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장./뉴스1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 이후 전관예우를 근절하겠다며 취업 제한 대상자를 늘렸지만, 지난 2년간 ‘LH 전관’이 재취업에 실패한 사례는 단 한 번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7일 LH가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LH가 혁신안을 발표한 2021년 6월부터 최근까지 LH 퇴직자 21명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퇴직 공직자 취업 심사를 받았다. 심사 대상은 지난해 9명, 올해 12명이다.
이 중 취업 불가 판정을 받은 퇴직자는 2021년 12월 퇴직 직후 아파트 유지보수·관리업체에 취업하려던 2급(부장급) 직원 A씨 한 명뿐이었다. 나머지 20명은 모두 취업이 승인됐다.
LH 2급 전문위원이던 B씨는 지난해 9월 퇴직 이후 한 달 반 만에 한 종합건축설계사무소에 취업했다. 이 회사는 이번에 철근 누락이 드러난 파주 운정 A34 아파트 단지의 감리를 맡았던 업체다.
마찬가지로 2급 전문위원이던 C씨가 퇴직 1년 만에 취직한 종합건축사사무소 역시 철근이 누락된 LH 단지인 인천가정2 A-1BL의 감리에 참여했다.
공직자윤리법상 공직자는 퇴직 후 3년 내에 공직자윤리위 심사 없이 일정 규모 이상 사기업이나 기존 업무와 관련된 기관으로 취업할 수 없다. 취업을 위해선 재직 중 맡았던 업무와 무관하다는 점을 확인받거나 취업 승인을 받아야 한다.
재취업을 염두에 두고 재직 중에 업무 처리를 불공정하게 하거나, 퇴직 후 맡은 업무 처리에 영향력을 부당하게 행사할 가능성을 막기 위해서다.
LH는 지난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지자 “해체 수준의 혁신을 추진하겠다”며 혁신 방안을 내놓은 바 있다. 여기에는 고질적 병폐로 꼽히는 전관예우 근절 방안도 포함됐다. 또 유관 기업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하는 LH 퇴직자는 ‘상임이사 이상’ 7명에서 ‘2급 이상’ 500여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막상 제도 시행 이후 취업 길이 막힌 2급 이상 퇴직자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지난 2년여 간 2급 이상 퇴직자 7명이 이해충돌 가능성이 있는 설계·감리 등 건설 관련 업체에 취업했다. 취업 제한이 2급 이상으로 확대되자 실무에 밝은 3급(차장급) 출신이 기업으로 옮겨가는 사례도 잇따랐다.
공직자 재취업 제한에 사각지대도 있다.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심사 대상 기업은 자본금 10억원 이상, 연간 거래액 100억원 이상의 업체다. 자본금 10억원 미만인 업체에는 자유롭게 취업이 가능한 것이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취업 심사 대상이 되는 LH 퇴직자를 3급 이하로도 확대하거나, 자본금 기준 등을 낮춰 취업 심사 대상 기업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국토부는 더불어 LH 전관예우 방지 방안을 오는 10월 발표하는 ‘건설 이권 카르텔 혁파 방안’에 담는다는 방침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날 LH 철근 누락 아파트를 찾아 “전관 출신 고액 연봉 임원이 기술이 아니라 영업과 로비력으로 일감을 따내는 구조가 번번이 문제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껍데기만 바꿔왔다”면서 “이번에는 절대로 일회성으로 넘어가지 않겠다고 단단히 각오하고 있으며 범죄와의 전쟁을 치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