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킬링로맨스'에서 여래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제가 '킬링 로맨스'를 보고 우니까, 옆에서 원석 감독님이랑 선균 선배님께서 '어떻게 창피해서 우나 봐'라고 하시는 거예요. (웃음) 저는 힘이 쫙 빠진 범우(공명)을 보면서 그랬어요. '진짜 너는 안돼, 네가 뭘 할 수 있어'라는 남의 이야기보다 더 위험하고 무서운 게, 본인이 그렇게 믿는 거거든요. '나는 패자'라고 받아들이는 거요. 그게 마음이 아팠어요."
이하늬의 말처럼, 영화 '킬링 로맨스'에는 정말 무궁무진하게 빠져드는 포인트가 많다. 어쩌면 그것이 이하늬가 이 작품을 "역사에 남을 영화"라고 이야기한 이유가 아닐까. '킬링 로맨스'는 하루아침에 발연기로 나락으로 떨어진 톱스타 여래(이하늬)가 찾아간 콸라섬에서 만나, 결혼까지 이르게 된 조나단(이선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이하늬는 '여래' 역을 맡아 노래와 비트, 그리고 다양한 감정연기까지 '도전'이라는 한 단어로 담기 부족한 것들을 해냈다. 이하늬는 "이 영화가 세상에 나올 수만 있다면, 나는 뭐든지 하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진짜 원석 감독님같이 색 있는 감독님이 힘 있게 작업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컸고요. 제가 좋은 배우는 아니지만, 그 작업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역할이 될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라고 작품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전한다.
영화 '킬링로맨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남자사용설명서', '상의원' 등 스크린에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과 색감을 물들인 이원석 감독은 '킬링 로맨스' 속 이하늬가 '디즈니 공주님' 같기를 바랐다. 이하늬는 "제가 병이 있는 캐릭터가 아니라면, 체중 조절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는데요. 감독님께서 정확히 몸무게를 말씀주셔서 그거에 대한 강압이 있었어요. 동화 속 공주님이라고 하셔서 '어떻게 하지? CG로 가야 할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레퍼런스도 정말 많았고, 비주얼 피팅도 많이 했어요. 여래의 옷 질감, 색, 핏 등을 보면서 많이 연구했던 것 같아요"라고 숨어있었던 노력을 전했다.
이선균은 인터뷰에서 '킬링 로맨스' 속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으로 '불가마' 장면을 꼽았다. 이하늬는 이에 "정말 거의 다 애드리브"라고 말을 보탰다. '푹쉭확쿵'으로 랩을 한다'라는 대본의 한 줄은 이하늬와 이선균의 합을 통해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운 명장면을 만들어 냈다.
"진짜 계속되는 현타에 맞서 오늘도 내가 살아남으리라. 매일 생각 했어요. 그러면서도 되게 재미있게 했어요. '푹쉭확쿵'이 황당하잖아요. 이렇게 해볼까, 저렇게 해볼까 현장에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현장에서 그런 믿음이 있었어요. 제가 뭘 하든 (이)선균 선배님이 다 받아주고, (이)선균 선배님이 뭘 하시든 제가 다 받아준다고요. 그 힘으로 간 것 같아요. 적혀진 텍스트가 엄청난 두려움을 주면서 동시에 자유를 주거든요. 고민하다가 '푹쉭확쿵'에 맞춰 (이)선균 선배님께서 노래를 해주셨어요."
영화 '킬링로맨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킬링 로맨스'를 보면 '푹쉭확쿵'이라는 의성어도 귓가에 맴돌지만, 약 20글자를 1초 만에 말하는 음료 브랜드를 광고하는 여래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이하늬에게 빠르고 완벽한 발성으로 이를 연기해 낸 비결이 혹시 '판소리'냐고 묻자, 환한 긍정의 답변이 돌아왔다.
"판소리는 연기하는 데 정말 도움이 돼요. 정말 배우들이 꼭 했으면 좋겠다 싶어요. 한글이 음표가 되는 게 판소리잖아요. 한국 사람이 한국어를 가지고 연기하는 데는 다른 데가 아니라 '판소리'에 해답이 있는 것 같아요. 중국 배우들의 연기를 보고, 중국적인 색채가 어디에서 나올까 생각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게 전통예술학교에서 익힌 것 같아요. 저는 한국 영화가 더 한국스러워지고 진해질 때, 더 글로벌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킬링로맨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원 더 우먼' 등의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이미 '이하늬 표' 코믹 연기에 대한 신뢰를 쌓았다. 하지만 '킬링 로맨스'의 독특한 분위기는 이하늬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었다.
