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외계+인'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사진 : 케이퍼필름 제공
*본 인터뷰에는 영화 '외계+인' 1부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저는 포스트잇 감독이죠. 아마 2년 반 동안 고민했던 건, 디테일보다 전체에 대한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1·2부 연작으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고민의 연속이었습니다."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는 여러 가지 맛이 있다. 누군가는 흐름을 꼽고, 누군가는 말맛을 꼽는다. '묻고 더블로 가', '나 이대 나온 여자야' 등의 대사는 여전히 어제 본 영화처럼 생생하게 숨 쉰다. 그래서일까. 최동훈 감독의 신작이 나온다는 말에 모두가 동요했다. 무려 1부와 2부를 동시에 387일 동안이나 촬영한 작품이 나온다니, 기대감이 높아졌다.
'외계+인'은 제목처럼 외계인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오래전부터 외계인은 죄수를 인간의 몸에 가두어왔다. 외계인 죄수는 가둬진 인간의 몸에서 탈옥하기도 하는데, 이를 막기 위해 '가드'(김우빈)는 시간의 문을 넘어 631년 전, 고려 시대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탈옥하려는 외계인 죄수와 그에 맞서는 인간 이안(김태리)와 무륵(류준열), 그리고 신선들(염정아, 조우진)의 모험이 영화 속에 담긴다. '외계+인'의 커다란 틀은 이렇다. 외계인과 사이보그, 그리고 인간과 도사가 함께 공존하는 영화, 최동훈 감독은 어떻게 이런 세계관을 창조하게 된 걸까.
영화 '외계+인'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사진 : 케이퍼필름 제공
Q. 과거 '암살'이 천만관객을 돌파했을 때 "작은 영화를 하고 싶다. 나에게도 변화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다"라고 하셨다. 그사이 제작이 무산된 영화 '도청'이 있긴 했지만, 더 엄청난 세계관을 가진 영화 '외계+인'의 출발선이 궁금해진다.
"'암살'은 '타짜' 끝난 후부터 찍고 싶은 작품이었고요. 상해에서 촬영했고, 규모가 큰 작품이었어요. '도청'은 주로 방안에서 이뤄지는 일이 많았는데, 여러 사정으로 못하게 되고 난 다음에 약간의 번아웃, 조금의 침울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암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이야기를 해보자' 싶었어요. '암살'은 저에게 어느 정도의 리얼리즘 영화였거든요. 거기서 더 멀리 가보자고 해서 이 영화를 하게 됐고요.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다섯 편의 영화를 찍고 난 다음에 '좀 더 편하지 않고 험준한 길로 가보고 싶다, 어쩌면, 체력이 남아있을 때 도전을 해보고 싶다'라고요. 그래서 '저 자신이 정말 보고 싶은 영화가 뭘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서른 살이라면, 신인 감독인데 너무 운이 좋아서 '이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 있다면 어떤 영화 할래?'라고 누가 물어보면 '외계인이라는 미지의 존재와 인간이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라고 생각했죠. 원작이 없으니까 시나리오를 처음부터 상상해서 썼어야 했습니다."
Q. 과거 시나리오를 쓸 때, 포스트잇에 사건을 적어 한 장 한 장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사건의 배치를 고민한다고 했다. '외계+인'은 1·2부로 나뉘어져, 과거와 현재, 그리고 장소가 혼재된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엄청난 포스트잇이 쓰였을 것 같다.
"저는 포스트잇 감독이죠. (웃음) 이 이야기를 구상하고 쓰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플롯을 생각했어요. 보통 다른 감독님께서는 이런 구성을 사용하지 않으시죠. 왜냐면, 영화의 핵심은 뒤에 있기 때문에 관객이 같이 호흡하며 영화를 즐기기에 어려운 구성이었어요. 그런데 '외계+인'을 지금의 모습으로 구성한 이유는 관객들이 '왜 과거와 현재가 교차돼 나올까?', '이 장면과 이 장면이 연관 있어 보이는데?'라고 이유를 궁금해하며 보시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아마 2년 반 동안 디테일보다 전체에 대한 고민이 더 컸던 것 같아요. 1·2부 연작 영화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1부 엔딩에 대한 고민도 있었습니다. 첫 촬영 때부터 약 13개월 동안 스태프들과 계속 이야기했었고 끝까지 고민이 있었어요. 마지막에 음악까지 들어갔을 때, 본능적으로 저 부분에서 끊어야 미스터리를 간직한 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외계+인' 현장스틸컷 / 사진 : CJ ENM,케이퍼필름 제공
