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체이탈자'를 연출한 윤재근 감독 / 사진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 갈망이 컸어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이다. 2011년 개봉한 영화 '심장이 뛴다'로 감독 데뷔한 윤재근 감독은 10년 후 두 번째 작품 '유체이탈자'로 관객과 만나게 됐다. 그사이 다른 작품을 한 것도 아니다. 한눈팔지 않고 '유체이탈자'에 임했다. 그 시간 속에는 수많은 선택과 좌절이 있었다. 배우 윤계상의 캐스팅도 1년을 기다려 성사시킨 일이었다. 윤재근 감독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야기"를 위해 그렇게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갈고, 닦았다.
그런 '유체이탈자'는 개봉 전부터 좋은 소식들이 있었다. 개봉 전부터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를 결정했고, '제20회 뉴욕아시안영화제'에서 액션시네마 상과 함께 해외 영화제에서 호평을 이끌어냈다. 윤재근 감독은 외신의 반응에 "사실 민망했었어요"라며 소감을 이어간다.
영화 '유체이탈자' 스틸컷 / 사진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나라 영화만의 색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우리나라만의 정서가 영화에 담겨있고요. 그래서 그들에게 새롭게 보였나 보다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마 배우들이 작품에 임하는 자세나 기운이 다르게 보였고, 그것이 인상 깊게 보지 않았나 싶어요."
10년을 준비한 시나리오였다. 그 시작은 10년 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타인의 몸에 들어갈 수 있다면'이라는 막연한 상상이었다. 그 상상은 멜로도 됐었고, 휴먼 드라마도 됐다. '한 사람이 여러 몸 안에 들어가는 걸, 어떻게 영화로 구현하지?'라는 막막함도 있었다. 초고를 쓸 때는 금방 영화가 될 줄 알았다. 1년 정도 준비하면, 2년 후엔 촬영에 돌입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의 영화사를 만나기까지 3년이 걸렸고, 개봉까지 다시 7년이 걸렸다. 처음 만나는 이야기에 제작하는 것도, 투자하는 것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윤재근 감독은 '유체이탈자'를 놓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다른 작품을 폄훼하는 건 아니지만, 조폭, 살인마 등이 나오는 장르물은 많이 등장했잖아요. 저 스스로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서 어떻게든 영화화하고 싶은 마음에 계속 붙잡고 있었죠. 사실 직업이 영화감독인 사람은 이러면 안 되거든요. (웃음)"
영화 '유체이탈자' 스틸컷 / 사진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유체이탈자'는 12시간마다 타인의 몸에서 깨어나는 강이안(윤계상)이 자신의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체이탈을 해서 다른 공간에 있는 타인의 몸에서 깨어나고, 그는 영화 속 7번이나 몸을 달리하며 자신의 정체를 찾아간다.
무려 7명의 배우가 '강이안'이라는 캐릭터를 그려야 한다. 윤계상은 그 중심에서 배우 박용우, 유승목, 이성욱, 서현우 등과 함께 강이안을 만들어가야 했다. 유체이탈되어 타인에게 들어간 강이안을 표현하기 위해 윤계상이 한 번, 강이안이 들어간 인물의 배우가 한 번, 두 번씩 촬영했다. 배우들은 촬영 전부터 수많은 회의와 연습을 통해 '강이안'의 감정과 액션을 한 명의 사람이 한 것처럼 표현해냈다. 윤재근 감독은 이를 윤계상이 리드한 결과라고 말한다.
"'범죄도시'에서도 그런 에피소드가 있었잖아요. 윤계상이 조직원과 모여 회의하고, 좋은 아이디어를 미리 연습하고, 감독님께 제안해 좋은 장면을 완성한 경험이요. 자기를 내세워 욕심을 부리기보다, 배우들과 회의하며 만들어나갔던 결과물이 좋았던 게 학습이 되어있는 거죠. 그걸 보면서 놀라웠어요. 다들 바쁜 사람인데 일주일에 4~5번 연습실에 모여서 회의하고, 연습하고, 저에게 제안해준 그 모습이 놀라운 경험이었죠. 아마 앞으로도 이런 경험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행복한 경험이기도 해요. 윤계상 배우에게 정말 고맙기도 하고요."
