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조선일보일본어판DB
자신이 알던 사람이 '진짜'가 아니었다면 어떨까. 영화 '한 남자'는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자발적 실종 '죠하츠'를 소재로, 신분을 바꿀 수밖에 없었던 한 남자의 사연을 좇는 이야기를 다뤘다. 작품은 의문의 남성 'X'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개인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25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영화 '한 남자'(감독 이시카와 케이) 언론 시사회가 열려 배우 츠마부키 사토시가 참석했다.
'한 남자'는 제7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초청작이자 지난해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 폐막작으로 선정돼 호평을 이끈 작품이다. 작년 부국제에 이어 올해는 영화 홍보차 한국을 찾은 츠마부키 사토시는 "한국에 오는 것은 그렇게 오랜만은 아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마음이 들뜬다. 이번에도 기대하고 왔다"며 내한 소감을 전했다.
극 중 츠마부키 사토시는 'X'를 쫓는 변호사이자 재일교포 3세 '키도' 역을 맡았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는 재일교포 캐릭터를 연기하며 'X'와 관련된 진실을 찾아가는 관찰자로서 극을 이끈 그는 작품에 끌렸던 지점으로 캐릭터를 꼽았다.
그는 "키도라는 캐릭터는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원작자 히라노 게이치로가 제창한 '분인 주의'라는 걸 몸소 표현하는 인물이다. 분인주의는 인간은 모두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고, 그 모든 것이 모여 결국 내가 된다는 관점을 다룬 거다"라며 "그래서 키도를 표현할 때 뭔가를 규정하려는 생각을 버리려고 했고, 다양한 발상 속에서 키도가 여러 사람을 대할 때 달라지는 얼굴을 보여드리려고 했다"고 말했다.
"생각을 내려놓고 연기하는 것에만 집중했다"고 말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종잡을 수 없는 상태를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키도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모습이 키도의 진정한 모습일지 그런 궁금증을 (관객에게) 보여드려야 했다. 그래야 보는 분들의 마음에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며 연기적 주안점을 설명했다.
'키도'는 자이니치(재일교포) 3세로, 일본 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겪으며 씁쓸함을 느끼면서도 직접적으로 나서진 않는 인물이다. 일본 내 편견을 드러내는 캐릭터를 맡은 그는 "망설임은 없었다"고 강조했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10대 때부터 주변에 재일교포들이 꽤 많은 편이었고 지금도 재일교포 친구들이 많다. 이상일 감독도 그렇고 친분이 있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 재일교포 역을 맡으면서 부담감은 없었다. 그 부분에 집착하지 않은 게 솔직한 제 심경이다. 그 요소에 얽매이다 보면 영화가 전달하려는 메시지에서 엇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츠마부키 사토시는 '한 남자'를 통해 변호사 역에 도전했다. 그는 "변호사 역할은 이번에 처음 해봤다. 여러 변호사분들을 만나면서 나름대로 취재했고, 재판도 여러 차례 보러 갔다"며 "변호사분들을 뵈니 모두 스타일이 다르시더라. 한 변호사분을 취재하면서 이런 점에 대해 물어보니 그분께서 '지금 내가 당신에게 말하고 있는 이 모습이 당신에 대한 스타일인 것'이라고 하시더라. 그 말을 듣고 나서 '내가 더 다양한 얼굴과 (사람마다의) 대응 방식을 가지고 있어도 괜찮겠구나' 싶었다"고 회상했다.
츠마부키 사토시는 '한 남자'를 통해 지난 3월 열린 제46회 일본아카데미상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는 "제가 받을 거라 생각하지 못해서 기쁨보다는 놀라운 마음이 컸다"며 "배우라는 일을 사랑해서 연기를 해왔지만, 저도 인정받고 싶어 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상은 알기 쉬운 지표이지 않나. 상을 받고 나서 작품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부국제 폐막식에서의 호평에 대해 "눈이 높은 한국 관객분들께 우리 작품을 선보인다는 것에 있어서 상당히 긴장했었다. 부국제 폐막작에서 성대한 박수를 3번 받았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안심했다"라며 "폐막작으로 선정된 것만으로도 영광스러운데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박수를 주신 한국 분들께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놓였다. 우리 작품이 좀 더 커 나갈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느꼈고, 이번에도 한국에서 개봉하게 돼 일본 이외의 국가에서 (세계로) 나아가는 첫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라고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한일 합작 영화 '보트'에도 출연했던 츠마부키 사토시는 한국 영화와 배우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보트'를 통해 친분을 쌓은 하정우를 언급하며 "지난해 '부국제' 때도 함께 식사했고, 이번에도 만날 예정이다. 다시 하정우 씨와 함께 연기하게 된다면 기쁠 것 같다. 서로 신뢰하는 관계라 작품 내에서 서로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그런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이어 하정우 외에 호흡을 맞춰 보고 싶은 한국 배우가 있는지 묻는 말에는 "황정민 배우와도 연기를 해보고 싶다. 하정우 씨가 출연한 '수리남'이라는 작품을 보고 (황정민이)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느꼈고, 그의 열정적인 연기에 빨려 들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함께 열정적으로 연기를 해보고 싶다"고 러브콜을 보냈다.
마지막으로 츠마부키 사토시는 한국 관객들에게 관람 포인트를 전했다. 그는 "이 영화를 보시는 한 분 한 분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걸 받아들이면서 보시면 좋지 않을까 싶다. 내 안에 있는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면 삶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다"며 "저 역시 그런 면에서 이 작품으로 상당히 구원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이 히트했던 때 한국에 왔었는데 그때 일들이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한일 합작 영화에도 출연해서 멋진 친구도 생겼다"며 "저는 영화에는 국경이 없다고 생각하고 세계인들이 영화를 통해 사이가 좋아지지 않나. 제게 영화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영화를 사랑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연기에 정진할 거고, 한국 영화에도 출연할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츠마부키 사토시가 출연하는 영화 '한 남자'는 오는 30일 전국 롯데시네마에서 단독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