"보통 코믹 연기가 양기가 가득 찬 상태에서 양의 기운을 내뿜거든요. 그런데 여래의 상황은 음기가 가득 찬 상황이에요. 그 속에서 즉각적으로 나오는 반응에 의한 코믹 연기가 많았어요. 여래가 가진 감정의 기복도 컸고, 레이어도 층층이 다양했고요. 여래가 학대당하는 장면 다음에 이어지는 '제발'을 부르는 모습은 또 온도가 달라야 했잖아요. 감정을 모두 받아들이고 100층 밑으로 내려가야 하는 장면이었어요. 그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격차가 컸어요. 조나단 대사에도 나오지만 '여래에게는 약간 신경쇠약도 있었겠다' 싶었어요. 그런 걸 가스라이팅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여래가 '넌 할 수 있어'가 아니고, '넌 절대 못 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으며 살아왔기에 정말 속 안이 많이 곪아있을 것 같았어요."
영화 '킬링로맨스'에서 여래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하늬에게도 '넌 절대 못 할 거야'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서울대학교 출신이라는 꼬리표에 질풍노도의 시기가 상상이 잘 가지 않는 이하늬이지만, 그는 "그 학교에 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집을 나간 적도 있고, 그야말로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냈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도 컸고, 벗어나고 싶다는 갈증도 있었고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금은 대중적으로 너무나 호감인 이하늬이기에, 초창기 배우로 데뷔했을 때 그가 느낀 높은 벽이 잘 닿지 않았다.
"잘 된 작품 덕분에 저의 잘 안되던 시절을 기억 못 해주셔서 너무 다행이에요. 예전에 제가 망가지는 연기를 할 때 한 스태프가 저에게 '누나 어떻게 해요. 미스코리아인데'라고 걱정해 준 적이 있어요. 그때 제 객관적인 좌표에 대해 깨달았어요. 하지만 저에게 중요했던 건 주관적인 좌표였어요. '지금은 이래도 괜찮아. 일일드라마 서너번째 주인공해도 괜찮아. 덕분에 선배님들과 함께 연기할 수 있으니 영광이지'라고 생각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 캐스팅이 안 되면, 뮤지컬을 더 많이 했어요. '금발이 너무해', '시카고' 등 덕분에 다양한 뮤지컬 경험도 쌓을 수 있었죠."
"이원석 감독님께서 '킬링 로맨스'에 대해 '용기에 대한 이야기'라고 하셨는데요. 저는 너무 공감해요. '킬링 로맨스'는 여래가 돌파구를 찾기 힘들 때, 자신을 믿어주고 지지해 준 사람으로 인해 벌어지는 일들이잖아요. 저도 '넌 여기까지야', '시집 가'라는 말도 많이 들었어요. 그런 말에 '저 연기 열심히 할게요'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던 때도 있었어요. '잘 할 수 있어, 넌 좋은 배우야'라고 말씀해 주시는 게 눈물 나게 감사할 때가 있었어요. 그런 분들은 아직도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강형석 감독님도, 정지우 감독님도, 저에겐 은인 같은 분들이에요. 특히 '침묵'은 배우에게 주는 믿음이 얼마만큼 그 사람을 확장시키고 자유롭게 하는지를 느끼게 해준 작품이거든요. 그런 믿음을 통해 조금씩 벽을 넘어가며 풀어진 연기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덕분에 사람들이 저를 새롭게 느끼고 계시구나 싶어요."
영화 '킬링로맨스'에서 여래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하늬는 지난 2021년 12월, 혼인 서약식을 통해 비연예인 남성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리고 지난해 6월 딸을 출산하고 엄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여래와는 달리, '가족'이라는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이하늬다.
"조나단과의 결혼이 여래에게 도피처였다면, 저에게 결혼은 안식처 같아요. 예전에는 어딘가 안식처를 찾아야 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완전한 안식처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저의 안전하고 완전한 휴식처죠. 물론 들어가면 아이가 있으니, 몸은 쉴 수 없는 상황이지만, 정신적인 부분에서 완전한 안식처가 돼요."
영화 '킬링로맨스' 스틸컷 / 사진 :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이하늬는 여전히 도전을 이어가고 싶다. 그 중 '판소리 영화'는 가장 욕심나는 작품이다. 이하늬는 '서편제' 같은 작품을 만나는 "그 때를 위해 배우의 모든 노하우를 가지고 가는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라고까지 말한다.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작품을 중국 배우 장쯔이가 했잖아요. 한국 배우가 그런 콘텐츠를 보여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과거 '역적' 때 장녹수 역을 맡아서 한국 무용을 선보인 적 있어요. 영화에서 본격적인 캐릭터를 만나고 싶었는데 아직 못한 게 너무 아쉬워요. 제가 가야금, 소리, 한국 무용 등 그 당시 예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판소리는 금방 배우기 어렵거든요.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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