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특송'에서 백사장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 / 사진 : NEW 제공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고민을 한다. '잘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은 뭘까. 배우 김의성은 어떤 면에서 '센 캐릭터'였다. 영화 '부산행' 때는 천만 관객의 악역이었고, SNS상에서 누군가에겐 바른 소리였고, 누군가에겐 쓴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인터뷰로 만난 그는 자신을 더 낮췄다. "사회에 봉사하는 방식, 어두운 곳을 챙기는 방식, 그런 것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옳지 않은가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김의성의 말이 인터뷰가 끝난 후에도 계속 남아있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영화 '특송'의 개봉을 앞두고 배우 김의성이 인터뷰에 응했다. '특송'은 돈만 주면 약속된 장소까지 물건이든 사람이든 배달해주는 성공률 100%의 드라이버 은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담고 있다. 김의성은 은하가 일하는 '백강 산업' 대표 '백사장' 역을 맡았다. 백강 산업은 겉으로 보기엔 폐차 처리 영업장이지만, 실상은 특송 전문 회사. 백사장 역시 겉으로 보기엔 돈을 좇으며 은하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투덜거리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따뜻한 인물이다.
'부산행' 등에서 만인의 악역이었던 김의성이 '모범택시'에 이어 '특송'에서도 믿음직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앞서 '모범택시' 종영 시 SNS에 "오랜만에 욕 안 먹는 배역을 맡아 매우 어색했고요"라는 글을 남겼던 김의성은 "제가 아이가 없어서 아빠 같은 마음을 가지고 연기하는 게 쉽지 않았는데, 박소담 배우와는 가까운 사이이고, 나이를 뛰어넘어서 서로 좋은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서요. 그런 마음의 준비를 하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라고 소감을 전했다.
백사장은 겉과 속이 다른 입체적인 인물이다. 김의성은 은하와 백사장의 관계에서 캐릭터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모든 연기는 관계에서 나온다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배우 하정우에게 들었다는 설명과 함께다.
영화 '특송' 스틸컷 / 사진 : NEW 제공
"저는 현장에서 연기에 대해 동료 배우들에게 많이 물어보거든요. '부산행' 때는 김수안 배우에게도 물어봤었어요. 그중 하정우 배우가 '이 연기 어떻게 해?'라는 말에 이런 답을 했어요. '각각의 배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 이 사람과는 이런 관계니 이렇게 하고, 저 사람과는 저런 관계니 저렇게 하세요'라고 무책임한 조언을 해주더라고요. 내가 사람을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렇게 나누는 게 아니라, 누구와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결국 백사장도 은하와 외국인 노동자 직원들과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백사장에게 은하는 모든 것이었습니다. 둥지에서 떨어진 어린 새 같은 존재였고요, 그런 존재를 구해서 키운 딸 같았고요. 어려운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동료이기도 했고, 결국 이 돈과 모든 걸 물려줄 계승자이기도 했고요. 은하는 백사장에게 그런 존재였죠."
은하는 탈북해 남한으로 온 인물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을 모두 잃고 혼자 살아남았다. 백사장은 과거 탈북자를 남한으로 데려오는 일을 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시간을 거쳐 지금의 관계가 됐다. 그뿐만 아니다. 백강 산업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백사장은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다가, 소고기를 안 먹는다고 했다가"라고 투덜거리면서도 그들이 먹을 고기를 땀 흘리며 구워주는 인물이다.
"백사장이 엄청 차별적인 언어를 쓰잖아요. 그런데 그 말이 일차원적으로는 차별적이지만 아예 편견을 안 가지고 누구나 똑같이 대하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퉁명스럽지만 따뜻한 마음을 갖고 편견 없이 대하는 자세로 연기하려고 했어요. 함부로 차별적인 말을 쓰면 안 되지만, 백사장의 마음을 공유한다면, 어차피 소수자들이 함께 살아가야 하는 사회 아니겠습니까. 이런 마음을 다 같이 가질 수 있다면 따뜻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영화 '특송' 스틸컷 / 사진 : NEW 제공
김의성이 '특송'의 첫 번째 매력으로 꼽은 것도 같은 결에 있다. 그는 "'특송'이 마이너리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라고 했다. "이 영화에 나오는 모든 인물은 사회에서 마이너한 인물들이거든요. 합법과 불법의 중간쯤에 서서 줄다리기 장사를 하는 백사장도, 외국인 노동자도, 그리고 탈북자 출신 은하도 그렇고요. 사기 치고 도망가려는 아빠, 아들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엄마도 다 마찬가지죠. 이런 다양한 색 안에서의 충돌, 그 안에서의 따뜻함과 정의가 첫 번째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다음이 스타일이죠. 놀랄만한 카 액션, 박소담 배우의 매력이 결합된 캐릭터 등이 굉장히 매력이 많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의성은 알려졌다시피 서울대학교 출신이다. 그는 배우로서의 시작에 대해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어마어마한 시대였거든요. 남들은 돌 던지고 데모하는데, 저는 돌 던져도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해서 연극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게 좋겠다 생각해서 시작했어요"라고 돌이켜 회상했다.
