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CJ ENM 제공
"지금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극상의 행복을 느끼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출산을 한다는 게 꼭 나쁘지만은 않더라고요. 내가 20대에 아이를 낳았으면 이런 관조적인 시선으로 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완벽한 인간의 일이면서 신의 영역이 임신과 출산이잖아요. 저는 그런 걸 알 나이에 아이를 낳을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정말 미치게 힘들지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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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가 진짜 '원더우먼'이 되어 돌아왔다. 출산 7개월 차, 육아를 하면서도 영화 '유령'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모습은 원더우먼 그 자체였다.
영화 '유령' 개봉 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하늬를 만났다. 출산 후 공식적인 인터뷰는 처음인 그에게 축하가 쏟아졌다. 이하늬는 스마트폰 배경에 아이의 얼굴을 박아 넣고, 딸 자랑을 하는 엄마가 돼 있었다. "남편을 닮아서 좋다"고 말한 이하늬였지만 아이의 웃는 모습은 엄마를 쏙 빼닮아 있었다.
'유령'은 크랭크업 한 지 1년 반 만에 세상의 빛을 봤다. 팬데믹 상황에 개봉이 미뤄졌고, 이하늬는 그동안 결혼하고 엄마가 됐다. "예전에는 되게 당연했던 것들이 이제는 다 소중해요. 어쨌든 팬데믹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잦아든 덕에 영화가 나올 수 있어서 굉장히 설레요. 2년 사이에 저도 많은 일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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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는 '파워 E(외향형)'로 꼽히는 배우 중 하나다. 작품에서도 당차고 텐션이 높은 인물을 주로 소화한 그는, 영화 '유령'을 통해 180도 다른 캐릭터를 맡았다. 이전까지의 캐릭터가 웜톤이었다면 이번엔 쿨톤이었다. 이하늬는 '유령'의 어떤 점에 끌렸을까.
"왜 '유령'을 선택했냐고 물어보시면, 오히려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캐릭터도 너무나 매력적이었고, 같이 하는 배우들도 그렇고 감독님, 경구 선배님까지 (함께할 수 있어) 정말 가문의 영광이에요. 존경하는 선배님, 감독님과 작업을 한다는 것 자체가 성공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설경구 선배랑 한 공간에서 숨 쉬고 연기해 보니 '아, 내가 배우가 됐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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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은 스파이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항일 영화다.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조선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건 상상 속의 스파이 집단 '유령'을 소재로 했다. 이하늬는 일제 강점 시대물에 독립운동가 역할은 처음이었다. 우선 할 일은 캐릭터를 이해하는 일이었다.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 세밑 추위를 지난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안다라는 말이에요. 안중근 의사께서 옥중에서 하신 말씀이라고 들었어요. 당시 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정말 시린 겨울을 지나고 있는데, 봄이 오지 않고 계속 겨울이 몇 년째 이어지니 '끝나기는 할까' 싶은 마음이었을 것 같아요."
"차경이 계속 말하는 게 '살아. 죽을 때 죽어'라는 말을 해요. 죽지 말라고는 안 하죠. 죽어야 할 때를 위해 죽음을 남겨두는, 되게 희한한 삶이잖아요. 하지만 나에게 너무나 의미 있던 존재가 총 한 방에 흙이 되는 걸 목격하고 그게 당연했던 시대기에 그 마음이 대체 어떨까 싶었어요. 어떻게 삶을 지탱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차경을 이해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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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차경은 굉장히 '유령'같은 인물이다. 조선총독부에서 암호 기록을 담당하는 직책을 맡아 여러 암호를 비밀리에 빼돌린다. 유령으로 의심받고 호텔에 갇혔을 때도 늘 은밀하고 철저하게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다. 기존에 이하늬가 보여줬던 하이톤과는 정반대인 인물이었기에 톤을 잡는 과정도 필요했을 터다.
