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혁의 글로벌 인사이트] 미·중 첨단기술 전쟁, 과연 미국에 승산 있나?

정상혁 기자 ㅣ digihyuk@chosun.com
등록 2023.05.30 10:02

젠슨황 엔비디아 CEO/엔비디아 제공

미국과 중국의 경제수장이 지난 25일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APEC 통상장관 회의에서 마주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이 자리에서 최근 중국이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 제품의 구매 금지 조치를 내린 것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 또한 이에 질세라 미국의 대중국 수출 통제, 경제·무역 정책, 반도체 정책, 대외투자 심사 등에 대한 불만을 표시했다.

세계 최첨단 기술 패권을 둘러싼 미·중 전쟁이 점입가경이다. 미국의 동맹 규합 전술로 쉽게 끝날 것 같았던 전장의 양상이 중국의 거센 저항으로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마이크론에 대한 제재를 시작으로 그동안 수세에 몰렸던 중국의 반격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세계 최고 기술을 보유한 미국과 기타 서방 선진국들의 제재에 대항해 중국이 버틸 수 있는 저력은 무엇일까?

프랑스 공영 방송사 RFI는 지난 24일 미중 반도체 전쟁이 미국 하이테크 산업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게재했다. NVIDIA 창업자 젠슨 황은 이 매체와 인터뷰를 통해 “중국 시장은 세계에 단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대체 시장을 찾는 건 불가능하다”며 “중국 시장을 잃을 경우 미국 하이테크 산업 생산량은 3분의 2로 감소해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미국 제재로 중국은 반도체 독자 개발에 착수했고 결국엔 NVIDIA가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게임, 그래픽, 인공 지능 분야에도 진출해 미래 경쟁력을 키워나갈 것”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현재로선 세계에 중국만큼 큰 시장이 없고, 자본주의 국가 기업들이 이 매력적인 시장을 놓칠리 없다는 걸 중국 정부는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시장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인해 미국의 제재에 동참하지 말 것을 독려하고 있다. 미국 마이크론 제품 구매 금지를 선언한 중국은 당장 한국에 러브콜을 보냈다. 중국 상무부는 지난 26일 APEC 통상장관 회의가 끝난 즉시 “안덕근 한국 통상교섭본부장과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이 만나 양국이 반도체 산업망과 공급망 영역에서 대화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동의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우리 산업부는 곧바로 “반도체 공급망과 관련한 구체적 대화가 없었다”고 반박했다. 중국의 성급한 발표 배경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중 반도체 갈등 속에서 한국의 협조가 절실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세계 반도체 소비 24%라는 시장을 레버리지로 한국과 미국을 갈라치려는 속셈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매력적인 시장 이외에 중국이 믿는 구석은 또 있다. 바로 자원이다. 현재 어떤 국가를 막론하고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들고 싶다면 중국과 제휴는 불가피하다. 전기차 배터리에 꼭 필요한 망간 코발트 니켈 리튬 흑연 등 이른바 희토류의 세계 생산량 60% 이상을 중국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국의 희토류 생산 기업들은 정부로부터 부지를 지원 받아 사업을 하고, 오염물질 배출 문제에서도 비교적 자유롭다. 엄격한 환경 규제와 높은 인건비 탓에 광물 제련을 일찌감치 포기한 서방 기업들은 이들의 경쟁 상대가 못 된다. 미국 정부가 인플레이션 감축법 등을 통해 추격에 나서고 있지만 배터리 강국 한국을 비롯한 서방 어느 나라도 중국 도움 없이는 배터리 자급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중국과 디커플은 가능하지 않으며 유럽에 이익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디리스크(위험완화)에 집중해야 한다”(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미국은 중국과의 전쟁에 유럽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 유럽은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서방 선진국들이 중국 시장과 자원을 포기하지 못한 채 미·중 사이에서 계속 저울질하거나, 미국 또한 이들이 중국 제재에 동참할 뚜렷한 당근책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미·중 기술패권 전쟁의 결말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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