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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빨간풍선' 서지혜 "'지팔지꼰' 은강아, 제발 너 자신을 사랑해"

이우정 기자 ㅣ lwjjane864@chosun.com
등록 2023.03.04 07:30

사진: 이음해시태그 제공

세련된 비주얼 탓인지 그간 출연작에서 모던한 캐릭터로 사랑받아온 서지혜가 TV CHOSUN '빨간풍선'을 통해 제대로 연기 변신을 했다. 불륜녀 캐릭터에, 주인공이지만 주인공답지 않은 서사를 표현해야 했다. 이 모든 어려움을 소화해낸 서지혜와 만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빨간풍선' 상대적 박탈감에서 시작된 치정을 다뤘다. 서지혜는 그 중심을 이끄는 '조은강' 역을 맡아 겉으론 수수하지만 마음속에 욕망을 품고 있는 인물을 연기했다. 은강은 취업도, 집안 사정도, 사랑도 모든 게 풀리지 않는 안타까운 인물이었으나, 점점 용납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는 입체적 인물로 변모한다. 특히 은강은 20년 지기 '한바다'(홍수현)와 그 남편 '고차원'(이상우) 사이에서 삼각관계를 이룬다. 말이 삼각관계지, 불륜이다.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존재다.

사진: 이음해시태그 제공

'빨간풍선'은 자극적인 소재와 파격적 전개로 안방극장을 사로잡았다. 3%(닐슨코리아 전국 가구 기준)대로 시작한 시청률은 점차 오르더니, 최종회에서 11.6%를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서지혜는 작품이 인기를 끌수록 욕먹을 준비를 했다. 자신이 맡은 '조은강'은 마땅히 그래야 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저는 저한테 욕은 안 하셔서 이렇게 많이 보고 계신 줄 몰랐어요. 농담으로 '나중에 길 가다가 등짝 스매시 맞는 거 아냐?'라고 생했는데 다행히 그러진 않았어요. 요즘은 작품 속 캐릭터와 현실을 잘 구분해 주시더라고요. 댓글도 보긴 했는데, 후반부의 은강이를 언급하는 악플이 많더라고요. 그래도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지 않나 싶어요."

"'빨간풍선'은 주인공이 항상 착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깬 드라마이지 않나 싶어요. 드라마 자체의 의도가 욕망으로 시작을 하기 때문에 한 인간이 가진 욕망이 얼마만큼 드러날 수 있는지 포커싱이 되다 보니 제가 맡은 역할은 욕을 먹을 수밖에 없었죠. 다들 아무리 친해도 차마 말하지 못하는, 숨길 수밖에 없는 감정이나 생각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의 심리를 다뤘기 때문에 매력이 있었어요."

사진: TV CHOSUN 빨간풍선 제공

은강은 바다보다 자신이 먼저 차원을 좋아했다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대며 불륜을 정당화하려 한다. 그뿐만 아니라 보석 디자이너인 친구의 디자인을 빼돌리는 일까지 벌인다. 상대적 박탈감에 사로잡힌 은강은 선택의 순간에서 잘못된 길만을 골라간다. 서지혜도 그런 은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비슷한 경험도 없거니와 주변에서도 본 적 없는 인물이다. 그래서 서지혜는 조은강의 심리에 파고들었다.

"사실 이해가 안 되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감정적으로요. 그럴 때 조금 많이 힘들었어요. 은강이는 저랑 정반대인 성격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은강이를 보면서 '친구에게 섭섭한 부분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나? 이만큼이나 자존감이 낮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어요. 은강이를 이해해 주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처럼 생각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캐릭터를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은강이를 연기하면서 시청자분들에게 공감해달라고 노력하거나, 설득하려고 한 적은 없어요. 그냥 이 친구의 마음이 어떤지를 표현해 내는 게 중요했거든요. 제가 생각했을 때도 '이건 아닌데' 싶었던 지점이 있다 보니까 은강이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것에 초점을 두게 됐어요. 때로는 은강이가 미묘하게 야금야금, 소심한 복수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공감과 공감하지 못하는 상황. 그걸 오가는 묘한 매력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이음해시태그 제공

은강은 불쌍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외도를 보고 자랐고, 돈타령만 하는 어머니 밑에서 주제를 알고 살려 했다. 그나마 자신의 희망이었던 교직 생활을 위해 임용고시도 수차례 도전했지만 마흔을 앞둔 나이에도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이 과정에서 주얼리 회사를 운영하는 절친 바다의 옆에서 심부름을 하며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 바다의 뒷바라지를 하고, 바다와 차원의 딸 미풍이를 돌보고. 은강이는 모든 게 완벽해 보이는 친구 바다의 삶을 빼앗고 싶어졌다. 그런 은강을 표현하려면 일련의 감정들을 차곡차곡 쌓아야 했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지만 서지혜는 도전 정신으로 맞닥뜨렸다.