"차경의 톤을 잡는 과정도 신중했어요. 제가 악기를 오래 해서 그런지 대사를 음째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캐릭터 교정을 할 때도 '톤이나 레인지를 이 정도 쓰면 좋겠다' 생각하고 설정해요. 보이는 건 모노톤, 회색에 가까워도 그 안을 까보면 시뻘건 마그마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캐릭터라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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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신도 많았다. '무라야마 쥰지' 역의 설경구와는 난투에 가까운 맨몸 액션을 펼치기도 했다. 후반부에는 장총을 들고 스타일리시한 액션도 소화했다. 존경하는 선배님과 함께하는 건 좋았지만, 과거 '역도산' 역을 맡은 설경구와 맞붙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촬영할 때면, 중요한 신은 계속 상상하고 연구해요. 무엇보다 저는 체력 안배에 신경을 많이 써요. 설경구 선배님과의 액션신요? 저는 할 때마다 '역도산이다' 생각했어요. '내가 역도산이랑 붙으면 어떨까' 하는 두려움과 불안감이 많았고요.(웃음) 설경구라는 배우가 가진 에너지 자체가 넘치고, 그 무게감 같은 것들을 맞닥뜨렸을 때 서로 비등비등해야 볼만한 신이 나오겠다 싶었어요. 체급이나 성별의 차이가 보이면 실패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용호상박처럼요. 이 장면에선 절대 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내가 밀리면 이 신 무너진다는 마음으로 (악착같이) 했어요."
"장총도 아주 가볍게 만들어도 무게가 4kg이 나가요. 실제로는 7kg 정도 되는데 매촬영 때는 하루종일 들어서 장전하고 쏴야하니까 어떤 때는 어깨에 피멍이 들기도 했어요. 이건 노하우도 없고 훈련밖에 (방법이) 없구나 싶은 생각에 늘 차에 넣고 들고 다녔어요. 후반부에 장전을 연속으로 해야하는 신이 있는데, '나는 여전사다'하는 생각으로 엄청 연습하고 촬영에 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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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나오니까 제가 배우 코스프레를 하는 느낌"이라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던 이하늬다. 아이를 낳고 배우로서 변화한 점이 있는지 묻자, 이하늬는 이제 삶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오랫동안 배우 생활을 했는데도 막상 포토월에 서니 '뭐지 이 낯선 느낌은' 했어요.(웃음) 제가 임신 기간을 겪으면서 그동안 했던 적금을 타는 느낌이었어요. 진짜 운동하기 싫을 때마다 '내가 적금을 들고 있어. 나중에 꺼내 쓸 때가 올 거야'라는 생각으로 했어요. 20대 때는 30대를 위해 운동해야 하고, 30대는 40대를 위해 운동해야 하더라고요."
"이제는 배우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됐어요. 열심히만 하는 배우보다는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삶을 연기에 녹여내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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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늬는 본격적으로 워킹맘의 길을 걷게 됐다. 쿨한 워킹맘이 될 줄 알았으나 현실은 달랐다고 했다. 밖에 나와 있어도 온통 아이 생각이었다. 이하늬는 일과 육아 모두 '행복하게 하자'는 마음과 그럴 수 있다는 기쁨에 살고 있다.
"매일이 너무 신기해요. 제 나이가 적지 않잖아요. 저도 많은 경험을 쌓으려고 노력했다 생각했는데 임신과 출산, 육아는 정말 매일매일이 처음이에요. 이렇게 매일 새로운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있다는 게 놀라워요. 지금도 안테나 한 쪽은 아이에게 가 있어요. 이전에는 쿨한 엄마가 될 거야 했는데, 막상 (엄마가) 돼보니 그렇지 못하겠더라고요.(웃음) 맨날 폰으로 아기가 잘 있나 들여다봐요."
"사실 3년까지는 육아를 해야 하나 굉장히 고민이 많았는데, 그냥 닥치는 대로 (일을) 하자 생각했어요. 대신 기쁘게 일하자는 마음으로요. 워킹맘들이 일하면서도 아이 생각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겠어요. 그래서 저는 최대한 일을 행복하게 하고, 집에 들어가면 최대한 육아를 행복하게 하자 마음 먹었어요. 49와 51의 싸움인 것 같아요. 아이를 볼 때는 '내가 인간을 낳았어!'하는 그 기쁨에 집중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