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서 기우 역을 맡은 배우 정일우 / 사진 : 9아토엔터테인먼트·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파격적'이라는 단어는 '일정한 격식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속의 정일우를 표현하기에 가장 정확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일우는 지난 2006년 MBC 드라마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선생님을 짝사랑하는 풍파고 얼짱 윤호 역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재벌 2세, 꽃미남, 꽃선비 등의 깔끔한 옷을 입었다.
배우로서 고민은 이어졌다. 새로운 옷을 입고, 대중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군 제대 후, 쉼 없이 달려왔다. 그 길에서 영화 '고속도로 가족'을 만났다. 정일우는 시나리오를 보자마자 "하겠다"라고 했고, 이상문 감독은 "기우가 선하고 맑은 사람이길 바랐다"라고 그의 캐스팅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게 정일우는 휴게소에서 손님에게 2만원을 빌리며 살아가는 '고속도로 가족' 속 가장 기우가 됐다. 기우는 과거의 한 사건으로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을 가지고 노숙자로 살아가는 인물로 예전 '정일우'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리고 '파격적 정일우'는 호평을 이끌어냈다.
"얼떨떨해요. 아직 개봉 전이라 관객들이 어떻게 봐주실지가 궁금해요. 제가 주변 지인, 관계자분께 '어떻게 보셨냐'라고 물어보고 있거든요. 보신 분들마다 '고속도로 가족'을 본 관점이 다 다르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재미있어요. 또 관객마다 다양하게 결말을 생각해주시는 것도 새롭고요. 그런 시간을 잘 보내고 있습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 사진 : 영화사설렘,고고스튜디오/CJ CGV(주)
기우는 한 사건을 계기로 가족과 헤어진 뒤, 정신 질환을 겪게 된다. 슈퍼에서 팔고 있는 홍시,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 등을 마구 입에 집어넣거나, 진흙을 얼굴에 발라 자신을 감추는 모습 등은 충격적일 정도다. '고속도로 가족' 시나리오를 처음 읽고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했던 이유다.
"'이 시나리오가 나에게 와서 행운이다!' 배우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잘못하면 두 번 다시 영화를 못 찍겠다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감독님과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만났어요. 이야기하고, 자료도 찾고,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자문도 구했고요. 또, 지숙(김슬기)이랑 아이들과도 자주 만나서 친분을 쌓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기우가 되어있더라고요. 이를 위해 감독님도 저도 서로를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과정이 있었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납득이 되어야 연기를 할 수 있더라고요. 어떤 '척'을 하는 건 연기를 할 때 절대 하면 안되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서요."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 사진 : 영화사설렘,고고스튜디오/CJ CGV(주)
정일우가 설득한 부분은 '아빠'라는 지점이었다. 초기 시나리오에는 휴게소에서 타인에게 2만원을 빌릴 때, 아이들도 함께 데리고 가는 거였다. 하지만, 정일우는 기우가 '아빠'이길 바랬다. 그렇게 이상문 감독을 설득했고, 영화 속에서는 기우가 먼저 타인에게 다가가 부탁을 꺼내면, 이를 지켜보던 아이들이 '아빠가 2만원을 구해와서 맛있는 걸 먹고 싶은 마음'에서 다가오는 걸로 바뀌었다.
"기우가 빌런처럼은 안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요. 그 부분에서 감독님과 치열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캐릭터를 만든 것 같아요. 저는 가족을 향한 기우의 행동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와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면서, 사람으로부터 가족을 보호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지숙(김슬기)과 만나서도 '저 사람들을 어떻게 믿냐, 사람이 얼마나 무서운데'라고 하잖아요. 기우의 행동에 이유를 만드는 것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영화 '고속도로 가족' 스틸컷 / 사진 : 영화사설렘,고고스튜디오/CJ CGV(주)
정일우의 고민은 사실적으로 담겼다. 특히 기우가 정신질환을 겪게 되며 변화했을 때, 중얼거리는 말들은 그가 얼마나 기우에게 몰입하고 있었는지를 입증한다. 시나리오에 있는 대사 그대로를 외워서 입에 옮긴 것이 아니다. 정일우가 생각한 기우의 상황이 대사를 완성하게 했다.
