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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고은을 발탁한 정지우 감독은 왜 '강해림'을 선택했나

조명현 기자 ㅣ midol13@chosun.com
등록 2022.12.07 17:40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해당 인터뷰에는 '썸바디'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습니다.

'썸바디' 속 김섬은 그 자체로 오묘하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김섬은 가장 뜨거운 데이팅 앱 '썸바디'를 개발한다. 어떤 의미에서 섬은 그 지점과 맞닿아있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다가도, 순간 속내를 짐작도 하기 어려울 정도의 서늘함을 보여준다. 해맑음과 서늘함,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 차갑고, 동시에 가장 뜨거운 김섬. 어떻게 동과 서를, 남과 북을 표정의 한 끗 차이로 이뤄낼까. 강해림을 만나기 전 그에게 가장 궁금한 점이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썸바디'는 데이팅 앱을 이용해 살인을 저지르는 윤오(김영광)에게 다가가는 세 친구 김섬(강해림), 목원(김용지), 기은(김수연)의 마음을 담은 작품이다. 김섬은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이다. 그래서 컴퓨터와 대화하는 것이 더 편하다. 그런데 자신을 이해하는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났다. 섬에게 연쇄살인범 윤오는 "이제야 나랑 완전히 똑같은 사람"이었다.

정지우 감독은 강해림을 오디션으로 발탁했다. 무려 600:1의 경쟁률이었다. 오디션으로 발탁된 뒤에도 한 번에 합격이라고 하지 않았다. 정지우 감독은 오랜 시간 강해림과 대화하며 캐스팅을 확정 지었다. 그 시간 때문인지 정지우 감독은 강해림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영화 '은교'를 통해 김고은을 발탁하기도 했던 정지우 감독은 강해림에 대해 "고유한 것을 가진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가 연기를 하지 않는 시간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졌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정지우 감독과 강해림은 어떤 시간을 보낸 걸까.


"오디션 때는 자유연기를 보여드렸었어요. 그다음에는 카메라 감독님, 스태프 앞에서 자유연기를 보여드렸고요. 자유연기는 '버닝'에서 전종서 선배님께서 하신 대사를 선보였어요. 그리고 '(아는 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 속 한예리 선배님 대사도 했었고요. 그 외에도 제가 살아온 이야기나, 인생 이야기 같은 것들을 계속했어요."

"제가 쓴 소설, 그림 같은 것도 감독님께 보여드렸고요. 평소 취미에 관해서 이야기를 했어요. 작품에 대한 접근이라기보다,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는데요. 정지우 감독님께서 나중에 '섬의 대사를 직접 써보면 어떻겠니'라고 말씀도 하셨어요. 써서 보내드렸는데, 그 대사가 실제 작품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굉장히 좋아해 주셨어요."

시리즈 '썸바디' 스틸컷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김섬은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인물이었다. 독특한 설정인 만큼 고민도 깊었다. 김섬의 헤어스타일을 결정하기 위해 수많은 가발을 써보기도 했다.

"제가 원래 숏컷에 욕심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캐릭터에는 아무래도 긴 머리가 어울리는 경우가 많아서 못 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숏컷 헤어스타일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적극적으로 주장했는데, 감독님께서도 좋아해 주셔서 숏컷을 하게 됐어요. 섬이는 염색을 하는 것과 거리가 있을 것 같았어요. 왜냐하면, 뿌리가 자라잖아요. 그래서 머리도 검정색. 메이크업하는 친구가 아니라,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았고요, 손톱도 항상 짧게 유지를 했었어요."

"준비하면서 아스퍼거 증후군에 대해서 공부했거든요. 인터뷰 영상을 보기도 했고요. 그 증후군을 가진 분들이 사회화되기 위해 굉장히 오랜 시간 노력하는 경우가 많대요. 그래서 별로 다르지 않아요. '아스퍼거 증후군'이라서 말투를 이렇게 해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 같았어요. 그냥 '섬이 느끼는 대로 편하게 이야기해보자'라고 감독님과 대화하며 편하게 얘기한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강해림은 스스로 '섬'과 자신이 닮아있다고 했다. 그래서 섬의 과거부터 현재까지를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자기 모습 속에서 '섬'을 찾았고, '섬'의 모습을 찾는 과정에서 과거의 '강해림'을 치유하기도 했다.

