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그동안에는 이학주라는 배우가 해석하는 방향대로만 캐릭터를 해석해왔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런 생각을 많이 안 하게 됐어요. 캐릭터 자체에 대한 가능성을 더 열고, 두려워 말고 도전해 보자는 생각에 이르게 된 게 바로 '형사록' 덕이에요."
순박한 미소와 거친 눈빛. 이학주는 그런 반전 매력을 가진 배우다. '부부의 세계'를 통해 얼굴을 알린 그는 이후 로코물 '야식남녀', '사생활', 장르물 '마이네임', 코미디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대중의 눈에 띈 건 몇 해 되지 않았지만, 이학주는 벌써 데뷔 10년 차 배우다. 2012년 단편 영화로 시작해 열 해가 지나도록 쉼 없이 달려왔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상복도 있었다. '부부의 세계'로 대한민국 문화연예대상서 우수연기상을 받았고, 올해엔 '제1회 청룡시리즈 어워즈'에서 남자 조연상을 수상했다.
대표작을 늘려가고 있는 그는 "지금의 저를 가장 따끈따끈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이 '형사록'이다"라고 강조했다.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로 공개된 '형사록'은 한 통의 전화와 함께 동료를 죽인 살인 용의자가 된 형사가 정체불명의 협박범 '친구'를 잡기 위해 자신의 과거를 쫓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극 중 이학주는 '택록'(이성민)을 동경해 금오경찰서로 온 낙하산 신입 형사 '손경찬'을 맡았다.
이전에도 형사 캐릭터를 해본 적이 있었지만, 이번 작품에선 결이 달랐다. 현장직에 어울리지 않는 고급 의류에, 고급차를 타고 홀로 고층 아파트에 사는 도련님. 우리가 기존에 봐온 형사와는 달랐다. 그렇지만 열정만큼은 누구보다 순수한 인물이 바로 경찬이다. 존경하는 인물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배우려는 의지가 있는 열정맨이다.
분량이 많진 않았지만, 작품의 핵심 인물인 '친구'로 의심받는 순간도 있다. 이학주는 대본을 읽으면서도 누가 '친구'일까 하는 긴장감, 그 몰입감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38사기동대'에서 호흡을 맞췄던 한동화 감독이 다시 불러준 작품이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대본을 읽었을 때부터 정말 재밌었어요. 아무래도 누군지 알 수가 없는 '친구'가 짜놓은 판을 극복하는 이야기니까 그 자체가 너무 흥미로웠어요. 한 부 끝낼 때마다 너무 궁금해서 앉은 자리에 다 읽을 수밖에 없었어요."
"우선 '38사기동대' 한동화 감독님이 제안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궁금했던 선배님들 옆에서 연기하면서 어떻게 하시나 보고 싶기도 했어요."
작품 속에 살짝 빈틈이 있는 신입의 모습을 보여준 이학주. 실제로 만난 이학주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신입 같은 모습을 보여주겠다? 그러려는 부분은 없었어요. 제 자체가 능숙하기보다는 좀 신입 같은 면이 있거든요.(웃음) 열의는 있는데 잘 못하는 그런 면이 있어서 '경찬'을 연기하는 게 어렵지 않았어요."
"연기를 하면서 '경찬'이 '친구'로 의심받는 순간이 있잖아요. 너무 제가 스스로 의심을 사려고 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어요. 역으로 너무 그러다 보니 ('친구'라는) 용의선상에서 빠지게 될 수도 있어서 적절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봤을 때는 부족하다더라고요.(웃음) '더 생각해도 돼. 걱정하지 마라'라고 조언해 줬어요."
이번 작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또 있었다. 평소 존경하던 선배들과 호흡을 맞출 수 있는 기회였다. 이학주는 이성민과 진구와의 현장을 언급했다.
"이성민 선배님의 그런 순간적인 집중력이 정말 놀라웠어요. 저희한테 농담하시다가도 폭발적이고 몰입적이게 연기를 하시더라고요. '어떻게 저렇게 한순간에 팍 (감정을) 터트리시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고민이 많았을 때 선배님이 해주신 말씀이 오래 기억에 남아요.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다음 신을 보기 때문에 이 장면에서 해줘야 할 것을 (배우가) 제대로 해줘야 한다. 그런 목표를 수행한다는 걸 목표로 생각하고 그다음에 캐릭터를 생각해야한다'고 해주셨다. 선후 관계를 정확히 봐야 한다고 말씀해 주신 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진구 선배님은 되게 유하세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저한테 와서는 '학주는 이렇게 해석했구나. 되게 좋은데' 해주세요. 또 되게 긴 대사도 유려하게, 한 번도 안 틀리고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놀랐어요. 비법을 여쭤니 '몇달 전부터 외웠지' 하시더라고요. 선배님처럼 하려면 그렇게 외워야하는 구나 싶었어요. 선배님들이 엄청난 준비성을 보여주셨고,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사랑 받고 연기를 하시는구나 깨달았죠."
올해는 이학주에게 겹경사가 많았던 해다. '제1회 청룡시리즈어워즈'에서 코미디 도전작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하반기에는 디즈니+ '형사록', 영화 '헤어질 결심'에 출연하며 글로벌 관객의 눈도장을 찍었다. 게다가 유부남까지 됐다.
"2022년은 너무 행복한 해에요. 좋은 일이 많아서 아마 나중에도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내와는 예전에 작업을 하다가 만났어요. 감독 준비를 하는 친구거든요. 제가 출연한 단편에 아내가 연출을 맡았었죠. 아내도 작품을 재밌게 봤어요. 제가 연기한 것, 고민 이런 부분에 조언을 많이 구했어요.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니까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서 연기하라'고 하더라고요. 잡은 방향이 잘 가고 있으니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항상 용기를 주는 사람이에요."
데뷔 10년 차 이학주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는 걸 몸소 느낀다고 했다. 많은 작품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시야가 넓어졌고, 그 영향이 연기로 표현됐다.
"연기를 하면서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 보게 되는 요즘이에요. 제가 내향적이기도 한데 저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경향도 있어서 남들을 잘 이해 못 했거든요. 이제서야 어느 정도 남을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캐릭터를 대할 때도 그 인생을 생각해 보려 하고 제 그릇 안에서는 최대한 넓게 보려고 하죠."
"원래는 되게 반짝반짝한 배우가 되고 싶었어요.(웃음) 요즘 느끼는 건, 일단 오랫동안 연기를 해서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걸 알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거예요. 배우라는 직업은 정말로 0점과 10점을 오가는 직업인 것 같아요. 하루는 스스로에게 실망해 다 때려 치우고 싶고, 또 하루는 만족스럽기도 하고 날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기분인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