"기우 입장으로 생각했어요. '내가 2만원만 달라고 했는데, 5만원을 더 줘놓고. 내가 뭘 했다고 경찰에 신고하고' 이런 말들이요. 사실 화장실에서 기우가 세수를 하다가 명함을 찾는 장면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동안 돈을 빌렸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다 갖고 있거든요. 기우는 언젠가는 빌린 돈을 갚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는 나중에 돈을 갚을 건데,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냐'라는 분노가 담기면서 대사를 하게 된 거죠."
"정신적으로 아프신 분들이 어떤 식으로 그 아픔이 발현되는지를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었어요. 굉장히 다양한 형태의 질병이 있더라고요. 발작을 일으킬 때 확 분노가 치닫고, 이런 것들이 굉장히 다양해서 인터뷰를 많이 했었어요. 환자도 보통 안정감을 느끼면 굉장히 밝아진대요. 그래서 기우가 가족과 있을 때는 세상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게 하려고 했어요. 그리고 돈을 빌릴 때, 예상 못한 질문을 받으면 배도 긁고 이런 장치들을 조금씩 넣어놨어요. 그런 부분들을 발전시켜 쌓아가려고 했어요."
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서 기우 역을 맡은 배우 정일우 / 사진 : 9아토엔터테인먼트·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사람을 피해 달리고, 넘어져서 구르고, 누군가에게 맞고, 정일우는 그것을 모두 맨몸으로 해냈다. 과거 인터뷰에서 망막 손상이 오기도 했다고 했던 그는 "촬영하다가 합이 안 맞으면 그럴 수도 있어서요. 저의 불찰이기도 하고요. 이제는 잘 회복해서 괜찮습니다"라고 답하며 "육체적으로 힘든 건 별로 개의치 않는 편"이라고 밝혔다.
"그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해야 감정들이 나오기 편할 것 같았어요. 진흙을 얼굴에 바르는 장면도 9분 정도를 롱테이크(컷을 끊지 않고 촬영을 이어가는 방식)로 찍었어요. 오랜 시간 감정을 쭉 끌고 가는데 그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연기할 맛이 난다고 해야 할까요."
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서 기우 역을 맡은 배우 정일우 / 사진 : 9아토엔터테인먼트·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정일우는 2006년 '거침없이 하이킥'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36살, 현재가 될 때까지 달려왔다. 드라마도 했고, 예능도 하며 다양한 도전을 이어왔다. 그런 그는 "저는 모든 작품에서 다 열심히 임하긴 했어요. 그런데 이제 조금씩 알아주시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고속도로 가족' 속 기우는 굉장히 극으로 치닫는 캐릭터이지만, 앞으로 찌질한 역할, 바보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할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한다.
앞으로의 바람은 '배우 정일우'의 시작을 물은 이유였다. "이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해요"라고 이야기하는 그였기 때문이다.
"당시에 오디션을 봐서 윤호 역을 맡게 됐는데요. 굉장히 운이 좋았죠. 그때 400:1 경쟁률인가 그랬거든요. 운 좋게 작품을 만났지만, 20대 때 나름대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그러면서도 지금 생각이 드는 건 20대 때 더 많이 아프고 다쳐봐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그래야 더 단단한 30대를 맞았을 것 같아서요. 그런 걸 연기하며 푸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더 힘든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은 갈증이 있기도 해요."
영화 '고속도로 가족'에서 기우 역을 맡은 배우 정일우 / 사진 : 9아토엔터테인먼트·제이원인터내셔널컴퍼니
"끼 많은 배우들이 많이 있는데, 그런 배우들에 비하면 저는 정말 끼가 없어요. 소심하고, 말도 잘하지 못하는 애였어요. 그래서 그걸 깨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요. 더욱더 작품에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 마음은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진심으로 하지 않으면 티가 나거든요. 여전히 연기에 간절함이 남아있습니다."
그렇다면, 정일우가 생각하는 '정일우'는 어떤 모습일까.
"저도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저도 나름대로 관찰을 많이 하며 살아가는 사람인데요. 일단 생각한 건 '겁이 많다'는 점? 어릴 때부터 성격이 좀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조심성도 많았는데요. 그게 과감해지는 순간이 연기할 때인 것 같아요. 저도 저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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