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테이트 공장 기공식에서 최종건 창업회장(왼쪽에서 5번째)과 최종현 선대회장(6번째)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SK 제공.
"구부러진 것은 펴고 끊어진 것은 잇는다."
지난 1953년 한국전쟁으로 잿더미 속 폐허가 된 공장에서 SK 최종건 창업회장이 손수 부품을 주워 직기를 재조립하며 한말이다. 글로벌 SK의 70년 역사도 여기서 시작됐다.
SK그룹은 창립 70주년(4월8일)을 맞아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 형제의 어록집 '패기로 묻고 지성으로 답하다'를 6일 발간했다고 밝혔다.
이 책은 약 250개 대표 어록을 일화와 함께 다루고, 평생을 국가경쟁력 강화를 고민했던 두 회장의 유지가 어떻게 계승돼 SK가 재계 대표기업으로 성장했는지 조명한다.
한국전쟁, 수출 활로 개척, 석유 파동, IMF 경제 위기 등 격동의 시대에 맨손으로 사업을 개척했던 두 회장의 어록은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시대를 초월한 교훈을 주고 있다. 특히 지정학적 위기 등 글로벌 불확실성이 높아진 오늘날, 기업인에게 대한민국 위기 극복의 해법을 제시한다.
최종건 창업회장은 1953년 버려진 직기를 재조립해 선경직물을 창업한 후,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가 새겨진 인견 직물을 최초로 수출하는 등 우리나라를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평생 실천한 기업인이다.
“회사의 발전이 곧 나라의 발전”이라며 본인 세대 노력이 후대를 풍요롭게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우리의 슬기와 용기로써 뚫지 못하는 난관은 없다”며 맨바닥에서 한강의 기적을 일군 임직원을 격려하는 최 창업회장의 모습이 어록집에 담겼다.
최종건 회장은 “돈으로 사람을 살 수 없다. 마음을 주고 사야 한다”고 말하며 발전만이 미덕인 시대에 사람의 가치를 존중하며, 구성원의 복지 향상에 힘쓰기도 했다.
1973년 창업회장의 유지를 이어 받은 최종현 선대회장은 미국에서 수학한 지식을 기반으로 ‘시카고학파’의 시장경제 논리를 한국식 경영에 접목시킨 당시 보기 드문 기업인이다. 회사가 이윤만을 추구하던 1970년대, 서양의 합리적 경영이론과 동양의 인간 중심 사상을 결합하여 SK 고유의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를 정립했다.
최종현 선대회장은 “첫째도 인간, 둘째도 인간, 셋째도 인간”, “당신(You)이 알아서 해”라는 어록처럼 자율성에 기반한 과감한 위임을 실천했다. 국내 최초 기업 연수원인 선경연수원 개원(1975), 회장 결재칸과 출퇴근 카드 폐지, 해외 MBA 프로그램 도입 등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행보로 SK만의 독보적인 기업문화를 만들었다.
1994년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인수시에 너무 비싼 값에 샀다는 여론이 일자 “우리는 회사가 아닌 미래를 샀다”며, 미래 산업 변화에 대한 남다른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했다.
또 그는 “자율·창의·경쟁을 바탕으로한 시장 경제의 원리를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 경제를 정상적으로 키우고 나라를 살찌우는 근본”이라며, 국가경쟁력 제고에 평생을 힘썼다.
두 회장의 경영철학은 고스란히 최태원 회장에게 이어졌다. 최 회장은 2021년 대한상의 회장에 추대됐을 때 “국가경제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밝힌 이후 부산엑스포 유치 지원 활동과 글로벌 경제 협력 등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기업의 포트폴리오를 과감하게 조정하는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인재 양성에 힘쓰는 것도 SK 전통을 계승한 결과다.
최태원 회장은 발간사를 통해 “창업회장과 선대회장의 삶과 철학은 단지 기업의 발전에 머무르지 않았고,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향해 있었다”며 “선대의 도전과 위기극복 정신이 앞으로 SK 70년 도약과 미래 디자인의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K는 10개월에 걸쳐 최종건 창업회장과 최종현 선대회장의 발간물, 사사, 업무 노트 등 기록물 약 1만 5000장을 분석하여 대표 어록 250개를 선별했다. 아울러 창업부터 선대회장 시기 1500여 장의 사진자료를 디지털로 복원하여 대표 이미지 170장을 책에 담았다.
어록집은 비매품으로, 대학·국공립 도서관과 SK 홈페이지를 통해 열람할 수 있다.
1969년 폴리에스터 원사 공장 준공식에 최종건 창업회장(왼쪽)과 최종현 선대회장이 참석하고 있다. // 1986년 내한한 사우디아라비아 야마니 석유장관과 면담 중인 최종현 선대회장.(가운데) // 1997년 9월 폐암 수술 후 호흡기를 꽂고 전경련 회의에 참석한 최종현 선대회장. /SK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