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아파트 무량판 부실공사 진상규명 및 국민안전 태스크포스(TF)가 8일 오전 경기 양주시 회천 A15블록 현장을 찾아 보강공사 상황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건설 카르텔을 척결하겠다며 대책안을 발표했지만, ‘엘피아(LH+마피아)’로 불리는 전관 근절책은 사실상 없다는 지적을 받으면 국민들의 신뢰를 더 잃어가는 모습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LH는 건설 이권 카르텔과 부실 공사 근절을 위해 ‘반카르텔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하기로 했다. 본부는 설계, 심사, 계약, 시공, 자재, 감리 등 건설공사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전관예우, 이권 개입, 담합, 부정·부패 행위 등을 근절하는 역할을 맡는다고 설명했다. 또 부실시공 설계·감리업체는 한 번의 적발로 퇴출하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이 같은 대책에 대해 업계에서는 ‘반쪽짜리’라는 평이 다수다. 전관예우를 근절한다면서 재취업을 전면 제한하는 게 아닌, 전관 업체가 문제를 일으킬 시 퇴출하겠다는 사후약방문식 방안인 것. 최근 불거진 부실시공 사태의 주범인 ‘엘피아’ 척결을 위한 강한 쇄신 의지가 담겨있다고 보기 어렵다.
그동안 LH 전관이 속한 업체는 LH 용역 수주에 유리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에 의하면 2015년에서 2020년까지 LH가 수의계약으로 발주한 설계용역은 총 536건, 9484억원이다. 그중 LH 전관 영입업체 47개가 용역 건의 55.4%(297건), 계약금액의 69.4%(6582억)를 수주했다. 건수로나 액수로나 과반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다.
최명기 대한민국산업현장교수단 교수는 “전관은 영업을 하는 로비스트다. 설계와 시공, 감리 등 일을 수주할 때 이권이 생기곤 한다”며 “전관 영입은 관행적으로 흘러가게 되면서 부실공사가 발생하는 요인을 만들고 있다. 부실공사가 조성될 수 있는 환경이 이권 카르텔이다”라고 강조했다.
더불어 LH 전관업체에 대한 감시는 LH 발주 용역에서만의 영역이 아니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경기도에 위치한 민간 무량판 아파트 95곳 가운데 27곳을 LH 철근누락 아파트를 설계·시공·감리한 업체들이 지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토교통부는 무량판 구조로 지어진 민간아파트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철근누락 부실시공 아파트 단지 15곳 가운데 14곳의 설계·시공·감리에 전관업체가 관여한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민간 무량판 아파트 준공에도 LH 전관업체가 다수 포함됐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들 업체가 LH 아파트를 지을 때처럼 설계·시공·감리 과정에서 문제를 일으켰다면 민간아파트 단지 중에서도 철근이 누락된 곳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LH 존립 이유에 의문을 품는 시각도 있다. 임채관 공공주택지구 전국연대 대책협의회 의장 “이번 LH 사태의 핵심 원인으로 소위 '엘피아 카르텔'이 지목되고 있다. LH 퇴직자들이 설계, 시공, 감리 각각에 대거 포진해 현직들과 서로 눈감아준 게 대규모 부실공사의 원인"이라며 "더는 공기업으로서의 존재이유를 상실한 만큼 LH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LH는 지난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혁신 방안을 내놓았다. 여기에도 전관예우 근절 방안도 포함됐으며, 유관 기업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 LH 퇴직자는 ‘상임이사 이상’ 7명에서 ‘2급 이상’ 500여 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막상 제도 시행 이후 취업 길이 막힌 2급 이상 퇴직자는 거의 없었다. LH가 혁신안을 발표한 2021년 6월부터 최근까지 LH 퇴직자 21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았다. 심사 대상은 지난해 9명, 올해 12명이다. 이 중 재취업에 실패한 퇴직자는 단 한 명뿐이었다. LH가 내놓은 전관 근절 대책이 실효성을 갖기는커녕 자구책으로 작용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국토부는 LH 전관예우 방지 방안을 오는 10월 발표하는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에 담는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