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새해전야'에서 진아 역을 맡은 배우 이연희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목적지를 두면, 그곳에 도달하기 바쁘다. 길을 잃은 것 같을 때, 잠시 멈춰 숨을 돌려 주변을 둘러보면 깨닫는다. 흘러가는 구름도, 처음 만나는 건물의 창문도 예쁘다는 것을 말이다. 영화 '새해전야'에서 배우 이연희가 보여주는 캐릭터 진아가 그렇다.
배우 이연희는 "진아가 했던 고민과 생각들이 제가 20대에 했던 고민들이기도 해서요. 충분히 공감이 됐고요"라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전했다.
"진아는 비정규직이지만, 저는 진로를 선택한 상태였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연기자에 대한 고민의 시간이 있었어요. 그 고민이 한꺼번에 찾아와 힘들 때, '나도 휴식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여행을 시작했거든요. 그런 부분이 진아와 비슷했던 것 같아요. 여행을 통해서 힐링을 하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어요. 그 시간을 생각하며 여행하듯이 '새해전야'를 촬영했던 것 같아요."
영화 '새해전야' 스틸컷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진아는 오랜 연인(최시원)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받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 곳으로의 여행을 결심한다. 그렇게 떠나게 된 아르헨티나에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듣고, 먹고,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용기를 얻는다. 무언가 달라진 느낌. 내면의 변화다.
"제 첫 번째 여행은 파리였어요. 어디든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유럽여행을 갔어요. 예전에 일로 파리에 간 적은 있었어요. 그때 인상이 낭만적이었고, 너무 좋았어요. 언젠가 꼭 혼자 여행하러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에게 파리가 진아의 아르헨티나 같은 존재였어요. 굉장히 힘든 시기에 아무도 날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거든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지나가는 것도 멍하니 바라보며, 여유도 찾고, 저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고요. 아마 진아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그런 시간이 있었기에 이연희가 보여주는 진아의 해방감을 더 자유롭다. 진아가 되어 이과수폭포 앞에서 소리쳐보기도 했고, 연주에 맞춰 즉흥적으로 '베사메무쵸'를 부르기도 했고, 석양을 바라보며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재헌(유연석)과 탱고를 추기도 했다. 새롭게 해본 것들이었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컷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진아처럼 저도 살짝 취해있었어요. 용기있게 나가서 불렀어요. 두려움 없이 용기있게 나가서 불렀을 때, 여행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베사메무쵸'는 감독님께서 연습을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제가 불렀습니다. 실제로 거기 계신 분들이 연주자 분들이셔서,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어요. 녹음 작업을 다시 하긴 했는데, 예쁘게 잘 나온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듭니다."
"이과수폭포에서 소리 질렀을 때는 정말 너무 속이 시원했어요. 제가 어디가서 그렇게 크게 욕을 해보겠어요. 물론 '시베리안 허스키야'라는 식으로 순화됐긴 하지만요. 제가 그동안 남을 미워해보질 못해봤는데요. 진아로서 감정을 토해내니, 너무 속이 시원하고 풀리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새해전야'의 메가폰을 잡은 홍지영 감독은 이연희와 유연석이 맡은 진아와 재헌을 "자유지향 커플"이라고 밝혔다. 이연희는 "저희가 자유로워서 그랬을까요?"라며 웃었다. 여행스타일도 비슷하다는 두 사람이다.
영화 '새해전야'에서 진아 역을 맡은 배우 이연희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진아는 아르헨티나의 한 공원에서야 눈부신 일상을 바라보게 된다. 사람들의 웃음, 뛰어노는 아이들, 그리고 작은 골목길에 아름다움이 담겨있음을 알게 된다. 10대부터 현재까지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는 이연희는 자신의 지난 날이 어떻게 느껴질까, 궁금했다.
"저도 개인적으로 사이사이의 골목길에 아름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지나고보니, 제가 20대 때 열심히 살았던 게 너무 감사해요. 그 때 쉬지 않고 일해놨기 때문에 지금의 제가 작품이 없을 때도 휴식을 가질 수 있구나, 배우고 싶은 걸 배울 수 있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구나 생각해요."
"그때는 당장 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참고 일해왔다는 것이 잘한 것 같아요. 그때는 힘들거나 화가나도 상대방에게 표현하지를 못했어요. 그게 저를 힘들게 할 때도 있었는데, 그 덕분에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실례하지 않으려고 조심한 행동들이 지금의 '이연희'를 만들어준 것 같아요. '이연희라는 배우와 촬영할 때 좋았던 것 같아'라는 말씀들이 감사한 것 같아요."
영화 '새해전야'에서 진아 역을 맡은 배우 이연희 / 사진 :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30대가 된 지금 이연희는 두려움보다 감사함이 많다. 지난 날 쉬지 않고 일해왔던 것도 감사하고, 자신이 지나갈 시간들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 그 시간들로 인해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변해갈 이연희에 대한 기대감도 있다.
"저는 두려움이 많았어요. 대학생일 될 때도 캠퍼스에 대한 설렘보다, 연기 활동과 병행하며 과제를 못하게 될 때 교수님께는 어떻게 말씀드리지? 이런 걱정이 더 컸어요. 새로운 생활을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결혼은 저에게 너무 필요한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나의 편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에 두려움은 없었어요. 이제 30대가 되다보니, 두려움보다는 내가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해나갈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하는 것 같아요.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지는 것 같고요. 30대가 너무 좋고요. 40대도 더 좋을 것 같아요. 나이 들어가는 것이 배우생활에 많은 도움을 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도 마찬가지고요."
시간이 흐를 수록 더욱 '아름답게' 무르익어갈 배우 그리고 사람 이연희를 더욱 기대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