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힌지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분야에 30여 년을 몸담고 있자면, 처음의 순수함은 무뎌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김희선은 그 세월을 거치며 한치도 찌들지 않은 모습이었다. 20년 만에 스크린에 컴백한 김희선은 '달짝지근해:7510'을 통해 다시 한번 리즈를 맞았다.
'달짝지근해:7510'(이하 '달짝지근해')은 과자밖에 모르는 천재적인 제과 연구원 치호(유해진)가 직진밖에 모르는 세상 긍정 마인드의 일영(김희선)을 만나면서 인생의 맛이 버라이어티하게 바뀌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극 중 김희선은 극외향인이자 순수한 사랑을 꿈꾸는 긍정 마인드의 소유자 '일영' 역을 맡았다.
드라마에서는 꾸준히 활동했지만, 스크린은 20년 만이었다. 영화 제의도 많았지만 김희선은 망설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녹인 게 바로 이한 감독이었다. 첫 미팅 자리에서부터 김희선이 일영이어야 했음을 직감한 이한 감독은 2장을 빼곡히 쓴 손 편지로 구애했다. 그리고 그 진심이 통했다.
"사실 많이 걱정스러웠어요. 감독님께 시간을 조금 더 달라고 몇 번이나 말씀드렸고요. 그랬는데 어느 날 감독님께서 저에게 손 편지를 주셨어요. A4용지에 빼곡히 써진 편지 두 장이었는데, 제가 일영이를 해야 하는 이유를 하나하나 써주셨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정말 저와 함께 일하고 싶다고 해주셨어요. 편지 읽고 정말 감독을 받아서 '그래 나를 이렇게 원하는 감독님이 계시는데 내가 뭐라고 이렇게 고민하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달짝지근해'는 김희선의 스크린 복귀작임과 동시에 유해진의 첫 로맨스물로 화제를 모았다. 두 배우 모두 연기 경력이 상당했기에 서로와의 첫 호흡에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김희선 역시 "유해진을 마다할 배우는 없을 것"이라며 남다른 신뢰를 전했다.
"해진 오빠와 함께 영화하는데 누가 싫어하겠어요.(웃음) 저도 워낙 같이 연기해 보고 싶었던 배우였고, 게다가 달달한 로맨스라고 해서 부담 없이 할 수 있었어요. 해진 오빠가 워낙 연기를 잘 하시잖아요. 첫날 촬영하러 갔는데 '치호' 그 자체더라고요. 오빠가 현장에서 치호로 있어준 덕분에 저도 더 쉽게 일영이에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첫 촬영 때 오빠는 촬영이 없었는데 저를 응원하러 와주셨어요. 오빠와의 호흡은 말할 것도 없어요. 정말 고마운 게 많아요."
게다가 극 중 일영은 치호에게 소위 '들이대는' 캐릭터다. 싱글맘으로 오랜 시간 살아온 일영은 순수한 치호에게 구애를 한다. 이 과정에서 꽤나 과감한 스킨십까지 오간다. 김희선은 그런 부담감을 유해진 덕분에 떨쳐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저 자동차 극장신은 걱정을 너무 많이 했어요. 로맨스를 할 때도 남자분이 주로 리드하고 저는 끌려가는 신을 많이 해봤거든요. 그런데 제가 오히려 적극적이고 과격하게 남자에게 막 스킨십을 해야 했잖아요. 저 그런 거 안 해봤거든요. 정말 고민이 많았는데, '이 신은 누가 뭐래도 내가 오빠를 더 격렬하게 해야 한다'하는 마음이었어요. 막상 촬영하니까 오빠가 웃음을 못 참더라고요. 저도 정말 웃겨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웃음을 참고했어요. 그 신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어렵고 웃겨요. 생각보다 잘 나온 것 같아서 마음에도 들고요."
1993년 데뷔한 후 1세대 한류 여신으로 이름을 날린 김희선이다. 데뷔와 동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는 십수 년 간 최고 배우 자리에서 활약했다. 그러다 2007년에 결혼하고 2009년 엄마가 됐다. 이후 몇 년의 휴식기를 거친 김희선은 드라마로 복귀했다. 드라마 주연작을 통해 연기 변신에도 나섰지만, 유독 스크린 컴백 소식이 뜸했다. 20년 만에 영화 출연을 결심한 김희선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운을 뗐다.
"스크린 컴백이 늦어진 이유요? 이건 사실 제 잘못이 있어요. 영화는 관객수에 배우들의 몫이 있잖아요. 저는 그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연기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말들과 더불어서 관객수가 적으면 그게 곧 나의 평가가 되는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출연 제안이 와도 선뜻 하겠다는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달짝지근해' 속 일영이는 저와 닮은 부분도 많고, 오랜만에 영화를 하게 됐는데 막 무거운 역할도 아니라서 부담 없이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김희선은 올해로 데뷔 30주년을 맞았다. 결혼 전까지는 쉴 틈 없는 20대를 보냈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자신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했다. 지금, 또 다시 열일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김희선에게 원동력은 무엇일지, 또 앞으로는 어떤 배우로 각인되고 싶은지 물었다. 김희선은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진심을 전했다.
"정말 30주년이네요. 진짜. 그동안 공백기가 좀 있었어요. 활동하던 중간에 결혼하고 아이 낳고 6년 정도를 쉬었어요. 그때 그 시간이 좋기도 했지만, 활동 쉬는 동안 어떤 작품을 보면 '내가 결혼을 안 했다면 저 역할이 내 것이었을 텐데'하는 생각에 사람 마음이 참 허헤지더라고요. 결혼한 것도, 남편도 미워지고 했던 때가 있죠.(웃음)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름대로 잘 충전했다고 생각해요. 저는 정말 20대에 십 년 정도를 정말 '빡세게' 살았어요. 쉴 틈 없이 일했거든요. 제 원동력이라 하면, 아직도 저를 원하는 분들이 계신다는 점이에요. 아직도 제작사, 감독님들이 저를 찾아주시고, 팬분들도 제 활동을 원해주셔서 배우 일을 계속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앞으로도 다양한 역할을 하고 싶어요. 어떤 역할을 해도 나름대로 잘 소화하는 그런 배우, '믿고 보는 배우'라는 말을 듣고 싶고요. 그 한 마디가 배우에 대한 대중의 신뢰인 것 같아요. 제 작품을 보신다면 항상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