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 판교 네이버 사옥./뉴스1
챗GPT가 촉발한 생성형 AI의 열풍으로 국내 기업들의 AI 기술 고도화가 빨라지는 가운데 국내 반도체 시장에 먹구름이 걷히고 있다. 그래픽처리장치(GPU), 특히 고대역폭 메모리라고 하는 HBM의 수요가 늘면서다. 이에 국내 AI 사업과 반도체 사업이 동반성장을 이룰지 업계의 시선이 주목되고 있다.
GPU는 AI 품질을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다. 새로운 응용시장에서 반도체는 ‘빠른 속도로, 반복적으로, 규칙적으로’ 연산을 처리해야 한다. GPU는 직렬연산 방식을 이용하는 중앙처리장치(CPU)와 달리 병렬처리 방식으로 여러 연산을 동시에 처리해 더 적합하다. 챗GPT 초기버전에만 해도 1만개가 넘는 엔비디아의 GPU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AI 시장의 성장으로 다른 반도체칩보다 GPU에 대한 수요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수요가 공급에 비해 빠르게 늘었다는 증거는 가격에서 나타난다. 글로벌 시장 기준 2022년 1분기 GPU 가격이 300달러가량이었던 반면, 올해 들어서는 400~500달러까지 상승했다. 특히 세계 GPU 시장의 91.4%를 점유하고 있는 엔비디아의 GPU 수요가 폭증했으며, 주가도 두 배 이상 치솟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국내 반도체 대기업의 실적도 차츰 개선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GPU 안에 들어가는 메모리반도체 중 HBM 때문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은 HBM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시장의 약 90%를 독식한다. 증권가에선 두 기업에 대해 “올해 3, 4분기 이후부터 숫자(실적)가 올라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미 국내 반도체 업종의 중소형주는 대부분 주가가 갑절로 오른 상태다.
엔비디아의 독주를 잡기 위한 국내 움직임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퓨리오사AI, 리벨리온(KT투자사), 사피온(SKT투자사) 등 AI반도체 전문업체들이 있다. 몸집은 작지만 기술력만 놓고 보면 글로벌 기업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도 있다. AI반도체는 메모리 반도체보다 성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에, 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비롯해 산학연 전문가가 관련 간담회를 여는 등 기술 개발에 팔을 걷어붙였다.
국내 반도체 기업과 국내 IT 기업, 클라우드 업체 간의 한국형 초거대 AI 구축을 위한 연합도 두터워지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같은 국내 IT 기업들이 챗GPT, 바드 등 외산 AI 플랫폼의 국내 장악을 막기 위해 초거대 AI 자체 개발을 본격화·강화하는 추세인데, 고가의 엔비디아 GPU에 의존하면 기술적으로 자주성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네이버와 협력해 초거대 AI서비스에 최적화된 반도체솔루션을 만들고 있다. 네이버는 이르면 다음 달 초거대언어모델(LLM)을 개선한 ‘하이퍼클로바X' 시장 공개를 앞두고 있는데, 하이퍼클로바X에 최적화된 AI가속기(반도체)를 공동 개발 중인 삼성전자와 삼성그룹용 AI챗봇 개발도 검토 중이다. 네이버는 또 토종 팹리스 기업인 퓨리오사AI에 800억원을 투자했다.
LG AI연구원도 퓨리오사AI와 차세대 AI 반도체, 생성형 AI 관련 공동 연구 및 사업화를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퓨리오사AI가 개발 중인 2세대 AI 반도체 '레니게이드'로 초거대 AI '엑사원' 기반의 생성형 AI 상용기술을 검증한다는 계획이다. 퓨리오사는 LG AI연구원의 피드백을 설계, 개발, 양산 전 과정에 반영해 초거대 AI 모델 구동을 위한 AI 반도체 개발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KT는 리벨리온에 300억원 규모의 지분투자와 함께 파트너십을 맺었다. SK텔레콤은 AI 반도체 사업부를 분사시켜 팹리스 계열사인 ‘사피온’을 설립했다. 카카오엔터프라이즈도 퓨리오사로AI로부터 AI 반도체를 공급받고 있다. 한편 카카오엔터프라이즈는 글로벌 반도체 기업 AMD와도 손을 잡은 상태다. 점유율 8.5%의 AMD는 엔비디아의 GPU 독점체제에 자체 GPU로 맞서겠다고 도전장을 내민 바 있다.
업계에선 국산 AI 모델이 국산 반도체칩을 통해 전세계로 공급되는 그림을 기대하고 있다. 김유원 네이버클라우드 대표는 지난달 열린 포럼에서 “AI 성능을 올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비용을 낮추고 서비스 구조를 강화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래서 삼성전자와 AI반도체를 같이 연구하고 있다”며 “한국어에 최적화된 초대규모 AI 개발이 필요하다. AI 주권 수호와 직결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