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욱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감시국장이 15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호반건설의 부당내부거래 사건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는 모습./뉴스1
호반건설 그룹 계열사들이 '벌떼입찰'로 아파트를 지을 공공택지를 따낸 뒤, 총수 아들이 소유한 회사에 넘겨주는 방식으로 부당 내부거래를 했다가 600억원대 과징금 폭탄을 떠안았다.
15일 공정거래위원회는 호반건설이 동일인 2세 등 특수관계인 소유의 호반건설주택, 호반산업 등을 부당하게 지원하고 사업기회를 제공한 부당 내부거래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과 과징금 608억원(잠정)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호반건설 그룹 동일인(총수)인 김상열 호반장학재단 이사장이 지배하는 호반건설은 2010년부터 2015년까지 김 이사장의 장남인 김대헌 호반그룹 기획총괄 사장 소유의 호반건설주택과 차남 소유의 호반산업, 각 회사의 완전자회사 등 9개 사에 '벌떼입찰'로 낙찰받은 23개 공공택지 매수자 지위를 양도했다.
이 사건이 일어난 2013년 말에서 2015년경은 건설사들의 공공택지 수주 경쟁이 매우 치열했던 시기다. 민간택지보다 사업성이 높아 건설사 사이에서 '로또'로 불릴 정도였다. 당시 공공택지는 추첨방식으로 공급하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호반건설은 다수의 계열사를 설립하고 비계열 협력사까지 동원해 추첨 입찰에 참가시켰다.
이 과정에서 호반건설은 2세 회사의 공공택지 입찰신청금을 414회에 걸쳐 무이자로 대여해줬다. 각 회사별로 납부해야 하는 평균 38억원 규모(총 1조5753억원)의 입찰신청금을 호반건설이 무상 대납한 것이다.
더불어 낙찰받은 23개 공공택지를 2세 회사에 대규모로 양도했다. 양도된 공공택지는 모두 사업성 검토 결과 9083억원이라는 큰 이익이 예상됐다.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들여 택지를 확보했고, 큰 이익을 거둘 것으로 내부적으로 예측됐는데도 이런 이익을 포기한 채 최초 공급가만 받고 화성 동탄·김포 한강·의정부 민락 등에 있는 '알짜' 택지를 양보한 것이다.
그 결과 총수 2세 관련 회사들은 23개 공공택지 시행사업에서 5조8575억원의 분양 매출, 1조3587억원의 분양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아울러 호반건설은 2세 회사가 시행하는 40개 공공택지 사업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 총 2조6393억원에 대해 무상으로 지급보증을 제공했다. 2세 회사들은 자체 신용으로는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호반건설의 지급보증을 통해 공공택지 사업에 필요한 사업자금을 조달할 수 있었다.
이런 부당 지원은 ‘꼼수’ 경영권 승계로도 이어졌다. 이 사건 지원행위로 2세 회사들이 급격히 성장하고, 특히 장남 김대헌의 호반건설주택은 지원기간 동안 호반건설의 규모를 넘어섰다. 덕분에 지난 2018년 12월 4일 호반건설에게 피합병될 당시 합병비율을 1:5.89로 평가받을 수 있었다.
장남 김대헌은 합병 후 기업집단 호반건설의 대표회사인 호반건설 지분 54.7%를 확보하면서 사실상 경영권을 승계받았다. 김상열 회장이 2003년 당시 미성년자였던 김대헌 총괄사장을 대리해 설립한 호반건설주택을 통해 호반건설 지배권을 물려주겠다는 계획에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는 국민의 주거안정 등 공익적 목적으로 설계된 공공택지 공급제도를 악용하여 총수일가의 편법적 부의 이전에 활용한 행위를 적발 및 제재하였다는데 의의가 있다”며 “특히 편법적인 벌떼입찰로 확보한 공공택지의 계열사 간 전매가 부당 내부거래에 해당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하였으며, 향후 사업역량을 갖춘 실수요자에게 공공택지가 공급되는 공정한 거래질서가 확립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과징금 규모는 부당내부거래 사건으로 과징금을 부과한 사례 중 역대 세 번째 규모다. 공정위는 다만 부당지원행위가 주로 이뤄진 시점으로부터 공소시효인 5년이 지났기에 총수 검찰 고발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공정위 결정과 관련해 조사과정에서 충분히 소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사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에 대해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공정위의 의결 결과에 대해서는 의결서 접수 후 이를 검토해 향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결과를 떠나 고객, 협력사, 회사 구성원 등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 송구스럽게 생각하며 앞으로 더 엄격한 준법경영의 기준을 마련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