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귀공자'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선호 / 사진 : NEW 제공
* 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귀공자'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이 포함돼 있습니다.
"제 삶의 변화는 별다를게 없는 것 같아요. 늘, 절실했고요. 지금도 그렇고요. 너무 과하면 힘이 들어가니까 오히려 멀어지려고 하고 있습니다."
배우 김선호가 말했다. 김선호는 인터뷰 중 자신을 '느린 배우'라고 표현했다. 그가 처음 '배우'로서 시작한 것은 연극, 무대였다. 그리고 드라마, 예능 등으로 분야를 서서히 넓혀왔고, 늘 그의 가능성을 입증해 왔다. 지난 21일 영화 '귀공자'를 통해 처음 스크린으로 관객과 만났다. 그 속에서 김선호는 동명의 타이틀롤 '귀공자'를 맡았다. 귀공자는 마르코(강태주) 앞에 홀연히 나타나 자신을 '친구'라고 소개하는 정체불명의 남자로 김선호는 특유의 선한 웃음을 조커의 느낌으로 표현해낸다. 죄책감이 자리해야 할 곳에 아이 같은 해맑은, 그렇지만 섬뜩한 웃음으로 말이다.
영화 '귀공자' 스틸컷 / 사진 : NEW 제공
첫 등장부터 강렬했다. 창고에서 벌어지는 액션 장면은 '귀공자'가 어떤 인물인지 설명하기 충분했다. 귀공자는 휘파람을 불며 의뢰받은 대로 행동한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면 표정이 안 좋거나 무표정해야 하는데 웃잖아요. 친구라고 하면서 휘파람도 불고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가장 고민이었어요. 다행히도 첫 촬영은 아니고, 중반쯤 촬영하게 됐어요. 최대한 많은 걸 표현했고, 편집하시면서 덜어내신 것 같아요. 편집할 때 많은 걸 덜어낼 수는 있어도, 없는 걸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많은 감정을 선보였어요. 잔인한 표정도 덜어냈고요."
콜라를 마시고 자연스레 트림한다. 귀공자의 성격을 드러내는 또 다른 장면이다. '귀공자'의 대본에는 '어린아이처럼 참 맛있게도 먹는다'라고 적혀있었다. 그 한줄에 대한 김선호의 고민이 시작됐다.
영화 '귀공자'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선호 / 사진 : NEW 제공
"처음 받았을 때 '왜?'라고 질문했어요. '귀공자가 잔인한 행동을 하고, 진짜 나쁜 걸 모르는 채 어린아이처럼 즐기고 있구나?'라는 걸 보여주는 장치라고 생각했어요. 놀이 같은 건가 생각하며 다가갔어요. 감독님께서 영화 '시계태엽오렌지'(감독 스탠리 큐브릭)를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악행을 하는데, 그 기준이 악한 행동인지, 놀이로 하는 건지 모호하게 하는 거요. 최대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외적으로도 표현하기 위해 노력했죠."
"트림도 원래 대본에 있었어요. 귀공자가 위트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저의 갑작스러운 누아르 변신이 거부감 없이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는 장치라고 느껴져서요. 나로서 새로운 걸 표현할 수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대본에 '웃으며'라는 표현이 많았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요. 감독님께서 레퍼런스로 말씀하신 영화 '시계태엽오렌지'가 故 히스 레저가 조커를 준비할 때 본 레퍼런스라고 하더라고요. 계속 웃어보며 웃어야 할 정도를 감독님과 함께 찾아간 것 같아요. '광인의 모습이다' 생각했으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오히려 제가 즐거웠을 때, 하이 텐션이었을 때를 생각했어요."
영화 '귀공자' 스틸컷 / 사진 : NEW 제공
원래 춤도 잘 추지 못한다. 하지만 김선호는 '귀공자'에서 액션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높은 곳에서 몇 번이나 뛰어내렸다. 박훈정 감독이 연출한 영화 '마녀 1'과 '낙원의 밤' 등을 보며 고민했다. 고민의 덕분일까. 박훈정 감독은 김선호가 달리기하는 모습을 보고 "터미네이터 같은데?"라는 반응을 보이며 만족했다.
"감독님께서 '귀공자'에서는 맞닥뜨려 하는 액션을 원하셨어요. 프로인 것이 드러나도록 깔끔하면서도 위트있는 액션이요. 액션 팀에서 가이드가 있었거든요. 오래 연습하다 보니 몸에 배어든 것 같아요. 드라마 촬영 때 액션을 한 적이 있긴 했지만 이렇게 길게 한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확실히 좋은 액션을 찍으려면 많은 양의 액션을 다양하게 준비해야 하더라고요. 뛰어내리는 장면도 여러 번 촬영했어요. 그런데 너무 겁먹어서 기억이 잘 안 나네요. 감독님께서 제가 뛰어내릴 때 웃는 모습이 딱 한 장면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그걸 썼다고요. 제가 너무 무서워서 웃지 못하고 무표정으로 뛰어내렸거든요."
