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안의 믿음이 없으면, 완주해내기 쉽지 않은 직업인 것 같아요."

영화 '보이스'에서 김무열은 돈에 대한 환희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보이스피싱으로 사람을 속이고 돈을 뜯어내며 죄책감이 아닌 희열을 느꼈다. 그런데 시리즈 '소년심판'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로 등장한다. 그가 맡은 차태주 판사는 "소년범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는 건, 판사뿐"이라고 믿는 인물이다. 피해자가 있는 범죄, 조심스럽고 염려스러울 수 있는 시선을 대변하는 자리는 김무열 덕분에 마음에 닿았다.

'소년심판'은 미성년자인 청소년들의 범죄를 판결하는 법정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해자와 피해자, 그들을 둘러싼 가족, 그리고 판결을 내려야 하는 판사들까지 각기 다른 시선으로 범죄를 바라보고, 이 같은 범죄가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소년심판'에는 네 명의 판사가 각기 다른 신념을 보여주지만, 실제 판사님들의 입장과 태도는 그 네 명의 판사의 신념을 모두 아우르고 계세요. 실제 판사님들께서 해주신 리뷰를 보면 각기 다른 말이지만 결국 한 사람이 '소년심판'의 네 명 판사의 신념을 담고 있다는 게 느껴지거든요. 네 명의 판사로 구조화해낸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차태주 판사를 연기하면서 인물에 대한 생각을 해봤어요. 저는 많은 부분 공감한 것 같아요. 저희가 분명히 바라봐야 하고, 생각해야 할 부분을 차태주가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범죄를 예방하는 것, 이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소년들이 범죄에 노출되지 않도록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가. 어떻게 범죄를 예방할 것인가. 어떻게 범죄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 것인가. 지금은 범죄자로 선 소년이 다시 그 자리에 서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로 차태주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년심판'에 합류하기 전, 김무열은 자신도 역시 언론을 통해 알려진 소년범죄를 보며 충격을 받았고, 분노했음을 전했다. 성인이 되기도 전에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점이 충격이었고, 또 범죄의 잔혹성에 비해 가벼운 처벌에 분노했다.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모르고, 단순히 분노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습니다"라고 말한다.

"완성본을 쭉 봤을 때 느낌은 다시 한번 많은 걸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이 벽돌 투척 사건이 있던 시기에 심은석 판사가 판결을 내리고, 법원을 나가는 소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얼굴에서 심정적인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전에는 소년범죄 깊숙하게 개입한 차태주를 이해하고, 심정적으로 동화됐다고 생각했는데 완성된 장면, 김혜수 선배님 연기를 보니 더 깊은 무언가가 느껴지더라고요. 작품을 보면서 제가 함께한 작품인데 결과물을 보고 다른 느낌을 받은 건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법복을 입는다는 것 자체가 무거웠다. 김무열은 차태주 판사 역을 맡아서 실제로 소년범죄의 재판이 이루어지는 법원을 찾았다. 그곳의 신중함, 공기, 무거움이 씨앗이 돼 차태주가 완성될 수 있었다.

"차태주는 어두운 과거가 있잖아요. 어두운 과거에서 검정고시를 통과해 판사까지 된 말 그대로 개과천선한 인물이죠. 과거와 현재의 차태주가 격차가 아주 큰 인물이기 때문에 그 내면에는 아주 강하고 무거운 신념이 자리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힘을 주어 이야기하며 일부러 그걸 드러내지 않아도, 선배인 심은석 판사에게도 '판사님의 생각에도 동의하지만, 저의 생각도 틀리지 않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소년심판'에서 차태주의 감정이 터져 나오는 장면은 두 장면이 있다. 한 장면은 과거의 자신과 같은 아픔을 가진 유리가 법정에서 아버지(현봉식)와 대면하는 장면이고, 다른 한 장면은 강원중 판사(이성민)를 배웅하는 장면이었다. 김무열은 해당 장면의 촬영 현장에 대해 천천히 이야기를 꺼냈다.

"차태주가 유리 아버지를 제압하는 장면은 저희끼리도 걱정이 많았던 장면이었어요.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무리 정신을 놨다고 하더라도, 폭력을 쓰는 게 맞는 것이냐는 고민이 촬영 현장에서도 있었어요. 다행히, 유리 아버지를 제압하기 위해 차태주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고 연기 설정이 현장에서 바뀌었고요. 공감을 해주신 것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원중 판사의 배웅 장면이 실제 이성민 선배님의 '소년심판' 마지막 촬영 장면이었어요. 마지막 촬영이니 '점심 같이 하시죠'라고 해서 물짜장도 같이 먹었어요. 이성민 선배님께서 정말 좋은 큰 형 같은 분이세요. 그래서 많이 의지하다 보니, 실제로 현장에서 상의한 것은 동선 짜는 정도였는데요. 제 얼굴을 촬영하는 장면이 아닌데도 제가 눈물이 계속 났어요. 따로 집중을 하지 않아도, 차태주와 김무열의 전체적인 감정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장면 같아요."

전작에서 보여준 모습과 차태주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김무열은 자신에 대해 "좀 허술하고, 덜렁거리고, 싱겁고, 그런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극과 극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된 자신에 대해 밝혔다.

"제 안의 믿음이 없으면, 완주해내기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중간중간 '이 길이 맞는 걸까?, 내 캐릭터가 관객에게 다가설 수 있을까?' 등의 고민을 하게 돼요. 특히 '소년심판'은 1~10화까지 촬영을 모두 마친 후에 공개되는 작품이잖아요. 제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김혜수 선배님의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던 응원 덕분인 것 같아요."

"김혜수 선배님과 첫 촬영이 심은석 판사님이 전임 오신 날, 차태주 판사가 알아보지 못하는 장면이었거든요. 첫 컷 찍고 선배님이 '자기 연기 너무 좋다'라며 제가 한 손짓, 시선 등을 아낌없이 칭찬해주셨어요. 그 날부터 촬영 끝나는 날까지 제 행동, 연기 등을 칭찬해주셨어요. 이건 정말 '힘이 난다'가 아니라, 저는 현장에서 춤을 췄어요."(웃음)

'소년심판'의 과정을 거치며, 김무열은 자신 역시 달라진 생각을 전했다.

"단순히 분노했다는 사실이 어른으로 부끄럽고 미안했습니다. 마지막 화에서 심은석 판사님에게 '오해해서 죄송하다'라고 말하는 차태주를 연기하며 개인적인 소회도 들더라고요. 제가 소년범죄를 바라보는 태도와 입장이 얼마나 편협했고, 좁았는지 반성도 했습니다. 소년범죄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일어나는 불합리한 일들과 어려운 이웃에 대해 미처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이런 의미 있는 작품을 해 나가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건네야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