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를 잘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연기돌'이라는 편견을 깨는 배우로서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트레이서'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층 더 넓어진 연기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믿고 보는 배우'를 증명한 임시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임시완 인터뷰 / 사진: 플럼에이앤씨 제공
최근 종영한 MBC 금토드라마 '트레이서'(극본 김현정, 연출 이승영)는 누군가에겐 판검사보다 무서운 곳 국세청, 일명 '쓰레기 하치장'이라 불리는 조세 5국에 굴러온 독한 놈의 물불 안 가리는 활약을 그린 통쾌한 추적 활극.
극 중 임시완은 전직 대기업의 뒷돈을 관리하던 업계 최고의 회계사로 돈과 성공 모두를 얻었지만, 돌연 잘나가던 회사를 그만두고 국세청 조사관이 되어 일명 ‘쓰레기 하차장’이라 불리는 조세 5국의 팀장이 된 '황동주'를 맡았다.
임시완은 "드라마를 반 년 넘게 찍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라며 "준비 기간까지 하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됐는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긴장이 딱 풀려서 아무것도 안 하고 며칠 동안 푹 쉬었다. 후련한 기분이고, 보셨던 분들께서는 잘 봤다고 많이 해주신 덕분에 안도하고 있다"라고 작품을 마친 소감을 밝혔다.
임시완이 맡은 '황동주'는 외적으로는 망가져야만 했고, 내적으로는 멘탈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고난의 인물이다. '트레이서'를 선택한 이유를 묻자 "대본을 한 번 읽어보라고 주셨는데, 첫 인상은 기획의도부터 빽빽하고, 권수도 상당했다. 배우로서는 고생길이 훤할 것이 느껴졌기에 '이 드라마는 재미가 없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보기 시작했다"라며 운을 뗐다.
하지만 대본을 읽을수록 극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 임시완은 "작가님의 애정과 철두철미함, 몇 년간의 응축된 노력이 보였다. 이런 웰메이드 대본을 보고서 작품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배우로서 사명감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서 안 할 수가 없었다"라며 "그때부터 대사의 늪에 빠졌죠"라고 덧붙였다.
그간 국세청을 소재로 했던 드라마가 없던 만큼, 작품을 분석하는 것에 어려움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임시완은 "저도 처음에는 그런 생각을 했다. 이게 익숙하지 않은 직업이라 국세청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떤 언행을 할까 싶었다. 전직 국세청 종사자를 찾아가서 자문도 구했고, 실제 국세청 탐방도 했다"라고 돌아봤다.
"한 분이 '국세청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말을 해줬는데, 그게 큰 힌트가 됐다. 어떤 것을 따라가려고 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접한 '사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주게끔 만들었다. 그 위로 국세청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언행을 묘사하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그게 저한테 있어서는 중요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 같다."
캐릭터에 집중하고자 했던 노력 때문일까. 메이킹 영상 등을 통해 공개된 임시완의 대본은 한 마디로 '너덜너덜'했다. 황동주를 어떻게 분석했는지 묻자 "처음 대본을 보고 이런 스타일로 가야겠다고 메모를 한 것이 있었다"라며 당시의 메모를 찾더니 '아재들 잡는 핏덩이'라고 설명했다.
임시완은 "아저씨라고 표현한 분들은 국세청 간부들이다. 굉장히 똑똑하고 스마트하지만, 악한 사람들이다. 동주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을 '아재'라고 칭하면 이들과 대사를 하고 싸우는 것은 그 사람들의 판에 뛰어드는 일이다"라며 "핏덩이가 되려고 한 것은, 오히려 아저씨들은 하지 않을 법한 대사들을 하려고 했다. 어른이 아이들과 싸우는 모습을 보이면 더 유치해 보이는 그런 모습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저씨들이 말을 어렵게 하면 알아들어도 모르는 척하고 그런 식이었다"라고 말해 황동주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지점을 엿볼 수 있었다.
또한, 회계사였던 동주와 국세청에 들어간 동주의 비주얼적인 측면이나 성격까지도 세심하게 분석했다. 임시완은 "캐릭터의 대비를 보여주기 쉬운 것이 행동과 의상이라고 생각한다. 회계사 동주는 자신이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있다. 어떤 정의감보다는 본인의 사업적인 성취가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행동에도 자신감이 넘치고 능글맞았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을 만난 만큼, 유려 연하게 대처하는 그런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국세청에 들어간 동주는 복수를 위해 살 것이라는 생각으로 가득 채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러한 톤을 그대로 드러내면, 복수에 이를 간다는 사실이 상대방에게 들킬 수 있기에 원래(회계사 시절)의 동주처럼 연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과거 회계사였던 모습이 동주의 진짜 기질이라면, 국세청은 이러한 기질을 연기한다는 생각으로 연기하려고 했다"라고 비교했다.
임시완은 황동주를 연기하면서 "속 시원한 것이 있었다"라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 것 같다. 또박또박 반론을 제기하는 모습들이 연기를 하면서도 통쾌하게 느껴졌다"라고 말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은 첫 화의 해머 신이나, 미끼를 던지고 "이의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의도적으로 회의를 난장판으로 만든 장면 등이다.
임시완은 "회의장 신 찍을 때 그때가 촬영 초반은 아니고 한창 촬영 중일 때였다. 그 신도 많은 회의를 거쳤다. 어떻게 하면 황동주를 좀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현장에서 다양한 시도도 많이 했었다. 마이크가 켜지는 것이나 USB 같은 것도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사용했다. 고민하면서 찍었던 신이라 더 기억에 남는다"라고 답했다.
이러한 노력이 있었기에 '임시완 아닌 황동주는 상상할 수도 없다'는 호평을 얻으며 그간 '미생'의 장그래, 혹은 '변호인'의 진우로 그를 기억했던 대중들에게는 '이런 모습도 있었구나'라는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결말에 만족하냐는 질문에 임시완은 "결말이 어떻든, 큰일을 겪었다는 이유로 동주라는 캐릭터가 가진 기질 자체가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라며 "이 드라마가 교육용은 아니잖아요. 철저한 오락용 드라마라고 생각한다. 동주 캐릭터 자체가 티 없이 깨끗한 인물은 아니다. 권선징악보다는 안티 히어로물이라고 생각한다. 악에 대응하는 것에 있어서 악으로 대항하는 것에 거리낌 없는 동주의 모습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셨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 드라마를 통해 구태여 교훈이나 어떤 메시지를 받기보다는, 같이 통쾌함을 느끼고, 어떤 장면에서는 함께 마음 아파하고, 그런 것을 느낀다면 시청자들에게도 시간이 아깝지 않은 소중한 작품으로서 존재 이유가 된다고 생각한다."
[인터뷰②] 임시완 "다시 찾은 칸 영화제, 여전히 좋더라고요" 기사로 이어집니다.
Copyright ⓒ 디지틀조선일보 - 디지틀조선T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