귀공자의 전사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귀공자는 집단에 소속돼 있다가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면서 의뢰받은 내용 하나를 중간에 가로채 일을 벌인다. 사람이 죽을 때가 되면 변한다던데, 귀공자가 딱 그랬다. 죽기 전에 좋은 일 하나 하려는 생각으로 마르코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면서 귀공자에게 다가갔어요. 헤어스타일이 망가지는 걸 싫어하는 건 그 친구의 아픔, 결핍이라고 생각했어요. 보육원에서 킬러로 자라면서 생긴 어떤 결핍인 거죠. 그리고 조금 다쳐도 아파하는 건, 감독님께 여쭤봤더니 '아프기 싫어서 먼저 쏘는 얘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발 먼저 쏘고, 더 겁내고, 더 아파하는 거라고요. 그래서 더 잔인할 수 있고요. 그런 재미를 알아가시면 재미있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요?"
쿠키영상에 대한 질문도 빠질 수 없다. 해당 영상에는 '귀공자'를 완전히 뒤집을 만한 정보가 있기 때문. 김선호 역시 "진짜 귀공자가 몰랐던 거예요?"라고 박훈정 감독에게 물어본 장면이기도 하다.
"감독님께서 귀공자는 전문 킬러라 병원에 함부로 갈 수 없어, 같은 집단에 소속된 누군가의 추천을 받고 간 곳에서 진단받은 거라고 설명해 주셨어요. 원래는 병원에 찾아가는 장면이 없었어요. 저는 따로 쿠키영상이 있었는데, 감독님께서 '너희 둘이 더 많이 붙다 보니, 그 장면이 필요할 것 같아서 써왔어'라고 하시더라고요. 덕분에 감독님의 유일한 해피엔딩인 작품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엉뚱하지만 코믹 요소를 넣고 싶었던 것 같아요."
영화 '귀공자'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선호 / 사진 : NEW 제공
사실 '귀공자'는 김선호에게 더 각별한 의미가 있다. 김선호는 지난 2021년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의 여자친구라고 주장하는 이가 사생활을 폭로했고, 당시 출연 중이던 예능 프로그램을 비롯해 차기작으로 결정된 작품에도 줄줄이 하차가 결정됐다. 그런 상황 속에서 '귀공자'는 캐스팅을 번복하지 않았다. 박훈정 감독은 이에 대해 "대안이 없었다"라고 밝혔지만, 그만큼 배우 김선호에 대한 믿음이 컸다고 읽히는 대목이다.
"'대안이 없었다'라는 말씀은 이번에 들은 거고요. 저에겐 말씀 안 하셨어요. 대표님과 감독님께서 저에게 먼저 물어보셨어요. 촬영은 이미 미뤄졌고, 그것만으로 이미 손해가 발생한 거잖아요. 그런데 두 분께서 저에게 '괜찮니?'라고 하셨어요. '너만 괜찮고, 할 수 있으면 같이 하고 싶다'라고요. 일단 감사함이 컸고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연기니까 '최선을 다해서 임하자'라고 생각했어요. 고민할 지점도 '사람 김선호'에게는 없었습니다."
영화 '귀공자'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선호 / 사진 : NEW 제공
삶에서 큰 산이라면 큰 산을 한 번 넘었다. 그가 지난해 선보인 연극 '터칭 더 보이드(Touching the Void)' 속 상황처럼 말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입증해 온 그의 가능성은 그는 처음 도전한 스크린에서도 깊게 뿌리를 내렸다. 그런 달라진 상황 속에서 "예전에도 지금도 언제나 절실했던" 김선호는 달라지지 않았다.
"저는 사실 어릴 때부터 존경하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느린 사람이 배우를 할 수 있었던 건, 수많은 선배님의 좋은 레퍼런스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예를 들면, '조커'를 처음 해내는 건 어렵지만, 지금 우리에겐 故 히스 레저라는 좋은 레퍼런스가 있잖아요. 처음이 어렵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저도 언젠가 남들에게 어떤 무언가의 레퍼런스가 되지 않을까라는 꿈을 꿉니다. '그런 배우가 되면 좋은 배우 인생이지 않을까' 라고요."
누군가의 레퍼런스를 꿈꾸는 김선호는 그렇다면 캐릭터에 어떻게 다가갈까.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학생 때 발표를 했는데 재미있는 역할이었어요. 수학 천재 역할이었거든요. 그런데 어떤 친구가 모자 하나를 쓰고 왔는데, 그냥 그대로 '천재야' 느낌이 들었어요. 외적인 것에서 주는 것을 때로는 따라가기가 어렵더라고요. 그걸 빨리 느낀 것 같아요. 그래서 더 '김선호'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저 만의 경우의 수를 만들어서 꺼내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작업이 좋더라고요. 기회가 많아서요. 덕분에 실력이 조금은 늘지 않았을까 기대감이 있습니다."
영화 '귀공자'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배우 김선호 / 사진 : NEW 제공
김선호는 인터뷰 중 '느린 배우'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그가 자부할 수 있는 것 역시 "느리지만 유연하다는 것"이었다.
"제가 잘 못 알아들어요. 그래서 처음에 뚝딱거려요. '귀공자'에서 콜라도 되게 많이 마셨거든요. 제가 질문이 많은데요. 그 이유가 알아듣고 싶어서예요. '사람 인생이 묻어나게 웃어달라'는 것과 '밝게 보이는 웃음'은 같은 웃음이라도 전혀 느낌이 다르잖아요. 디렉션을 찾아가는 과정이 느려요. 그런데도 잘하고 싶어요. 그래서 계속 질문하고, 대답하는 분들은 지치시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한 번 알아듣기 시작하면 계속 잘 알아듣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계속" 선보여 갈 김선호의 앞길에 기대감이 더해진다. 느리게 큰 산을 넘어 누군가의 큰 산이 될 그의 행보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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