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빛과 철'에서 은영 역을 맡은 배우 박지후 / 사진 : 찬란 제공
배우 박지후는 깊은 눈을 가졌다. 커다란 눈망울 속에는 영화 '빛과 철'의 제목처럼 '빛'이 있고 '단단함'이 있다. '빛과 철' 속 그가 맡은 은영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고, 품어왔던 비밀을 꺼내려는 인물이다. 복잡한 감정을 가진 중학생 소녀의 모습, 영화 '벌새' 이후 관객이 마주하게 될 배우 박지후다.
영화 '빛과 철'은 2년전 일어난 교통사고로 남편들을 잃게 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희주(김시은)의 남편은 죽었고, 영남(염혜란)의 남편은 의식불명 상태다. 2년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희주는 영남의 딸 은영(박지후)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희주는 덮어버리는데에만 급급했던 2년 전 사고를 다시 꺼내려 한다. 그 중심에는 은영이 있다.
배종대 감독의 한 마디는 박지후를 영화 '빛과 철'로 이끌었다. '벌새' 이후 박지후를 만난 배종대 감독은 "구같은 다양한 면이 있는데, 그 중 날카로운 면도 있다"고 했다. 박지후는 자신의 '날카로운 면'이 궁금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은영의 미스터리한 캐릭터도 연기해 보고 싶었다. '빛과 철'을 선택한 이유다.
영화 '빛과 철' 스틸컷 / 사진 : 찬란 제공
"'관객들이 은영이의 의도를 몰랐으면 좋겠다'고 감독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렇게 연기한 것 같아요. 은영의 감정과 상황을 떠올리며 연기를 했고요. 감독님께서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라는 영화를 추천해주셔서 봤어요."
"어른들 사이에 딸의 감정을 생각하면 연기했던 것 같아요. 은여은 아픈 아빠와 고된 엄마 사이에 있잖아요. 학교에서는 유령같은 아이라고 불리고, 의지할 곳 없는 은영을 떠올렸어요. '벌새'에서는 혼자 연기한 것들이 많았는데요. 은영은 호흡을 맞추잖아요. 염혜란, 김시은 선배님들이 저를 잘 이끌어주셔서 거기에 끌려서 연기한 것도 큰 것 같아요."
'빛과 철'은 제작 과정에서 독특한 지점이 있었다. 사전 리딩과 리허설 등으로 미리 준비해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실수를 최소화하는 영화 제작 현장과 달리, 사전 준비 과정이 없었다. 배우들 역시 현장에서 처음 만나 연기를 하게 됐다. 익숙하지 않은 현장이 박지후에게는 "어쩌면 이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은영이 주변을 맴돌며 관찰하는 인물이잖아요. 선배님들을 바라보면서 이럴 땐 이렇게 연기를 하시는구나. 이런 것들을 관찰하다보니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완성된 '빛과 철'을 보면서 자신의 날카로운 지점을 발견하기도 했다. 박지후는 "초반에 은영이 희주 집에 가게 되잖아요. 희주가 '너 나 아냐'고 물어보는데, '네, 알아요'라고 답해요. 거기에서 좀 멈칫했어요. 날카롭기도 하다고 느꼈는데,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 면이 감독님께서 발견하신 날카로운 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라고 떠올린다.
염혜란과는 모녀 호흡을 펼쳤다. 하지만 기존의 모녀의 모습과는 달랐다. 필요한 말만 하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메말라서 쩍쩍 갈라진 땅같은 두 사람이다.
"염혜란 선배님과는 병원 로비 장면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실제 엄마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은영도 은영이지만, 염혜란 선배님의 목소리와 감정에 저 자체도 빨려 들어갈 것 같았어요. 은영이 겁에 질려있는데, 실제 연기에 몰입해서 드러난 것 같기도 하고요."
함께 호흡을 맞춘 염혜란과 김시은은 박지후에게 많은 말보다 연기로 배움을 주었다. 사전 준비과정이 없었기에 현장에서 사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박지후는 두 사람의 연기를 '은영'이 바라보듯 지켜봤다.
"연기를 한다는 것은 표현하고, 표출하는건데요. 저는 아직도 주변을 신경쓰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선배님들은 다르세요. 주변을 신경쓰기보다, 몰입을 하시더라고요. 저도 연기를 하는 사람이고, 장면에 집중하는게 당연한건데 '왜 안될까'라고 성찰하기도 했어요. 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선배님들께서 '확' 연기를 해주셔서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벌새'에서도 '빛과 철'에서도 박지후는 청소년기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캐릭터는 현실이 그러하듯 밝고 희망차지만은 않았다. 고민이 있었고, 상황 속에 머리끝까지 담겨 있었다. 그랬기에, 박지후의 실제 성격에 대한 궁금증이 이어졌다.
"실제로는 되게 밝은 편이에요. 깊고, 다소 무거운 캐릭터를 하다보니 많이들 놀라시더라고요. 그런데 은영이랑 비슷한 지점이라면,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속 깊은게 있는 것 같아요. 정이 많다고 해야하나요. 은영이의 따뜻한 마음이 저에게도 있지 않나 생각해요."
"집에서 막내예요. 어리광도 많이 피우고, 애교도 꽤 있고, 친구들에게도 밝고 그런 것 같아요. 배우라는 직업에서는 평소와 다르게 좀 더 진지해지는 것 같지만요. 제 친구들은 제가 찍은 작품보다는 저에 대한 응원을 해줘요. 제가 그 작품들을 언제 찍었는지 다 아니까 '그때 너 얼굴이 앳되다, 귀엽다, 웃기다' 이런 반응이 제일 많아요.(웃음) '벌새'랑 '빛과 철'이 개봉하고, 영화관에 제 얼굴이 보이니까 친구들이 더 좋아하더라고요."
박지후는 초등학교 5학년 때 길거리 캐스팅으로 연기에 발을 디뎠다. 현재 나이는 19살.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시기를 지나면서 입시와 대입을 걱정하는 평범한 학생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연기는 평생 할 것"이라고 뚜렷한 계획을 가진 '배우'다.
과거 '벌새'를 연출한 김보라 감독은 오디션 현장에서 "감독님 저는 볼매(볼수록 매력)예요"라고 말한 박지후에게 반해 캐스팅했다고 밝힌 바 있다. '빛과 철'을 연출한 배종대 감독은 박지후에 대해 "계속 무언가를 시도해보게 만드는 힘을 가진 배우"라며 "매일 성장하는 모습에 '슬램덩크'의 강백호를 바라보는 안감독의 마음을 떠오르게 했다"고 했다. 계속 성장해가는 배우, 박지후에게 연기가 바로 '볼매'가 됐기 때문은 아닐까.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볼수록 매력있는게 볼매잖아요. 연기는 아무리 파고 들어도 보지 못했던 매력이 있고요. 항상 새로운 것이 나와요. 끊임없이 흥미를 느끼고, 즐길 수 있게되는 것 같아요. 제가 평생 연기를 할거니까, 평생 연기를 '볼매'라고 느끼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지후는 매일 다이어리를 적는다. 작품에 임할 때도 '이래서 안됐다, 어떻게 대사를 바꾸니까 편했다' 이런 작은 변화들까지도 기록해둔다. 다이어리가 두툼해질수록, 배우 박지후는 단단해진다.
"마음 속에 품고 있는 저의 희망 사항은 좋은 어른, 훌륭한 배우가 되는 거예요. '빛과 철'을 찍으면서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 것 같고요. 오래오래 다양한 캐릭터 소화하며 다양한 모습보여드리고 싶다는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