"불쌍하잖아요. 은강이가. 처한 가정환경이나, 하고 싶어도 돈 때문에 못 하는 게 많고. 그런 부분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았겠다 싶은 아쉬운 생각도 있어요. 내가 놓친 부분들이 있었구나 싶더라고요. 이 아이를 더 이해했다면 좀 더 다르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고요. 그만큼 은강이는 저에게 굉장한 도전이었어요. 제가 생각하지 못한 감정선들이 나타나니까 그런 부분이 흥미진진하기도 했고요."

"감정신은 정말 힘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신이 바다가 은강이에게 '너 내 남편 좋아하니' 하면서 막 의심하는 신인데, 거기서 은강이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거든요. 그런데 작가님이 눈물에 진심이 들어가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래서 친구이니까 (불륜 관계를) 숨겨야 하고, 한편으로는 '나도 너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잖아'하는 그런 복잡 미묘한 감정을 보여주는 게 많이 힘들었어요."

사진: TV CHOSUN 빨간풍선 제공

가족극에 막장 소재로 유명한 문영남 작가이지만, 이번 작품만큼 '욕망'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한 건 처음이었다. 배우들 역시 그런 점에 매료됐지만 연기하기엔 여간 까다로운 작업이 아니었다. 서지혜는 '빨간풍선'을 촬영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고 겸손해하면서도 내로라하는 연기파 선배들과의 현장에서 배움의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문영남 작가님의 글은 인생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배우로서는 되게 어려운 대본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미팅할 때 작가님께서 '내 거만큼 쉬운 대본이 없어' 하셨는데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연기 인생에 이렇게 어려운 대본은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덕분에 값진 경험을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동안 했던 캐릭터들이 도시적이거나 트렌디하거나 그런 역할을 많이 했는데, 제가 오랜만에 가족극을 하다 보니 다른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좋기도 했고요."

"이번 작품 하면서 쟁쟁하신 선배님들과 연기할 기회는 정말 좋았어요. 저는 혼자 모니터링하면서 그런 적도 많아요 '나 왜 저렇게 못 하지' 하면서요.(웃음) 배우가 자기의 연기를 평가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선배님들을 뵙고 연기를 하면서 정말 대단하시다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나도 저 나이까지 저렇게 연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러고 싶다'하는 생각도 하고 많이 보고 배웠던 현장이었죠."

사진: TV CHOSUN 빨간풍선 제공

지난해에만 무려 세 작품을 보여준 서지혜다. '키스식스센스'와 '아다마스', 그리고 '빨간풍선'까지, 심지어 장르마저 다 다르다. 특히 '빨간풍선' 촬영 중엔 몸과 마음의 고생까지 겹쳤다. 서지혜는 이제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칭찬하고 싶은 부분요? 사고 없이 잘 끝난 것만 해도 저를 칭찬해 주고 싶어요. 초반에는 몸도 아파서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었던 적이 있어요. 중간에는 개인사로 인해 심적으로 힘들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극복해나가려고 했고 잘 끝낼 수 있었다는 점에선 속 시원하기도 해요."

"이젠 좀 쉬어야 할 것 같아요. 가끔 쉬는 날 엄마에게 가면 '너는 연애 안 하니' 하시더라고요. 그러면 엄마한테 '나 나쁜 거 안 보여?' 그러기도 해요.(웃음) 시간이 있어야 연애를 하지라고 하면 '핑계야'라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내리 세 작품을 해서 지금은 그냥 여유 있게 즐기는 시간을 가져볼까 해요. 이미 티켓팅도 다 해놨어요. 도망가려고요. 안 그러면 잡힐 것 같아서요. 가까운 일본부터 시작할 것 같아요. 동생이 호주에 있어서 호주를 마지막으로 길게 다녀오려고 해요."

사진: 이음해시태그 제공

서지혜는 '빨간풍선'을 마치고 은강이를 떠나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은강이에게 온갖 정이 들었던지 서지혜는 친구로서 언니로서 은강이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그 메시지가 작품을 본 시청자에게도 닿기를 바랐다.

"은강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제발 너 자신을 사랑해'라는 말이에요. 그리고 '남 탓 하지 마라'라고 하고 싶어요.(웃음) '빨간풍선' 찍으면서 어르신들이 하는 말씀이 다 맞구나 싶었어요. '지 팔자 지가 꼰다' 그런 한국의 말들이 다 들어있는 작품이거든요."

"저는 자존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아요. 스스로의 존재 자체를 소중히 생각하는 것, 그게 없으면 삶의 의욕이 없을 것 같아요. 특히나 이번 작품 하면서 내가 곧게 서 있는 게 중요하지, 주위에 주어진 상황이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드라마를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도 각인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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