"섬의 어린 시절 모습이 '썸바디'의 첫 촬영쯤이었어요. 그때 현장에서 아기 섬이도 만나고, 어머니도 만났어요. 섬이의 전사는 고등학교 때 '썸원'을 개발한 이야기 등 학창 시절 부분이 조금 나오잖아요. 실제 저랑 섬이랑 비슷한 성향이 많아서, 제가 겪었던 불편한 일들이나,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일들을 섬이도 겪어왔을 거라 생각했어요."

"제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 모습을 숨겨야 하고, 감추어야 했던 것들에 대해 잘 몰랐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주변 사람들이나 어른들이 '이렇게 해야 해'라고 이야기해준 면이 있었는데, 그런 것들을 떠올렸어요. 예전에는 제가 무조건 잘못됐다고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남들은 잘하는데, 나는 그렇게 못할까'라는 소외된 감정도 많이 느꼈는데요. '썸바디'를 하면서 달라졌어요. 저라는 사람 자체로 '고유하다'라는 말도 해주시고요. 덕분에 자신감도 많이 생긴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정지우 감독은 강해림을 '김섬'으로 담아낸 비결에 대해 "최대한 흔들지 않고, 기다려주는 것"을 이야기했다. 고유한 강해림만의 것이 '김섬'으로 담기길 바랐다. 강해림 역시 정지우 감독에 대해 "한 번도 '이렇게 해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어요"라고 이야기한다.

"거의 다 제가 하는 행동들을 좋아해 주셨어요. 영화와 방향성이 안 맞는 지점이 생기면, 디렉팅하시기보다 현장으로 들어오세요. 제 앞에 앉으셔서 '이런 기억을 떠올려보세요'라는 말 등으로 제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끌어내세요. '이렇게 해'라고 하셨다면, 저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데 감독님께서 말씀해주시니, 최면에 걸린 것처럼 하게 되는 거예요. 감독님만의 고유한 세계가 저와 비슷하게 연결이 되어있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래서 너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노출에 대한 부담감도 있었다. 강해림은 '썸바디'의 오디션에 참여하면서부터 노출에 대한 것을 알고 있었다. 정지우 감독은 촬영 전, 노출 장면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오랜 시간을 들여 설명했다.

"오디션을 볼 때부터, 사전에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노출이 있는 드라마'라는 것에 평소에도 부담감은 없었어요. 저는 괜찮아요. 섬이가 어떤 사람이고, 이 드라마에서 노출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다 설명해주셨거든요. 그래도 사람이다 보니, 막상 촬영 전날에는 조금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워낙 환경 조성을 잘 해주셔서 잘 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꼭 노출씬 말고도 윤오 앞에서 욕을 하는 장면이나, 자위 장면 등도 감독님과 오랜 시간 이야기했어요. 잘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시리즈 '썸바디' 스틸컷 속 강해림·김영광 / 사진 : 넷플릭스 제공

누구보다 '김섬'이었던, 강해림에게 '썸바디'의 결말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무엇보다 김섬이 윤오(김영광)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으로 생각하고 연기에 임한 건지 궁금했다.

