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 안전철학 집결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 가보니 시속 64km·100톤 구조물 충돌에도 내부 멀쩡한 '아이오닉 5' 차종당 충돌시험 100회, 가상시험 3천회, 개발비 100억 투자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 테스트서 최상위등급 26개 차량 TSP+, TSP 획득
아이오닉 5 충돌 안전 평가를 진행하는 모습./현대차그룹 제공
지난 12일 현대자동차그룹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 조명이 환하게 켜지며 내부를 환히 밝히자 '곧 시험이 시작됩니다'라는 경보음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에 달려오는 2024년형 아이오닉 5. 시속 64㎞로 달려온 청록색 아이오닉 5는 깜짝할 사이에 구조물을 들이받고 멈췄다.
충돌 후 충격으로 차량 파편은 사방으로 튀었고 보닛 주변에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범퍼가 떨어져 나갔고 전면 유리는 거미줄처럼 금이 갔다. 한눈에 봐도 심각한 충격이었지만, 실내는 구김 하나 없이 멀쩡했다. 얼굴과 무릎, 측면을 에워싸는 에어백은 운전석에 있는 남성 더미(신체 모형)와 2열에 여성 더미를 보호하고 있었다.
이날 공개된 평가는 시속 64㎞를 달리는 차량 전면의 40%를 변형벽에 충돌시켜 차량내 승객의 충돌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것이다.
이날 인상적인 장면을 꼽자면 '고무장갑'을 끼고 달려 나온 연구원들이었다. 충돌 실험 직후에는 연구원들이 바로 현장에 달려가 더미에 달린 센서 등 각종 데이터를 추출한다. 이들이 고무장갑처럼 생긴 절연 장갑을 낀 이유는 전기차에 달린 고전압 배터리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이번 충돌 시연으로 신형 전기차를 고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기차 내 배터리는 충격과 동시에 큰 화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충돌 평가와 안전 관리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또 내연기관에 있던 엔진룸이 빠졌기 때문에 정면 충돌 에너지를 흡수할만한 새로운 구조물이 필요하다.
이날 한 연구원은 "내연기관과 전기차의 차이를 알고 사고에 대응해야 하기 전동화 차량의 높은 충돌 안전성은 해당 시장의 큰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전동화 전환에 맞춰 현대차그룹은 상시 충돌 평가 이외에도 배터리 단품 테스트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등 평가 방식을 다원화했다.
현대차그룹은 매일 100회 이상, 연간 3만회 이상의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 이런 시뮬레이션은 차종당 평균 3000회 이상의 충돌 해석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특히 이 과정은 결과가 나오기까지 15시간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에 충돌 안전 개발에만 4만5000시간이 들어간다. 비용도 막대하다. 차량 한 대당 들어가는 충돌 안전 개발비만 100억 여 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충돌 실험에 쓰이는 더미 한 개만 해도 '억대'다. 현대차그룹은 남성, 여성, 유아 등 27종·170개 세트의 '더미 가족'을 운용하고 있다. 그중 고가의 더미는 한 세트당 가격이 약 15억 원으로, 넉넉잡아 더미에 쓴 비용만 2500억 원이 넘는다.
아이오닉 5 충돌 안전 평가 진행 후 관람을 하고 있는 모습./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차그룹의 안전 철학이 집약된 남양연구소 안전시험동은 2005년 12월 준공됐으며, 4만m²(1만2100평)의 시험동과 2900 m²(877평)의 충돌장을 갖췄다.
충돌시험장은 100톤의 이동식 충돌벽과 전방위 충돌이 가능한 총 3개 트랙으로 구성되며, 최고 속도 100km/h, 최대 5톤의 차량까지 시험이 가능하다.
이날 백창인 현대차 통합안정개발실 상무는 "현대차그룹은 안전성과 관련해 내수와 수출 구분 없이 동일하게 차량을 설계하는 '글로벌 원바디 시스템'을 도입했다"며 과거 불겨졌던 '내수 차별 논란'에 대해 불식시켰다. 다만 각 나라의 법규 때문에 차량의 일부 소재는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보행자 충돌 사고율이 높은 경우 사람의 다리를 보호하기 위해 차량 범퍼에 경량 소재를 써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단단한 소재를 써도 된다고.
현대차그룹의 막대한 투자와 연구개발 끝에 충돌 안전성에서 '글로벌 초격차'를 만들어 냈다. 지난해 그룹 내 26개 차종 모두 IIHS(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 협회)에서 최우수 등급인 TSP+(Top Safety Pick Plus) 및 우수 등급인 TSP(Top Safety Pick)를 따내면서 우수성을 입증했다.
이번 성과는 연식변경으로 중복 집계된 차량을 제외하면 폭스바겐을 제치고 사실상 1위라는 게 현대차그룹의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