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이프라인' 스틸컷 / 사진 :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리틀빅픽처스 제공
액체의 속성은 흐른다는 것이고, 그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은 시각보다 후각일 때가 있다. 어두운 송유관 속에서 흐르는 석유처럼 말이다. 석유는 곧 돈이다. 영화 속 대사처럼 "사람들의 피눈물을 먹고사는" 그 돈이다. 이 흐름을 바꿔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의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 거액의 돈을 받고 도유작업을 하는 다섯 명의 사람이 있다.
핀돌이(서인국)는 도유계의 거물이다. 핀돌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믿음을 준다. 송유관에 압력을 바꾸지 않고, 자신만의 드릴핀으로 뚫어서 도유를 100% 성사시키는 인물, 그것이 핀돌이다. 그 명성을 들은 건우(이수혁)는 제안을 한다. 송유관 두 개가 모이는 곳을 뚫어 큰 도유판을 짜자는 것.
이를 위해 판을 짠다. 핀돌이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접새(음문석), 나과장(유승목), 큰삽(태항호), 카운터(배다빈)가 후미진 곳에 있는 관광호텔에 모였다. 이제 도유를 하기 전까지 밖을 나갈 수 없다. 이들은 관광호텔 지하에서 도유 작업을 개시한다. 그런데,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자꾸 삐거덕거린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들은 매일 한 치 앞도 모르는 땅을 파댄다. 땅속에서 갑자기 만나게 된 바위처럼, 앞날이 까마득한 다섯 사람이다.
도유라는 소재가 대한민국 최초라고 하지만, 이미 국내 몇몇 관객들은 '도굴'의 세계를 영화를 통해 경험했다. 예고편만 보면 팀플레이를 한다는 점, 앞이 깜깜한 땅을 판다는 점 등이 '도굴'과 유사한 흐름을 만들 것 같다.
하지만 '도굴'과 '파이프라인'은 전혀 다르다. '파이프라인'은 자신만의 매력으로 무장했다. 매번 운명처럼 만나서, 언제부터 알았다고 찰떡 호흡을 보여주는 기존 팀과는 흐름이 다르다. 핀돌이, 접새, 나과장, 큰삽, 카운터는 분명한 각자의 이익을 위해 관광호텔에 왔고, 각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삐걱댈 수밖에 없다. 서로 경계하고, 때리고, 욕하고 하는 행동들은 오히려 현실적인 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속에서 점점 합이 맞아들어가는 이들의 모습은 영화 속뿐만 아니라 관객에게도 묘한 애정을 갖게 한다.
유하 감독의 묘한 연출이 매력을 더한다. 유하 감독은 영화 '결혼은 미친 짓이다'(2001), '말죽거리 잔혹사'(2004), '비열한 거리'(2006), '쌍화점'(2008), '강남 1970(2014) 등의 작품을 통해 독특한 소재와 연출로 관객을 사로잡아 온 감독이다. 그는 8번째 장편 연출작인 '파이프라인'에서 케이퍼 무비, 범죄 오락 영화라는 장르에 도전장을 내민다.
그렇기에 독특하다. 영화는 현실의 언어를 가지고 흐른다. 오락 영화가 주는 가벼움보다 누아르적인 진한 냄새까지 묻어있다. 하지만, 유하 감독이 좋아하는 단어라고 밝힌 "카니발"처럼 그 끝에는 그 이상의 통쾌함이 있다. 마치 '주유소 습격사건'(1999)을 연상시키는 흥겨움이 있다. 음악 때문일까, 요즘 유행하는 레트로 감성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쉬운 점도 있다.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석유를 훔친다는 소재는 처음이라, 이를 설명하기 위한 장황한 설명이 대사로 진행된다. 또한 여러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범죄 오락 영화의 클리쉐 역시 따라가는 듯 보인다. '파이프라인'에서는 영화만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요소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도, 배우들의 합을 보는 즐거움이 있다. 배우 서인국, 음문석, 유승목, 태항호, 배다빈은 점점 케미가 맞아들어가는 듯한 '팀 몰입도'를 높인다. 여기에 절대악으로 대표되는 배우 이수혁 역시 땅에 발붙인 모습으로 어딘가 허술한 모습을 자신의 옷처럼 표현한다.
한편, 영화 '파이프라인'은 오늘(26일) 개봉해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