Q. 앞서 하나의 대사를 50번씩 고민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어떤 대사였나.
"썬더의 대사가 친절하다고 하시는 분도 계신데요. 썬더가 '외계+인' 세계관을 설명해주는 역할을 해야 했어요. 그런 대사는 30번 정도 고쳐 썼고요. 어떤 대사는 도무지 어떻게 쓸지 몰라 50번 고쳐 쓰기도 했습니다. 외계 로봇이 문도석(소지섭)에게 찾아오는 장면의 대사인데요. 첫 마디가 '문도석 어디 있냐' 였는데, 정말 수십 개의 대사를 썼어요. '당신이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라고도 썼고, '나는 감옥으로 보내진 열쇠다'라는 대사도 있었어요. 그런데 영화는 빠르게 흘러가고, 관객에게 어느 정도의 세계관의 인식이 필요했기 때문에 최종적으로 '문도석, 너 안에 위대한 설계자가 갇혀있다'라고 썼어요. 가장 많이 고쳐 쓴 대사는 썬더가 '하바'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었는데요. 그 장면은 김대명 배우가 녹음을 한 후에도 고쳐 써서 다시 녹음하기까지 했어요."
Q. 캐릭터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면, 무륵(류준열)은 "무릇 도술이라 함은"으로 시작하는 대사도 그렇고, 여러모로 '전우치'(강동원)를 떠올리게 했다.
"제가 찍은 영화 중에서 많은 캐릭터가 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가 뭐야?'라고 물으면 '전우치'라고 생각해요. 가장 들떠있는 캐릭터이고, 그런 캐릭터를 영화에서 보여준다는 게 모험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강동원 씨가 잘해줘서 지금의 좋은 작품이 되었는데요. '도사와 외계인을 결합한 영화를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며 무륵을 쓰는 순간, 전우치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무릇'으로 시작하는 대사를 쓸 때 무릇 도술이란이라면서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하는데 무륵에겐 비가 안 내려요. 그러면서 무륵과 전우치는 결별을 하게 됩니다. 전우치에게는 스승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무륵에게는 스승이 없습니다. 혼자서 남의 도술을 흉내 내며 자신의 능력치를 키워가죠."
영화 '외계+인' 현장스틸컷 / 사진 : CJ ENM,케이퍼필름 제공
Q. 무륵의 이야기를 좀 더 하면, '물안개'의 이미지가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다. 김태리 역시 명장면으로 '물안개' 장면을 꼽기도 했다. 어떤 의도가 있었나.
"제가 '외계+인'에서 가장 잘 찍어야 한다고 생각한 부분이 '물안개 장면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영화는 프롤로그를 포함해 총8개의 시퀀스로 이뤄졌는데요. 7~8번째 시퀀스를 이어주는 게 어린 무륵과 성인 무륵이거든요. 그 장면을 통해 시간이 환기되고 '아 저랬구나, 저것이 10년 전 일이구나, 현재는 고려시대의 서사적 과거구나'라는 걸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이걸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몽환적인 장면처럼 비치길 바랐어요. 무륵은 죽음과 가까운 상처를 입고 버려졌는데, 관을 뚫고 일어나죠. 한 번도 '물안개' 잡기를 성공한 적이 없는데, 그때 물안개를 잡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륵이 '한 단계 더 성장했구나'라고 보여주고 싶었고, 그렇게 마지막 시퀀스로 나아가고 싶었기에 잘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Q. 앞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륵과 전우치는 결별을 하게됐지만, 연결지점이 있다. 바로 장영규 음악 감독이다. 그는 '전우치'의 음악감독이었고, '범 내려온다'로 대중의 큰 사랑을 받은 이날치의 멤버이기도 하다. '외계+인' 음악에 대해 어떤 고민을 했나.