영화 '유체이탈자'를 연출한 윤재근 감독 / 사진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윤계상은 대역 없이, 몸을 사리지 않고 '유체이탈자' 촬영에 임했다. 그 속에는 운전석을 차 위에 만든 특수차량으로 차폭만 한 좁은 길을 내달리는 카체이싱도 있었고, 발판 공사를 해서 저수지에 크레인으로 차를 넣었다 뺐다 하며 완성한 수중 촬영도, 숨소리까지 느껴질 것 같은 타격 액션도, 총기 액션도 있었다. 안전장치는 있었지만, CG가 아니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위험할 수 있는 촬영이었고, 손을 꼭 쥐고 볼만큼 아찔한 장면이었다.
"카체이싱 장면을 CG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웃음) 실제 평창동 주택가 거리에서 찍었거든요. 위험할 수 있긴 하지만, 차를 개조해서 천장 위에 스턴트가 실제로 운전을 하고, 배우들은 운전하는 연기를 하며 촬영된 장면이에요. 운전대, 브레이크 등 차를 아무것도 조작할 수 없는 상태에서 좁은 길을 내달리는 것만으로도 공포스럽거든요. 실제로 무서워하셨고요. 그런데 그 속에서 대사까지 해야 해 정말 힘들어하셨어요. 그래서 컷하면 '대사가 안 좋았던 것 같다, 표정이 어색했던 것 같다'고 오히려 다시 촬영하자고 하셨는데요. 저는 오히려 그 모습이 좋았어요. 사람의 불안정함 속에 리얼함이 담겨 있었거든요."
추리 액션이라는 장르의 영화지만, 그 속의 온도는 뜨겁다. 강이안이 자신의 실체를 향해가는 감정선은 뜨겁고, 7명의 배우는 그 온도를 차츰차츰 높여갔다. 영화는 강한 장르물의 색과 온도를 띄고 있지만, 그 속에는 '진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가 담겨 있기도 하다.
영화 '유체이탈자' 스틸컷 / 사진 : 에이비오엔터테인먼트 제공
"사람들은 모두 관계 속에 있잖아요. 연인 사이라도, 갑자기 이별을 통보할 때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처럼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 사람이 연인을 대할 때, 친구를 대할 때, 부모를 대할 때 등의 모습이 다 다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진짜 나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에 빠져있던 때가 있었어요. 육체가 나일까, 기억이 나일까, 육체가 없어지면 내가 아닌 걸까. 현학적인 생각이죠."
"그런 궁금증을 품고 시나리오를 썼는데요. 답을 찾아서 시나리오를 완성한 게 아니라, 강이안을 통해 그 답을 찾은 것 같아요. 문제에 직면하고, 해결하고, 그 과정을 통해 나에게 한 발씩 다가가잖아요. 그 과정을 통해 저도 해답을 얻은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를 봐줬을 때, 비로소 나를 찾는 거구나. 그게 나의 본질이라는 점을 제가 시나리오를 쓰며, 강이안에게 배우게 된 것 같아요."
윤재근 감독은 '유체이탈자'를 통해 스태프, 배우라는 관계 속에서 감독으로 존재했다. 이를 통해 그는 "책임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 "영화가 잘 돼 칭찬을 받는다면, 스태프와 배우들이 받고, 혹시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감독만 욕하셨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런 현장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아요"라고 덧붙인다. 관계의 소중함을 아는 감독에게 그다음 작품을 기대할 이유는 '유체이탈자'만으로도 충분하다.
"여러 장르에 욕심이 나요. 멜로도 해보고 싶고요. 제가 처음 데뷔한 작품이 '꽃피는 봄이 오면'이라는 작품의 각본을 쓰면서였거든요. 제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것들이 실제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런 것들을 영화로 구현해내는 것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게 영화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고요. OTT 시리즈도 기회가 있다면 해보고 싶고요. 사실 지금 쓰고 있는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요. 이 작품도 만들어 보고 싶네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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