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H&엔터테인먼트 제공
"자기 평가는 매번 혹독하죠.(웃음) 항상 아쉬운 부분만 보이고, '나도 잘 하면 좋겠다'하는 건 있지만, 그렇다고 후회를 하진 않아요. 배우로서 가져야 하는 연기적인 몫이 있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항상 그 부담감을 이겨내려고 하고, 그런 도전의식과 부담감, 책임감이 저에게는 어떤 원동력이 될 때가 있어요."
'물 만난 물고기'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것 같다. 배우 천우희가 '이로운 사기'에서 제대로 된 팔색조 연기를 펼쳤다. 공감 불능 천재 사기꾼 캐릭터를 맡은 그는 1인 다역 수준의 다양한 연기를 소화했다. 타고난 도박꾼, 컨설턴트, 간호사, 아동심리 상담 전문가부터 재벌집 막내딸에 공무원까지. 성향, 성격, 태도 모두 다른 캐릭터를 보여준 천우희의 연기는 그야말로 '천의 얼굴'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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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사기'는 공감 불능 사기꾼과 과공감 변호사, 너무나 다른 두 사람의 절대 악을 향한 복수극이자 짜릿한 공조 사기극 드라마다. 극 중 천우희는 공감 불능의 사기꾼 '이로움' 역을 맡았다.
작품 종영 전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천우희는 편안한 얼굴로 취재진을 맞았다. 10개월여 촬영 기간, 그리고 방영이 시작된 후의 시간이 너무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며 아쉬움을 전한 천우희는 서서히 이로움에게서 벗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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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움' 역은 캐릭터 설명만 봐도 아주 까다로운 인물이다. 병기처럼 키워져야 했던 환경 속에서 감정은 거세당했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않음으로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로움. 천우희는 극 중 이로움이 분한 수많은 부캐릭터를 직접 소화하며 극을 이끌었다. 출연 제안을 받았을 때 천우희에게 떠오른 생각은 "내가 시청자분들께 어떤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까"였다. 어려운 연기이기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는 천우희는 책임감과 함께 '이로움'이 됐다.
"과공감 변호사와 공감 불능 사기꾼이라는 완전히 아이러니한 대척점에 있는 두 인물이 긴장감을 가져가는 게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로움'은 사기꾼이다 보니까 다채롭게 변화하는 모습이 필요한데 이 인물로 분했을 때 어떤 면모를 보여드릴 수 있을까, 어떤 즐거움을 드릴 수 있을까 생각하니 굉장히 흥미로웠죠. 대본을 받은 건 굉장히 일찍이었는데 이 연기를 하고자 기다리는 순간이 꽤나 즐거울 정도였어요."
"항상 대본을 받을 때면 그 이야기를 하시죠. '이거 무조건 천우희여야만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거기에 속는 셈 치고 해요.(웃음) 그런 이유에 대해서는 물론 감사하죠. 이 인물은 천우희가 가장 훌륭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신뢰가 담긴 이야기니까 저도 물론 엄청난 책임감을 느끼고, 이 작품에 대해서도 나름의 제 스스로에게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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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움을 비롯해 부캐릭터를 소화한 천우희. 그가 보여준 비주얼적 변신은 작품의 관전 포인트였다. 그런 천우희에게 시청자들은 '천우희 화보집'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천우희 화보집요? 성공했을까요?(웃음) 전에 했던 작품이나 연기적인 결을 보면, 내면 연기나 깊이감이 있거나 정서적으로 보여지는 게 대부분이었거든요. 이번에는 외적으로도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고 생각해서 준비도 많이 했어요. 반응들이 체감이 될 만큼 있어서 스스로도 되게 만족스러웠고 뿌듯했죠.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에게도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이번에 어필할 수 있어서 나름 즐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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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 얼굴'이라는 수식어의 소유자답게 부캐 연기에 부담감은 없었다고 말한 천우희. 그런 그가 '이로운 사기'에서 가장 어려웠던 연기로 방백 신을 꼽았다. 이로움이 사기판을 벌일 때면 상황 설명을 위해 시청자에게 직접 말을 걸어야 했던 것. 카메라를 보지 않는 연기만 해온 천우희는 카메라를 바라봐야 하는 연기가 가장 어려웠다고 전했다.