"진짜 음악은 눈물 없이 할 수 없는 이야기인데요. 장영규 음악 감독님께서는 록밴드 베이시스트 출신이셔서, 팝과 락을 많이 알고 있지만 한국 전통 음악을 사랑하는 분이세요. '외계+인'에도 전통 음악을 넣을지 말지도 고민이 컸어요. 신기한 게 음악을 넣기가 너무 어려운 영화였던 거예요. 장영규 음악감독님이 저에게 음악을 쫙 보내주셨는데 나중에 다 모아보니 그 음악 파일이 80~100개쯤 되더라고요. 음악을 만들어서 넣고,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요. 그리고 '이 음악이 아닌 다른 음악을 만들어주세요'라고 하면 음악감독님께서는 '만들어볼게. 다음 주에 와'라고 하세요. 장영규 음악감독님은 똑같이 말씀하세요. '만들어볼게, 다음주에와.' 저는 '지산병원' 장면에서 나오는 음악이 '어떤 서스펜스적인 음악을 넣었으면 흘러갈 장면'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신비로운 음악으로 시작해요. 저는 진심으로 '만약 천재가 있다면 그건 장영규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외계+인'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사진 : 케이퍼필름 제공
Q. '외계+인'에서도 그랬지만, '코미디'라는 요소는 최동훈 감독의 작품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키워드다. 어떤 의미인가.
"저는 '코미디 빅리그'의 빅 팬이고, 코미디언을 존경합니다. 사람을 웃게 하는 건, 정말 엄청난 힘인 것 같아요. 제가 맨날 '너 영화는 너무 빨라'라는 이야기를 듣는데요. 익살스럽고 코믹한 장면에서 관객이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아요. 제 아버지께서 육체노동을 하시면서 저를 키우셨거든요. 아주 조그만 소금 판매업을 하셨어요. 매번 무거운 소금을 차에서 싣고 내리고를 반복하셨는데요. 그 힘든 일을 반복하면서도 아버지는 틈만 나면 사람을 웃기려고 하는 분이셨어요. 아버지께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저도 주책없이 사람을 웃기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시나리오를 재미있게 쓰고 싶어서 웃긴 대사를 쓰면 전혀 웃기지 않아요. 그런데 그걸 배우가 시치미 뚝 떼고 툭 내뱉는 순간, 남을 웃기려는 의지 없이 해야 코믹함이 나오는 것 같아요. 우왕좌왕이에게도 두 신선에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웃기지 말자'고요. 코미디는 축복 같은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외계+인'을 촬영하는 387일 동안 스스로 변화의 지점이 있었을까.
"'헤어질 결심' 시사회가 끝나고 술자리가 있었어요. 제가 '촬영하고 나니 허리랑 무릎도 아픈데 이명이 생겼다. 저는 녹내장도 있어서 위험하다'라고 했더니 옆에 계신 감독님들이 다들 '나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들끼리 앉아서 '우리가 왜 이럴까. 스트레스 많이 받고 살지 말자'라는 말을 했어요. '외계+인'을 찍으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하루하루 즐길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 변화라면 변화였고요. 솔직히 제가 별것 아니라는 것도 느꼈어요. 6번째 영화를 만들 뿐이고요. 좀 더 공부하고, 좀 더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외계+인'은 제가 컨트롤하기보다, 함께 협력해서 만들어야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스태프들이 제게 와서 '저는 마블 좋아하는데, 이 장면이 이렇게 되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하고 가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이렇게 툭툭 치며 이야기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같이 술 마시다가 '저는 이 장면이 실망이에요'라고 하는 거예요. 재밌어요. 스태프들의 말에 더 고민하게 돼요. 그런 것들이 많이 변했어요."
영화 '외계+인'을 연출한 최동훈 감독 / 사진 : 케이퍼필름 제공
Q. '오징어 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등 영화인의 OTT 시장 시리즈 진출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혹시 OTT 시장에 대한 계획은 없을까.
"박찬욱 감독님께 '요즘 뭐 하세요?'라고 여쭤봤더니,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거장 감독님도 드라마를 공부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저도 드라마를 공부하는 자세로 보고 있어요. 좋은 소재가 있으면, 꼭 드라마도 한번 해보고 싶기도 해요."
[인터뷰①]이 '외계+인' 작품 편이라면, [인터뷰②]에서는 '외계+인' 배우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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