우돌하는 사람들이 하나로 되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거미집'의 클라이맥스를 찍는 부분에서였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은 순간 몰입한다. 이 신을 쁠랑 세캉스(Plan-sequence, 컷을 나누지 않고 한 번의 촬영으로 한 장면이 쭉 이어지는 촬영 기법), 그 순간 정수정 역시 마음이 벅차올랐다.
"진짜 모두가 있어야 하는 장면이었잖아요. '언제 이런 배우들이 모여서 같이 한 장면을 찍을까?'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벅차올랐어요. '제가 이 중에 한 명이구나,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때도 며칠 동안 촬영한 장면이었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 '거미집'에서 유림 역을 맡은 배우 정수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정수정은 걸그룹 f(x)로 데뷔해, 배우로서도 13년 차가 됐다. '운이 좋다'라고 스스로를 평하기에는 다수의 작품에서 호평받았고, 배우로서 자신의 진가를 공고하게 해 왔다.
"입지가 다져졌다고 느끼는 성격은 아니에요. 그건 보시는 분들이 평가해 주시겠지만, 저는 매번 좀 처음 하는 느낌으로 작품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작품이고, 새로운 캐릭터고, 새로운 분들과의 작업이고요. 저는 여기에서 새로운 사람인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다시 신인 같은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카메라를 대하거나 현장을 대하는 노하우는 쌓일 수 있겠죠. 하지만 매 작품마다 백지가 되어야 하는 느낌이에요."
영화 '거미집'에서 유림 역을 맡은 배우 정수정 / 사진 : H&엔터테인먼트 제공
"제 강점은 모르겠어요. 굳이 말하면, 오픈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캐릭터든지, 공포 빼고 어떤 장르던지요. 공포 영화는 좀 무서워서요. (웃음) 열려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새로운 변신이나 이런 것에 두려워하거나 걱정하는 타입은 아니라서요."
한때 크리스탈 마음에 안 품은 이 없었다는 말이 있듯이, 한때 그는 테니스 스커트 등의 패션으로, 과거 '키스 앤 크라이'에서 고난이도의 피겨 기술을 성공적으로 해내며 존재감을 각인 시켜왔다. '멋진' 그녀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낸다. 그것은 '여덕 최강자'(많은 여성팬을 가졌다는 뜻)의 면모로 통했다. 하지만, 그보다 도전에 두려움이 없다는 점, 힘든 감정을 탁탁 털어버릴 수 있다는 점까지 정수정이 가진 성격이 그 베이스가 되어왔음을 인터뷰에서 느낄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앞으로가 기대된다. '배우 정수정'의 한계 없는 도전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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