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여정 화상 인터뷰 / 사진: 애플tv+ 제공
'미나리'에서 이민자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낸 윤여정이 이번에도 글로벌 흥행 치트키로 활약한다. 동명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애플tv+를 통해 재탄생한 '파친코'를 통해서다. 작품은 제작 확정 당시부터 세계 시청자의 이목을 끌었다. 그 중심에는 윤여정이 있었다.
이번 작품에서 윤여정은 주인공 '선자'의 노년기를 연기했다. 선자는 일제강점기, 혼란스러운 시대 속 불타는 사랑을 했고 아픈 이별과 새로운 기회를 겪으며 성장하는 인물이다.
사진: '파친코' 예고영상 캡처
작품 공개에 앞서 윤여정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영화 '미나리'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받은 후 '파친코' 홍보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에게 근황을 물었다.
"저는 달라진 게 없어요. 똑같은 친구랑 놀고, 똑같은 집에 살고 있어요.(웃음) 제가 진하 나이 때 아카데미를 탔으면 둥둥 떠다녔을 거예요. 정말 내 나이에 감사해 보긴 처음이에요. 나도 늙는 게 싫은 사람인데 아카데미인지 오카데미인지를 30대쯤 탔더라면 붕붕 떴겠죠"
"그 상을 받는 순간에는 기쁘죠. 하지만 그 상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았어요. 나는 그냥 나로 살다가 죽을 거니까. 나는 정말 운이었어요"
윤여정은 긴 대서사시를 몸소 겪어낸 선자의 깊고도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야 했다. 특히 현재까지 '자이니치'라 불리는 재일동포를 대변하는 캐릭터였기에 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윤여정은 부담감보다도 '끌림' 때문에 작품을 택했다고 말했다.
"저는 '미나리' 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다 우리 아들 같은 마음이 있어요. '미나리' 아이작을 보면서도 제 아들과 같은 상황이라 그가 무언가를 만들려고 하면 내가 마음이 움직여요. 국가적인 프로젝트라 했다던가 그런 건 전혀 아니고요"
윤여정은 이번 작품을 하면서 '자이니치'의 삶과 그 애환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더 미안했고 가슴이 아팠다고 덧붙였다.
"'자이니치'라고 하는 말이 재일교포를 말하는데, 저는 혹시나 '자이니치'가 그 사람들을 안 좋게 이야기하는 건가 생각했어요. 극 중에서 제 아들이 실제로 자이니치였어요. 자기는 너무 감동했다면서 '자이니치라는 프라이드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예전에 듣기로는 자이니치가 조총련, 이북쪽 사람들이라고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한국말을 배우려면 조총련 학교를 갔어야 했다더라고요. 사상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사람들은 재일동포지만 일본 사람이 아니고 한국인으로서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저도 이번에 배우고 드라마 찍으면서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미국에서 생활한 경험이 있는 윤여정이기에 타국에서 이민자로 사는 선자의 삶과 공감대가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윤여정은 감히 선자의 삶과 자신의 상황을 비교하지 않았다. 다만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어미의 심정에는 깊이 공감했다.
"저와 선자는 상황이 너무 달랐죠. 저는 미국에서 일은 안 했어요. 살려고 일 한 건 아니었고, 이혼을 한 후에 생계 때문에 일을 많이 했던 거죠. 내가 살아보니까 막 살려고 일을 할 때는 이게 힘든 건지 아닌 건지도 몰라요. 그냥 선택지가 없으니까 할 뿐이죠. 힘든지도 모르고 하는 건데. 선자는 남편이 감옥에 가고 그런 상황이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김치를 만들어서 파는 것밖에 없었을 것 아니에요. 그게 선자가 할 수 있는 일일뿐이었다 그렇게 생각해요"
극 중 윤여정은 손자 '솔로몬 백' 역의 진하와 끈끈한 조손 관계를 연기했다. 이번 작품에서 진하를 처음 만난 윤여정은 첫 촬영부터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우리 진하가 아주 똑똑하고 철학적이에요. 재밌었던 건, 진하가 코리안 아메리칸이니까 아들한테 물어봤어요 진하에 대해. 그랬더니 아메리칸 연속극이 하나 있었는데 진하 하나만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은 정보를 가지고 나서 첫 신에서 만났는데, 한국 사람들은 아직도 배우는 키도 크고 핸섬하고 이민호같이 생겨야 하는데, 얘를 보는 순간 왜 이렇게 조그맣고 핸섬하지도 않은 얘가 있더라고요.(웃음) 그런데 배우는 배우끼리 알아요. 첫 신을 하자마자 '쟤 잘한다' 싶었어요. 얘가 나를 '마스터'라고 부르는데 연기는 마스터할 수가 없어요. 그냥 얘 엄마, 아버지가 제 이름을 들어봤다 하는 거지 제가 마스터는 아니죠"
이날 인터뷰에 함께 참여한 진하는 "윤여정 선생님이 진짜 웃기시다"라며 그를 '마스터'라 칭했다. 현장의 최연장자인 그가 불편할 법 했지만, 오히려 윤여정의 존재가 후배들에게는 쉴 틈이 되었다. 윤여정은 진하의 말에 손사래를 치며 배우로서 가진 소신을 덧붙였다.
"왜 그런지 말할게요. 저는 너무 힘들게 살았고 해서 얘네들처럼 심각하게 하고 싶지 않아요. 난 쉬는 시간에 그러는 게 멍청해 보여요. 내가 웃고 싶고, 진짜 릴랙스하고 싶지. 어떤 배우는 쉬는 시간에도 감독하고 토론하고 하는데 액팅은 토론이 아니에요. 난 그런 걸 싫어하는데, 사람들이 날 보고 웃었으면 좋겠거든요. 어떤 사람들은 그래서 날 싫어하지만 또 누구는 그래서 나를 좋아하기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