"하다 보니 연기를 잘 못해서 다음엔 잘해야지라는 오기로 했어요. 그러다가 진짜 너무너무 못한다 싶어서 10년 넘게 연기를 안 한 적도 있었어요. 인생의 풍파를 겪다가 40대에 다시 연기를 시작해서 지금 10년 정도가 됐는데요. 지금은 연기의 매력보다 배우라는 직업의 매력이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연기도 흥분되는 일이지만, 배우라는 직업을 통해 사람들과 같이 교류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가 너무 좋고요. 촬영장에 나가는 매일이 너무 기쁘고요. 촬영장에 천으로 만든 의자에 앉는 순간이 너무 행복합니다. 일을 열심히 하면 과분하게 돈도 많이 주셔서 감사하고요. 나이를 더 먹어도 더 열심히 일하는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영화 '특송'에서 백사장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 / 사진 : NEW 제공
앞서 그는 SNS를 통해 활발하게 자기 생각을 전했다. 김의성은 당시를 "권위주의적인 사회성이 남아있잖아요. 노래나 잘하지, 연기나 잘하지라는 풍토가 싫어서 오기로 그런 것도 있고요. 누구나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데 조심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저라도 떠들면 후배들도 용기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어요"라고 회상했다. 이어 "그런데 그 방식이 부끄럽게도 너무 직설적이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는 더 정제된 언어로, 타인을 배려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도 사회에 봉사하는 방식, 어두운 곳을 챙기는 방식, 그런 것이 나이를 먹어가면서 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라고 달라진 생각을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김의성은 자신의 SNS에 투표 은퇴를 고민하고 있다는 소신을 밝힌 바 있다. "아마도 이 포스팅이 제 마지막 정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라고 시작하는 글 속에서 김의성은 80년 광주를 겪은 세대인 자신이 과거 이해할 수 없었던 '빨갱이와 함께할 수 없다'는 6·25세대의 이야기를 나란히 올려 두며 "결국 우리의 시대는 지나가고 있고, 정치적 지향을 떠나서 젊은 세대들이 자신들이 살아갈 나라의 미래를 결정하게 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라는 소신을 전했다. 김의성은 인터뷰에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영화 '특송'에서 백사장 역을 맡은 배우 김의성 / 사진 : NEW 제공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2~30대가 중요한 이슈가 된 적이 없었잖아요. '투표 좀 해라'라는 대상이었는데, 이들이 선거의 주역이 되고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생각을 해봤어요. 제가 젊은 세대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것도 많았고요. 저는 소위 8~90년대를 보낸 기성세대로서, 가지고 있는 정치적 지향성을 못 바꾸거든요. 지지할 이유를 찾고, 합리화하는 세대인데요. 젊은 세대는 무엇이 이익이고 옳은지 아주 유연하게 지지를 바꾸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6·25세대처럼 마인드 세팅이 딱딱해져서 늙어가고 있는 건가 싶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정치적 선택을 하면 사회 발전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글을 쓰게 됐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 중입니다. 또 그냥 불같이 화가 나서 어떻게 할지도 모르겠어요.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져주면, 우리 미래가 어둡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새해 밝았다. 김의성은 2022년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을까.
"올해 개인적인 소망은 이 코로나 19 상황이 빨리 좋아져서, 여기저기 막 여행 다니고, 영화 쫑파티 가서 사람 100명씩 모여서 술 마시고, 그런 거 하고 싶습니다. 너무 못해서 그리워요. 영화인들이 우울해하고 있는데, 극장이 힘든 것도 있지만 다 같이 모여서 술 못 먹는 것도 힘든 것 같아요. 전처럼 어깨를 부딪치며 신나게 떠들며 지내는 그런 때가 빨리 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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