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성모병원 평생건강증진센터 소화기내과 유승희
과학과 의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질병의 치료뿐 아니라 예방과 조기 진단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 영국, 일본등의 선진국은 암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기 위해 암 검진 사업을 실시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나이, 성별에 따라 체계적으로 6종류의 암을 국가에서 무료로 관리하고 있다. 좀더 정밀하고 전문적인 검사를 위한 개인검진센터가 세워지고, 직장 검진이 보편화되면서 젊은이들도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새로운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은 듯 하다.
대장암의 경우 국내 암 발생률 3위권 이내를 계속 지키고 있기에 국가암검진 기준 만 50세 이후 매년 분변 검사와 2차적인 대장내시경 검사가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4~50대뿐 아니라 2~30대에서도 대장내시경을 받는 경우가 비교적 흔한데, 가족력, 개인적인 건강상태에 따라 선택하는 경우도 많고, 직장 검진 등으로 특별한 이유는 없지만 검사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렇게 대중화된 검사임에도, 검사 준비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남녀노소, 사회적 지위를 막론하고 대장 전처치, 대장 정결제 복용 문제는 피해갈 수가 없다. 아무리 의학의 눈부신 발전이 있어도 장 세척의 과정은 혁신적인 변화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이상적인 장정결제는 대장 점막의 변화없이 대변을 신속하게 배출시킬 수 있어야 하고, 수검자의 불편함을 최소화 하면서 체액이나 전해질 등의 이동이 없이 안전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특징을 가지는 장정결제는 아직까지는 없는듯 하다. 대장 정결제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지 않은데, 1980년대 이전까지는 대량의 식염수로 장 세척을 했다고 하며, 몸에 흡수된 다량의 소금기로 각종 부작용이 유발되었다고 한다. 이후 몸에 흡수되지 않는 용액인 PEG(polyethylene glycol)이 1992년 미국 FDA 승인을 받아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도 가장 기본적인 대장 정결제로 쓰이고 있다. 그 종류를 간단하게 확인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4L의 대용량 PEG 용법이다. 일단 맛이 느끼하고 역하며, 용량이 많아 복부팽만감, 구역, 구토, 복통 등으로 비위가 약한 경우 복용 자체도 쉽지않다. 그래도 중증의 심부전 환자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안전하고 장점막의 변화가 적어 활동성 염증성 장질환 환자들에게 사용되는 가장 오래된 약제이다. 이후 맛을 개선시키고 용량을 줄인 여러 대장 정결제가 개발되었다.
저용량의 PEG 용액과 아스코르빈산(비타민C)을 결합한 제제는, 장 세척 효과와 더불어 맛을 개선시켰다. 1~2L의 약제와 물을 추가로 1L이상 복용한다. 또한, SPMC라 불리는 삼투성 하제와 자극성 하제가 조합된 병합 제제가 있으며, OSS라 일컫는 황산염 제제도 있다. 역시 추가적인 물을 복용해야 하며 총 2.5L~3L의 양을 복용하게 된다. 2019년 국내식약처에서 허가되어 최근 많이 쓰이기 시작한 알약 제제가 바로 정제형으로 만든 OSS제제이다. 알약의 크기는 비교적 큰 편인데, 총 28알을 3L의 물과 함께 2번에 나누어 복용한다. 고약한 맛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나 역시 물은 많이 마셔야 한다.
