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강림' 임세미 인터뷰 / 사진 : 포토그래퍼 이제성 민트스튜디오 제공
한국 드라마사에서 본 적 없는 걸크러시를 장착한, 가모장 캐릭터가 탄생했다. 데뷔 17년 차 노련미 넘치는 배우 임세미를 통해서다.
임세미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여신강림'에서 임주경(문가영)의 언니이자 유명 엔터테인먼트사에 재직 중인 '임희경' 역을 맡았다. 명문대를 졸업하고, 다니는 회사마다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어디서든 자신감이 넘치는 존재다. 그런 희경은 동생의 담임이자 순수한 매력의 '한준우'(오의식)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여기까지보면 여타 로맨스 서사와 다를 게 없지만, '임희경'의 특기는 벽치기요, '키갈'('키스를 갈기다'의 줄임말)의 선도자다. '여신강림'을 관통하는 로맨스 서사에 역 클리셰를 주는 주요한 역할인 것. 쉽게 말해 '희경'은 흔히 '여성의 역할', '여성스러움'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완전히 깨부순다. 그 덕에 남녀의 사랑보다도, '사람 대 사람의 사랑'이라는 메시지가 강조된다.
평소 성격은 희경 같지 않다고 말한 임세미는 '임희경' 역을 통해 전형적인 여성상에 대해 재고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심지어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느낌까지 받았다고 덧붙였다.
"역 클리셰에 대한 집중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원래는 꾹 참고 있다가 말하는 성격인데, 연기할 때 희경이는 시원하게 질러야 하거든요.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뇌와 심장이 필터링 없이 하나가 되는, 뒤끝 없는 여성이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발성이나 제스처에 변화를 주고 싶었고, 그게 희경이와 어울렸던 것 거죠"
"한국적 여성상은 남자가 대시하는 걸 기다리는 거라고 생각하는 때가 있었는데, 요새는 그런 게 많이 바뀌기도 했잖아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우리 여성들이여 일어나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희경이를 연기하면서 힐링도 되고, (스트레스도) 해소가 됐죠. 앞으로 이렇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아요"
사진: tvN 제공
극 중 임희경과 한준우는 서브 커플로 큰 사랑을 받았다. '자몽커플'이라는 애칭도 얻으며 많은 팬을 양산했다. 임주경(문가영), 이수호(차은우), 한서준(황인엽)이 십대들의 사랑을 그려냈다면, 사랑 앞에 직진하는 여자 임희경과 사랑에 순수한 남자 한준우의 케미는 2030 여성을 사로잡았다. 원작 웹툰에는 없는 희경-준우 커플의 존재가 신의 한 수였다.
"처음에는 비난 받을까봐 걱정했어요. 주경이와 수호가 나와야 하는데, 원작에 있지도 않은 러브라인이 나와서 짜증 난다는 반응일까 봐요. 정말 감사하게도 자몽커플을 예쁘게 봐주시더라고요.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임세미는 상대역 오의식뿐만 아니라, 자매 케미를 맞춘 문가영과도 그야말로 '찐 케미'를 만들어냈다. 즉석 떡볶이집에서 말다툼을 하는 희경-주경 자매의 모습은 현실 그 자체였다. 애드리브까지 곁들였는데 연기 티키타카에 막힘이 없었다. 그만큼 현장 분위기가 좋고, 배우들 간의 호흡이 단단했다는 증거일 터였다.
"현장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가영 씨랑은 특히 좋았죠. 신 들어가기 전에 의견이 있으면 가영 씨에게 말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언니 너무 좋아요. 언니 하고 싶은대로 해요'라고 말해줬어요. 떡볶이 먹는 신에서도 애드리브가 난무했는데, (가영 씨가) 다 받아주는 친구라서 잘 나올 수 있었죠. 가영 씨는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인간으로서도 좋았어요. 앞으로 가영 씨가 멋진 배우가 될 거라는 걸 느꼈고, 지금도 (제가) 배울 점이 많지만 앞으로도 더 기대가 되는 배우예요"
임세미는 이번 작품으로 국내외 팬들이 크게 늘었다고 했다. SNS 팔로워도 급증했다고. 무엇보다 임세미를 보며 '언니앓이'를 하는 여성 팬들이 많아졌다.
