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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불안해 살겠나…LH는 책임회피", 속타는 '순살아파트' 주민들

강나윤 기자 ㅣ muse@chosun.com
등록 2023.08.04 17:29

"기사 통해 부실시공 인지, LH는 입주민에 '책임 없다' 모르쇠"
"전재산 들여 이사 왔는데 불안…안전이 배상보다 우선"
"사람 사는 아파트가 '랜덤 뽑기'냐", "집값도 떨어질텐데" 한숨

4일 오전 남양주 별내퍼스트포레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잭서포트 모습./강나윤 기자

"LH가 자기들이 발주한 아파트의 부실공사에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이거는 말이 안됩니다."

4일 오전 경기 남양주시 별내퍼스트포레 단지 앞에서 만난 30대 남성 입주민 A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가 부실공사라는 사실을 뉴스로 알았다며 허탈해 했다.

이 아파트단지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철근이 누락된 LH 발주 무량판구조 아파트 15곳 중 한 곳이다. 302개의 기둥 중 126개에서 철근이 빠진 사실이 발견됐다.

A씨가 LH에게서 관련 안내를 받은 것도 보도가 난 이후였다. 그는 "LH가 입주민에게 보낸 우편 내용을 살펴보니, 부실공사의 책임이 설계사와 시공사에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며 "당초 LH가 발주처인데 감독을 총체적으로 못한 거 아닌가. 책임이 없다며 피해가려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기사가 나고 일주일 내로 지하주차장에 잭서포트가 설치된 것 같다. 불안하긴 해도 어쩔 수 없다. 다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작년에 이사를 와 이젠 방도가 없다. 보강공사 한다는데, 안전이 보장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지하주차장에 설치된 잭서포트에 LH 경기북부지역본부장에서 붙여둔 안내문. 잭서포트가 보강공사에 앞선 임시 가시설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강나윤 기자

지난해 이 아파트에 입주한 30대 여성 B씨도 "어린 자녀가 둘인데 너무 불안하다"고 했다. 근처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의식해 목소리를 낮추며 "안전도 안전이지만, 뉴스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이 보고 우리 아파트가 부실공사 됐다는 걸 알게 될까봐 조마조마 한다. 어른도 불안한데 어린 아이들이 알면 얼마나 무섭겠냐"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모르고 전재산 들여 좋은 마음으로 입주했다. 단지 어린이집도 잘 돼있고 해서 안심했는데, 안전이 보장 안 되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실제 아파트 중앙엔 단지 내 어린이집이 번듯하게 세워져 있고, 단지 근처엔 무더위를 떨쳐낼 바닥분수에서 아이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겉보기엔 신도시답게 아이들과 젊은 부부가 많이 보여 생기가 돌았다. 하지만 주민들은 아파트가 부실공사 됐다는 기사를 접한 순간부터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심정이라고 입을 모았다.

B씨와 함께 있던 인근 거주 주민 C씨는 "무슨 문제가 터질 때마다 검사 하나씩 진행하고, 건물에서 하자 발견됐다 하면 주민들은 불안에 떨어야 하는 거냐. 사람 사는 아파트가 '랜덤 뽑기'냐"며 분노했다.

입주민의 집을 방문한 가족이 차를 주차해두었다 밝힌 곳. 단지 인근 덕송천을 따라 난 길가에 차가 줄지어 주차돼있다./강나윤 기자

남동생 집을 방문했다는 40대 남성 D씨는 "지하주차장에 차 대기가 불안해서 근처 주차를 했다"면서 "제수씨가 지금 임신 중이라 (아파트 안전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이어 "동생네가 아무래도 불안하니까 산후에 회복하고 나면 이사도 다시 알아보자는 얘기를 하는데, 집값은 떨어질 테고 현실적인 걱정을 안 할 수가 없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인근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기사 보다가 공공기관인 LH의 아파트가 무더기로 부실공사 됐대서 한 번 놀라고, 며칠 뒤에 남양주에도 (부실아파트가) 있대서 자세히 봤더니 바로 앞 아파트라 두 번 놀랐다"고 했다.

그는 이어 "밖에서 조금 큰 소리라도 나면 혹시나 해서 내다보게 된다" 어이없다는 듯 너털웃음을 지었다. 또 "손님들도 불안해 하는데, 이젠 아무런 안전사고 없이 무탈히 보완됐으면 하는 게 모두의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부는 철근 누락 문제가 드러난 LH 발주 15개 단지와 관련해서 내달 안으로 보강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와 LH는 부실시공 아파트 입주자에 대해 협의를 거쳐 ‘만족할 만한 수준’의 손해배상을 하고, 입주예정자에겐 재당첨 제한이 없는 계약해지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입주민 B씨는 “안전이 배상보다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돈을 얼마를 준다고 해도 아파트에 대한 불안이 해소되진 않는다. 사실 보강공사를 해도 안전을 확신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당장 이사 가기도 어려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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