정리하자면 전통적인 4L PEG제제 이후 다양한 대장 정결제가 출시되었고, 이들의 장 세척 효과는 4L PEG와 견주어 비교적 동일하며, 맛이 개선되고 총 복용량이 2~3L로 줄어 복용 편리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거에 비해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지고 접근성이 높아진 셈이다. 그래도 여전히 복용량이 적지 않으며, 변비나 음식물 제한이 부족할 경우 추가적인 복용이 필요할 수 있으므로 결코 대장 정결제 복용이 수월 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또한 각 약제 마다 차이는 있으나 복통, 심한 탈수로 인한 2차적인 부작용 등의 보고는 다양하게 존재하며, 눈에 띄게 안전성에 있어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약제는 없는듯 하다. 모든 약제는 구역감과 구토로 인해 2차적인 식도 손상, 흡인성 폐렴 등의 위험도가 있다. 심한 탈수가 유발된 경우 전해질 불균형으로 인한 부작용이 증가한다. 특히 기존의 중증의 심부전, 콩팥 질환이 있는 경우 사용하지 못하는 약제도 있으며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복수를 동반한 간 부전, 고령의 전해질 불균형 등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과거 1990년대 사용되던 약제 중에는 적은 용량으로 복용이 간편하여 인기가 있었으나 일부 치명적인 급성 인산 신장병증과 장기 투석을 초래하는 등의 보고가 발견되어 2008년도 사용 금지된 약제도 있었다. 현재 시중에 유통되는 약제들은 대부분 일정한 수준의 안전성이 확보된 것이지만, 인간이 로봇이 아니듯 부작용의 가능성은 항시 존재하며,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즉, 먹는 방법이 조금 간편해 졌다고 부작용도 없을 거라 착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대장 정결이란 행위 자체가 단순히 물로 씻어내는 과정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대량의 설사를 유발하고 역시 대량의 물로 장내 내용물을 배출시키는 화학적, 물리적인 작용인 만큼 다소 침습적인 행위라고 여기는 것이 좋겠다. 사실 90% 이상의 젊고 건강한 사람에게서는 대장 정결제 복용 중의 복통, 구역감 등의 불편감 정도가 문제이지 위중한 건강상의 문제까지 일으키는 경우는 매우 드물어 미리 지나친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노약자, 만성 질환자의 경우 반드시 주의가 필요하다. 주치의와 사전에 충분히 상의 후 검사 가능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며, 임의로 진행하지 않도록 한다. 또한 복통이 지속되고 정상 변을 보지 못하는 장폐색이 의심되는 경우 대량의 대장 정결제 투여는 사태를 더 악화시킬 수 있으므로 반드시 진료를 보고 검사 여부를 결정하여야 한다. 그러나 비 의료인이 이를 사전에 알아채기는 사실 어렵다.
명절 이후에 부모님 검진 예약이 증가하는 현상은 아주 익숙하다. 오랜만에 찾아뵌 연로하신 부모님이 예전같지 않으시고 식사량이 줄고 어딘가 편찮아 보인다. 병원은 좀처럼 다닌 적도 없으시거니와 아픈 증상을 정확히 표현하지도 못하신다. 이런 경우 걱정스러운 마음에 먼저 건강검진을 예약하게 된다. 신속하게 온몸을 뒤져볼 수 있는 의료혜택을 언제든지 누릴 수 있다는 것은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만 가능한 크나큰 혜택이나, 이 신속함이 어떤 경우에는 독이 될 수도 있다. 노인의 경우 통증에 둔감해지거나 뇌신경 문제로 불편함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숨겨진 병이 있거나, 전신상태가 저하되어 탈수를 견딜 수 없는 상태인데 무턱대고 대장 정결제를 먼저 복용한다면, 뜻하지 않게 병을 악화시키거나 건강에 위해를 가하게 되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
특정 병을 의심하는 명백한 증상이 있다면 건강검진보다는 해당 진료과를 찾아가는 것이 현명하다. 가령 심장통증이라면 심장 내과를, 피가래를 뱉는다면 호흡기내과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혈변을 본다면 신속하게 소화기내과에서 대장내시경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불필요한 검사와 진단 지연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이다.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는 대개 검진 센터를 찾게 되는데, 조금 번거롭고 귀찮더라도 안전한 두 단계 과정을 밟기를 권한다. 즉, 대장내시경은 기본 검사결과가 나온 이후로 조금 미루는 것이다. 물론 대장암 진단에 가장 확실하고 중요한 검사는 대장내시경인 것은 분명하다. 금식만으로 가능한 기본 혈액검사와 초음파, 위내시경, x-ray, 필요시 CT 검사 등으로 대부분의 위중한 내과 질환은 1차로 확인이 가능하므로, 대장내시경 검사를 견딜 수 있는 상태인지를 먼저 확인하고, 이상이 없다면 그때 검사를 받는 것이 좋겠다. 고령인 경우에는 건강하신 분들이라도 탈수가 조금이라도 진행된다면 컨디션이 급격히 변할 수 있어 더욱 조심스럽다.
평생 병원 문턱도 밟지않고 살아오신 정정했던 80대 노인이, 기력 저하가 있어 자녀들의 걱정 어린 성화에 못 이겨 생애 첫 검진을 받으러 오신다. 세상의 갖은 힘든 일을 다 겪어 오셔서 그런지 웬만한 고통도 너끈히 참아내시는 지라, 대장 정결제가 힘들어도 성실히 끝까지 복용하고 오셨는데 탈수가 심해 검사는 시작도 못하고 응급실로 실려 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대장 정결제 복용, 노약자들에게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니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