"로움이에서 다른 인물을 연기할 때는 오히려 어렵진 않았어요. 아예 다른 색깔의 인물이라 생각하며 연기했고, 확확 바뀌는 건 솔직히 저한테 그렇게 어려운 점은 아니었거든요. 하지만 방백을 하다가 로움이로 돌아온다던가 할 때는 어려웠어요. 제가 한 번도 카메라를 보면서 연기한 적이 없다 보니까 굉장히 낯설더라고요. 혹시라도 제가 카메라를 보는 순간 '실수했나' 하고 멈칫하는 순간이 있었어요. '이로운 사기'의 독특한 매력이 방백이잖아요. 최대한 시청자가 봤을 때 함께하는 것처럼, 로움이와 사기를 함께 공조하는 것처럼 하는 재미를 살리려고 방백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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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사기'에서 이로움과 사기 공조를 펼친 '한무영' 역의 김동욱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앞서 진행된 제작발표회에서 두 사람은 케미를 묻는 말에 "두 말할 것 없었다"며 큰 만족감을 보였다. 천우희는 이날 인터뷰에서도 상대역과의 연기 호흡 관련 질문에 비하인드를 쏟아냈다.
"오빠와는 서로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에요. 저도 친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사람인데 오빠는 저보다 더 심하더라고요.(웃음) 그래도 연기적으로는 전혀 어려움 없이 작업을 하다가, 초반부 넘어가면서 '오빠가 나를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싶은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저도 훨씬 몰입감이 생겼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드니까 처음보다 '확 붙는다'는 느낌을 받았죠."
"오빠는 정말 안정적이에요. 저는 드라마를 많이 해보지 않아서 그런 점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기도 해요. 하지만 오빠는 여러 어려움을 너무 수월하고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내공이 다르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매번 연기하는 오빠의 모습이 저에게는 감동적이기까지 했거든요. 그런 부분에선 정말 많이 배워야겠다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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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벌써 데뷔 19년 차 중견 배우다. 2004년 영화 '신부수업'의 단역으로 시작해 주로 스크린에서 활동한 그는 2017년 드라마 '아르곤', 이듬해 '멜로가 체질'을 통해 드라마 대표작을 썼다.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연기할 때 나답지 않은 인물을 만날 때 더 쾌감을 느꼈던 것 같다"며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는 배우 직업에 만족했다고 말했다. 그 과정에서 천우희가 깨달은 건 '결국엔 모두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낸다'는 사실이었다. 자신과 다른 캐릭터를 연기할 때는 스스로를 극적으로 발화해야 했고, 덕분에 '천우희표 캐릭터'가 탄생했다. 이로움도 마찬가지였다.
"로움이나 로움이 안에서 보여지는 각각의 인물도 저와 닿는 부분이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예전에는 (캐릭터를) 아예 나와 다른 인물로 접근했다면 지금은 저에게서 파생되는 여러 인물들인 것 같다는 생각으로 연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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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장르물 할 것 없이 다양한 작품을 소화해온 그다. 천우희에게 앞으로 하고 싶은 작품이나 장르는 무엇인지 묻자, 그는 '워맨스'를 꼽았다. 이미 '한공주', '써니', '해어화' 등에서 여성 서사를 소화, '멜로가 체질'에서도 여자들의 우정을 그렸던 그는 이젠 내로라하는 여성 선배들과 호흡해 보고 싶다며 설렘을 드러냈다.
"여성 서사 위주의 작품이 많지 않음에도 저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에요. 여성 서사 작품을 하려기보다는 좋은 작품에 끌림이 있어서 작업하는 건데, 그 와중에 그런 작품을 저에게 제안해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껴요.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발굴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워맨스는 항상 꿈꿔요. 작품에서 여러 선배님들을 꼭 만나 뵙고 싶어요. 여성들의 연대감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여성 캐릭터가 많이 나오는 작품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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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희는 '이로운 사기'를 끝내고 차기작 촬영에 들어가기 전, 틈을 내 여행도 다녀왔다. 워낙 집순이었다는 그는 "이젠 집을 비울 필요가 있는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여행 덕분에 한동안 잘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천우희. 남은 올 한 해는 촬영으로 꽉 채울 것 같다는 그는 "올해는 더 만나 뵐 수 없을 것 같다"며 아쉬운 표정으로 내년 만남을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