"학원물이다 보니 어린 친구들이 많이 보는 작품이기도 했고요, 제가 언니 역할이라서 '이 언니 갖고 싶다' 이런 말을 많이 해주신 것 같아요. 정말 기분 좋았어요. 여자들에게 사랑받는 게 너무 좋더라고요. '바로 이거다' 싶었죠.(웃음)"
사진: tvN 제공
'여신강림'에서도 패션 스타일링과 건강미로 이목을 끈 그는 유명한 운동광이다. 특히 사이클을 좋아해서 '고려청자 여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화제가 된 사진 속 임세미의 자전거가 청색이라 지어진 별명이지만, 임세미의 청자 같은 바디라인도 별명에 한몫했다. 최근엔 운동을 많이 하지 못했다고 말한 그는 다시 '고려청자' 별명을 되찾으리라 자신했다.
"어릴 적부터 몸을 잘 썼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운동을 좋아하셔서 자연스럽게 운동이 제 몸에 잘 묻어난 것 같아요. 성인이 되어서도 제가 취미로 가질 수 있는 게 자연을 쫓아가는 거더라고요. 산에 가고, 달리는 유산소 운동을 하고, 그런 걸 좋아해요. 재작년에는 산티아고에서 40일 동안 걷기도 했었죠"
"악역할 때 다리가 드러나는 치마를 입어야 했었어요. 당시 사이클을 많이 타다 보니 허벅지가 갈라져 보이더라고요. 감독님께서도 '다리가 너무 갈라져 있어'라고 하셔서 작품할 때는 매끈한 몸을 유지하려고 자전거를 안 타는 버릇이 생겼어요. 요새는 그냥 달리고 있어요. '고려청자' 타이틀, 다시 가져와야죠. 제겁니다.(웃음)"
임세미는 '여신강림'의 인기로 인플루언서가 된 것 같다며 기뻐했다. 단순히 인기를 끌었다는 지점이 아니었다. 임세미는 영향력을 발산할 수 있는 존재에 한 단계 다가갔다는 사실이 좋다고 했다. 그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임세미는 유튜브 채널 '세미의 절기'를 통해 사람 임세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겸하는 사람 임세미의 모습이다.
임세미는 맨몸으로 세상에 온 인간으로서, "양심 하나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사람이 버린 쓰레기로 동물들이 고통받고, 자연이 훼손되는 걸 보면서 "그동안 모른척했던 자신이 놀라웠다"고 반성했다. 그래서 임세미는 유튜브를 시작했다.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 싶어서였다. 그는 항상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장바구니를 챙겼다. 그리고 미세플라스틱을 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다양한 친환경 제품을 소개했다. 실제 이날 인터뷰 현장에도 어김없이, 임세미는 손때 묻은 텀블러와 함께였다.
"십 년 전쯤에 명상 수련을 갔었는데, 자연으로 모든 게 다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사용한 것, 먹고 남긴 것이 지구에서 돌고 돈다는 걸 알고 빈 그릇 운동부터 시작했죠. 최근에는 유튜브 하면서 비건, 제로웨이스트 실천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환경 문제는 정말 심각해요. 지금도 전쟁 때 죽은 인구만큼의 동물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그 동물들도 다 느끼는 존재라는 걸 아는데, 그동안 모른 척했던 제 자신이 놀라웠죠. 하얀 매트리스에 빨간 약이 묻었는데, 보이는 걸 그냥 둘 수 없잖아요. 동물을 온전히 사랑하고 싶은 마음, 양심 하나 부끄러움 없이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무엇보다 '세미의 절기'라는 채널명을 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계절이 아닌 절기를 챙기는 이유, 임세미는 어떤 점에 꽂힌 걸까.
"제가 절기를 좋아해요. 왜 봄여름가을겨울보다 절기의 단어들이 마음에 콕콕 박히는지 모르겠어요. 절기가 되면 한 2주 뒤 쯤 계절감이 와요. 그걸 기다리는 게 좋아서 언젠가는 이 단어들에 따라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마침 '여신강림' 시작할 무렵에 그런 콘텐츠를 시작하게 됐죠"
촬영장에서 바쁜 일상을 보냈던 임세미는 가쁜 숨을 내쉴 수 있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근황을 묻자 "무계획이나 마찬가지예요"라고 답한 임세미는 당분간 제로웨이스트와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 임세미로 살 것이라고 전했다.
"대중들한테는 일단 비건, 제로웨이스트 지향으로 핫해지고 싶어요(웃음). 올해는 좀 아무것도 안 하면서 지내려고요. 계획하고 실패감을 맛보고 싶지 않거든요. 아무것도 하지 말자,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목표죠.
"제가 호기심도 많고 욕심도 많은 스타일이라 쓸데없이 얕은 재주가 많아요. 이것저것 하는 걸 좋아하죠. 가만히 앉아 있으면 자꾸 안 좋은 생각이나 우울한 생각이 찾아오는 것 같아서 몸을 바삐 움직이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