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통역 등 서비스가 없어 정보 이용 차별을 받고 있다며 대형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제기한 시각장애인들이 2심에서 일부 승소를 거둔 8일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왼쪽)과 이삼희 한국디지털접근성진흥원 원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선고 결과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최근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면서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특히 큰 영향을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앞장서 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확산하고 있다.
유통공룡으로 불리는 롯데쇼핑·G마켓·SSG 등이 '사회적배려'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자는 의미에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전략을 발표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 모습이다. 시각장애인들과 소송에서 패소하자 수년을 끌면서 2심을 하는 등 약자에게 오히려 강한 행태를 보이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것.
9일 업계에 따르면 시각장애인의 온라인 쇼핑을 위한 화면낭독기가 작동된다. 그런데 상품 이름도, 상세정보가 적힌 화면도 제대로 읽히지 않는다. "인트로.JPG 이미지. 데이터.JPG 이미지." 이런식이다.
글자가 적힌 그림파일이 통째로 올라오기 때문에 화면낭독기가 그림으로만 인식할 뿐 내용을 읽지 못하는 것.
때문에 지난 2017년 시각장애인 900여 명은 지마켓, 롯데쇼핑, SSG닷컴 등 온라인 쇼핑몰을 상대로 장애인차별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했다.
1심 법원에 이어 8일 2심 법원은 온라인 쇼핑몰이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위반한 게 맞다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온라인 쇼핑몰이 상품 상세정보가 담긴 그림파일까지 인식할 수 있는 화면낭독기를 제공하라고 명령했다.
반면 중견기업에 속하지만 오뚜기, 삼양식품과 같은 기업들은 다양한 제품군에 기업 또는 제품명 등을 점자로 표기, 시각장애인의 정보 장벽을 허물고 있다. 때문에 이번 판결로써 롯데쇼핑 등 국내 유통 대기업들이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에 소홀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재판부의 판결과 별개로 롯데그룹 등 유통 대기업 총수들은 신년사를 내고 사회적 책임 역할을 강조해 왔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롯데는 ESG 경영선포식을 통해 환경과 사회에 책임을 다하는 합리적이고 투명한 경영으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약속했다"며 "이 약속은 보여주기식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유통 공룡들이 2심까지 하며 약자에게 낭독기 설치를 해주지 않기 위해서 버티는 모습은 정말 보여주기식 행보가 아닌지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실제 오뚜기, 삼양식품, 코웨이 등 국내 중견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으로 점자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취약 계층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뚜기는 시각 장애인이 제품 구입 시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컵라면 전 제품은 물론, 컵밥 14종, 용기죽 전 제품 8종에 제품명 등을 점자 표기한 패키지를 확대 적용해 시각장애인의 ‘알 권리’ 보호에 힘쓰고 있다.
오뚜기가 완성한 점자 표기 패키지는 설문조사를 토대로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의 협조를 받아 점자 위치, 내용 및 가독성 등을 점검해 완성했다. 이 같은 노력을 인정 받아 노력을 인정받아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로부터 감사패를 수상하기도 했다.
오뚜기 관계자는 ”사회적 약자인 시각장애인이 제품을 구매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고려해, 이들의 편의 증진을 위해 컵라면 전 제품에 이어 컵밥, 용기죽에 점자 패키지를 확대 적용했다”며 “앞으로도 취약 계층의 불편함에 대해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도록 지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삼양식품도 시각장애인의 용기면 구매 및 취식 불편함 해소를 위해 점자 표기 용기면 제품을 출시, 사회적 책임에 이바지하고 있다.
삼양식품은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은 라면을 구매할 때 점자 표기 제품이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또 용기면 물을 맞추기 위해 용기 안에 손가락을 직접 넣어 확인해야 했다"며 "많은 기업에서 도입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유통업계뿐 아니라 가전기업도 시각장애인의 제품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점자 서비스를 도입했다. 코웨이는 ESG 경영 일환으로 자사 비데를 사용하는 소비자를 대상으로 점자 안내 서비스를 진행한다.
코웨이는 비데 전 제품에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점자 스티커를 고객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주요 제품의 음성 사용설명서를 제공한다. 점자 표기는 한국장애인소비자연합의 전문검수를 받아 정확도를 높였다.
코웨이는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제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도입했다"며 "최근 출시되는 주요 신제품에는 조작부 버튼에 점자가 각인돼 있지만 구형 모델은 점자 각인이 없어 사용할 때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를 바라보는 시각장애인은 물론 시민들의 시선도 곱지않다.
2심 판결 뒤 소송을 제기한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사무총장은 기자들을 만나 “재판부가 장애인 차별 문제를 받아들이는 시각이 여전히 보수화돼 있다”고 비판했다. 이 사무총장은 이어 “재판부는 쇼핑몰에 접근성 개선을 권고하는데, 실질적으로 재판하는 7년 동안 시각장애인이 체감할 만한 변화가 없는 상태다. 6개월 내에 (온라인쇼핑몰이 개선 조처를) 할 수 있을 지 의문이다”며 “(만약) 할 수 있다면 그동안 기업들이 시각장애인을 상대로 사기친 것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수성(가명)씨는 "말로만 사회적 배려 외치지말고 장애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와 인식 제고가 필요해 보인다"며 "돈과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지말고 사회적 배려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진정한 ESG 인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