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의 이커머스 사업이 수년 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전략 부재로 인해 '양강'인 쿠팡과 네이버의 점유율 근처에도 따라가지 못하는데다 3위 경쟁조차 SSG닷컴과 11번가에 밀려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신세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롯데그룹의 외부 출신 '용병술'의 실패라는 지적과 함께 오프라인 시장에서 신세계와 양강구도를 형성했지만 갈수록 중요시되는 이커머스 사업을 접어야 적자를 줄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을 정도다.
롯데는 롯데온의 전신인 '롯데닷컴'으로 2000년 국내 첫 온라인 쇼핑몰로 신호탄을 쐈다. 신동빈 회장(당시 부회장)이 대표이사 직함까지 달며 출범에 공을 들였지만 만년 꼴지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롯데온'에 대한 내부감사까지 벌이며 재기에 나섰지만 올 3분기까지의 실적만 봐도 적자를 키우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가 CJ대한통운 등 물류기업들과 손잡고 도착보장 서비스를 오는 14일 내놓는다. 그간 약점으로 꼽혀왔던 배송 경쟁력을 크게 보완하게 된 것. '로켓배송' 서비스 시작 후 8년 만에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쿠팡과의 양강구도는 더욱 굳혀질 전망이다.
쿠팡의 로켓배송, SSG닷컴의 새벽배송에 이어 네이버와 11번가가 각각 '네이버 도착보장', '슈팅배송' 등을 내놓으며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고 있다. 반면 롯데온은 돌연 새벽배송을 철수하며 시장에서 도태되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시장 지배력으로 이어진다.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인 모바일인덱스가 조사한 지난 7월 기준 쿠팡과 네이버의 월간활성사용자수(MAU)는 각각 2766만, 2000만 수준으로 업계를 장악하고 있다. 이마트 자회사인 SSG닷컴·G마켓 합산 990만, 11번가 942만, 롯데온 168만으로 꼴지다.
점유율로 환산시 1위 쿠팡은 40.2%, 2위 네이버는 29.1%다. 이어 SSG(14.4%)과 11번가(13.7%)가 3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때 롯데온은 점유율은 2.4%로 이머커스 업계에서 철수해야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근거이기도 하다.
이는 실적으로도 드러난다. 롯데온의 올 3분기 누적 손실은 1323억 원, 총거래액은 757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 줄었다. 같은 기간 국내 온라인쇼핑 상품 거래액이 7.5% 성장하는 동안 롯데온은 역성장한 것이다.
반면 쿠팡은 올해 3분기 매출은 51억133만 달러(6조7817억 원)로 전년 동기보다 27%나 증가했다. 또 쿠팡은 로켓배송을 시작한 지 8년여 만에 분기기준 영업이익 7742만 달러(1027억 원)를 달성하는 쾌거를 일궈냈다.
견고한 매출을 이루는 데 필요한 '충성고객'도 판이하게 차이난다. 올해 상반기 기준 쿠팡 유료멤버십(월 4990원) 회원 수는 약 900만 명이다. 이어 네이버 유료멤버십 회원 수는 700만 명, SSG의 스마일클럽 등도 300만 명가량이다.
반면 롯데는 유료멤버십 롯데오너스를 운영한다는 점도 소비자들은 잘 모르고 있을 정도로 이커머스 전략에 실패했단 평가다.
지난 6월 오픈서베이에 따르면 롯데오너스를 인지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 응답자의 18.3%뿐이었다. 실제로 이용하고 있다는 응답자는 이보다 더욱 줄어 전체의 3.5%에 불과했다.
쿠팡의 유료멤버십 로켓와우와 네이버의 유료멤버십 네이버플러스의 이용률이 각각 39.9%, 26.7%로 조사된 것과 대비된다.
그간 롯데는 파격적인 혜택으로 고객 유인에 나섰지만 낮은 인지도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일례로 롯데오너스의 연회비는 2만 원으로 롯데포인트 2만 점을 적립해준다. 이때 금액 제한이 없는 무료배송 쿠폰이 12개가량 지급되는데, 생수 하나만 사도 배송비가 '0원'이다. 생수 하나를 위해 배송인력을 투입하는데, 매출은 2000원밖에 안나온다. 더군다나 배송비 3000원은 회사의 비용으로 쓰이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온이 이런 마케팅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고 매분기, 매해 적자만 늘어나고 있다"며 "처음부터 시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이라고 전했다.
반면 라이벌인 정용진호가 이끄는 신세계는 마케팅의 역사를 새로 쓸 정도로 순항하고 있다. 역사도 롯데에 비교할 바 아닌 야구 조차 후발주자이지만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거두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SSG닷컴도 반사이익을 얻고 있다. 지난해 SSG닷컴 매출 비중의 42%가 야구단에서 나왔다. 롯데가 야구마케팅은 물론 본업인 유통에서 모두 '패'했다는 사실은 '전략부재'가 얼마나 중요한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롯데그룹 정기인사를 앞두고 외부 출신 해결사로 투입됐던 유통 수장인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과 나영호 롯데온 사장의 거취도 주목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이베이코리아 전략사업본부장 출신인 나 대표는 신동빈 회장이 2021년 롯데온을 키우기 위해 영입했다. 하지만 지난 2년 나 대표 체제에서 롯데온이 후퇴하고 있어 신 회장의 인재 기용술 마저 실패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나 대표 취임 후 롯데온은 줄곧 적자를 냈다. ▲2021년 2분기 322억 원(이하 영업손실)▲2021년 3분기 462억 원 ▲2021년 4분기 285억 원 ▲2022년 1분기 453억 원▲2022년 2분기 945억 원 ▲2022년 3분기 378억 원 등이다.
김상현 부회장은 올 상반기 보수로 6억 원을 타갈 만큼 신 회장이 롯데쇼핑에 거는 기대가 컸다. 이는 역대 전임자들이 보수보다 억대로 많은 금액이다. 김 부회장은 '오카도'라는 해외 플랫폼을 이식해가며 이머커스 사업을 살리려 하고 있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다. 때 늦게 뒷 북을 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나영호 롯데온 대표 부임 후 영업손실 추이/수치=롯데그룹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