"저는 사랑했을 것 같아요. 확실한 건 이 세상에서 윤오를 없어지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윤오는 섬의 인생 최대의 오류였거든요. 그래서 죽인 것 같아요. 제 개인적인 생각에는 약간의 소유욕도 있었던 것 같아요. 윤오가 계속 살인을 저지를 거라는 걸 섬은 알고 있었거든요. 그걸 막기 위함도 있고, 죽음으로 윤오를 온전히 소유하려는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깊숙하게 '썸바디'의 마지막 장면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섬은 윤오의 눈부터 안 보이게 한 뒤,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는 윤오가 섬을 위해 만들어 놓은 공간에서 밖으로 나와 부풀려 입은 옷을 벗어 버리고, 비닐 장갑을 벗어 윤오를 죽인 칼을 감싼 뒤 한동안 멀리 바라보며 한숨을 내쉰다. 눈물을 흘릴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옅은 흐느끼는 소리를 내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는다.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섬이 죽인 걸 모르게 하기 위해, 눈부터 안 보이게 했다고요. 윤오는 섬과 화상 채팅을 하면서 죽었으니까, 제가 죽인 걸 모를 거예요. 그런 뜻이 맞는 것 같아요. 윤오를 죽이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고민이 많았어요. 실제로 김영광 선배님 눈 쪽에 특수장치가 다 되어 있었어요. 제가 실수하면, 선배님 얼굴도 다치고 촬영도 힘들어지니까, 진짜 긴장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한 번에 갔어요."

"윤오를 죽인 후, 섬의 모습을 찍을 때도 '이렇게 해라'라고 말씀하시진 않으셨어요. 그 장면이 실제로 섬이 윤오를 죽인 후에 찍은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저도 모르게 그런 표정이 나온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강해림은 사실 '미스코리아 부산·울산 진' 출신이다. 미스코리아 대회가 끝나고 나서 '배우' 제안받았고, 그렇게 연기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전에는 배울 기회도 없었고, 배우라는 직업을 생각하지도 않았었다.

"처음에는 마냥 어려웠어요. 너무 많은 사람을 앞에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웠고요. 그런데 재미있었던 건 사람들이었어요. 사람에 대해서 연구해야 하는 직업이거든요. 심리 같은 것을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사실 배우는 계속 선택받아야 일을 할 수 있는 직업이거든요. 그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힘든 걸 딱히 이겨내지는 못했어요. 많이 힘들었는데, 어떻게든 살아진 것 같아요. '인생은 원래 힘든 거다'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썸바디'를 하면서 진짜 많이 배웠어요. 정지우 감독님께서는 직접 각색도 하시고, 각본도 쓰시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작품 안으로 파고들고,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지 등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삶의 단면이 아닌, 한 인물의 어릴 때부터 지나온 과정, 평소 하는 생각, 이 사람이 이 상황에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 등을 떠올리다 보면 조금씩 그 사람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다가가는 것을 '썸바디'를 통해 배운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강해림과 이야기하면서, 자꾸만 '김섬'이 보였다. 그만큼 '김섬'과 강해림은 가까웠다. 정지우 감독이 600:1의 경쟁률에서 '강해림'을 선택한 것은 아마도 '김섬 그 자체'인 강해림의 고유한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정지우 감독은 '김섬을 넘어서야 하는 과제'를 강해림이 안게 됐다며 그 모습에 기대감을 내비쳤다. 강해림은 정지우 감독과 영화 '해피엔드' 같은 로맨스에서 재회하길 꿈꾼다고 했다. 그리고 하고 싶은 캐릭터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였다.

"꿈꾸는 건 공포물이에요. 주변 분들은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많이 추천해주시는데요. 저는 공포물을 하고 싶어요. 캐릭터로 꼽자면, '랑종'에서 밍(나릴야 군몽콘켓) 역이요. 그 배우 너무 멋있었어요. 제가 무속, 토속신앙도 좋아하거든요. 나홍진 감독님과도 만나 뵙고 싶어요."

'썸바디'를 통해 배우로서 본격적인 큰 발을 내디딘 강해림은 어떤 배우를 꿈꾸고 있을까.

"저는 '나이를 먹어서도 계속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가 꿈이었거든요. 그런데 '썸바디'를 하면서 연기에 대한 세계관이 다 바뀐 것 같아요. '배우라면 단순히 기술적으로 연기를 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정지우 감독님께 배웠던 것들을 빨리 사용해보고 싶어요.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면, 그 캐릭터의 삶에 대해서 되게 고민을 많이 해볼 것 같아요."

반짝이는 강해림의 눈에 신뢰가 더해진다. '김섬'을 뛰어넘는 '강해림'을 만나게 될 기대감과 함께 말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썸바디'에서 '김섬' 역을 맡은 배우 강해림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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